직장인의 사계 - 봄(그렇게 직장에 나와있다.)
짙은 삶의 허무로 주신(酒神)을 영접하고 일주일을 보냈더니 모든 것이 흐릿해졌습니다. 허무를 벗어나 의미를 찾는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오늘은 우선 직장이라는 곳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려 합니다.
직장엔 잡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 잡놈들에게 잘 대처해야 합니다.
친절을 가장한 무례함들에 맞대응하는 건 내 삶을 축내는 행위입니다. 그저 무례한 것들은 한 발 옆으로 피해서 그들의 하는 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날카로움은 피할 수 있습니다. 제 풀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두면 시들해져 다른 무례하게 대할 사람을 찾아 떠날 것입니다. 타인은 바꿀 수 없습니다. 자신의 대처 방식만 바꿀 수 있을 뿐이지요.
이런 동물들부터 상처받지 않도록 예리한 칼날들을 잘 피해 다녀야 합니다. 그러다 베이더라도 찔리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설사 찔리더라도 죽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나한테 막 하는 분들에게는 큰 감정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악악 대는 불쌍한 사람이니 말이지요. 그렇다고 같이 대거리하면 나도 막돼먹은 놈이 되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굳이 잡놈의 단계로 내려가 그들을 상대할 필요까지 있진 않으니 말이지요.
그럼 어쩌란 말인가? 화냄 없이 가만히 지켜보면 됩니다. 동물원에 있는 멧돼지 보듯 관찰해야 합니다. 눈은 반쯤 감고 아무 표정 없이 살짝 미소를 띠며, 약간은 모자라고 미친놈처럼 보여야 이들은 흥미를 잃습니다. 너무 고분고분하면 더 심하게 할 것이고, 맞대 거리 하면 더더욱 사태는 악화될 것입니다. 그럴 때는 잠시 미친놈이 되어서 은은한 광기를 보여줘야 그들을 멈칫하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살아야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건강 모두 말이지요.
다들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올해 진급만 하면, 좀만 버티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건 이미 대부분 눈치채셨을 겁니다. 지금 나아지지 않는 건 나중에도 결코 나아지지 않지요. 바로 무언가를 바꿔나가야 합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결국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 호흡이 빨라지거나 불규칙해지고 무기력감이 들고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라면 한 번은 멈추어 생각해 볼 일입니다.
과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말이지요. 이런 브레이크 없이 달리다 보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마냥 달리다 어딘가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기 마련입니다.
뭐 많은 것을 바라기보다 원래 인간들이 그런 종자임을 온 맘으로 이해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인건 사람 사이에 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놈의 사람이라는 것들은 모이면 비교하고 편 가르고 시기하곤 합니다. 그러니 인간사 늘 부대낍니다. 다들 각자의 잣대로 옳고 그르고 잘나고 못나고를 판단하며 각자의 기준들로 서로를 재단합니다. 다들 자기가 옳다 하니 도무지 누가 정말 옳은지를 아는 건 쉽지 않습니다.
처방은 단순합니다. 누가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 그저 다 다를 뿐이다. 이 다름만 서로 인정하면 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다 다른 사람들인데 왜 나처럼 생각하라고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아셨을 거예요. 여러 동물 부족이 천하통일을 위해 모인 곳이 직장이라는 것을. 각자 직장에 나온 이유도 다르고 배경도 다 다릅니다. 그러니 현재 다 같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입니다. 이미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 뭘 더 바랄 수 있을까요. 기적을 삶에서 몸소 체험하고 있는데 뭐 더 거창한 걸 바랄 수 있을까요.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지요. 정말 내가 있는 곳이 멧돼지들로만 그득하다면 그 소굴을 벗어 나는 게 현명합니다만, 지금 직장에 붙어 있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면, 현재 그곳에서 바로 할 수 있는 작은 무언가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모두의 건강을 위해 이롭다는 것, 이거 하나만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