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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Aug 30. 2024

[職四] 배워야 참을 수 있다.

직장인의 사계(겨울) - 아내와 아이의 전쟁에서 배우다!

    최근에 '깨어 있는 부모', '깨어 있는 양육'이라는 책을 보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기본 내용은 부모가 깨어 있고, 순수한 의도로 아이를 양육해야 아이가 건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모습이 비쳐지면서 반성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배웠으니 삶에 적용해야겠지요. 


    바로 어제의 일이네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갔는데 중학교 1학년인 큰 아이와 와이프가 언성을 높이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숙제가 발단이었습니다. 하라는 만큼 다 했다고 권리를 주장하는 아이와 틀린 것까지 고쳐야 다 하는 거라며 보여주기로 했던 야구 경기를 안 보여주겠다는 아내가 서로 소리 지르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떨어져서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제가 더 큰 소리를 지르고, 피곤하게 일하고 왔는데 집안 꼬라지 잘 돌아간다며 난리를 쳤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참아내지 못했던 큰 소란을 잘 넘겼습니다. 소리를 지르지도 화를 내지도 않고 그냥 영화 보듯 넘어갔습니다. 아내분은 난리가 났습니다. '방관자!!'라며 여러 차례 제게 비난을 쏟아 냅니다. 아이가 소리 지르고 책을 던져도 가만히 두냐고 '방관자'라며 악다구니를 합니다. 물론 그분 맘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저 두 분의 싸움을 객관적으로 보아온 저로서는 아내의 편만을 들어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쌍방과실이 분명하니 말이지요. 사실 굳이 과실의 비율을 따지자면 6:4 정도로 아내의 귀책이 좀 더 크다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아이가 쾅~ 문을 닫고 들어갑니다. 


    드디어 두 분의 대립이 끝이 나고 서로 씩씩 대며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개입할 시간이 왔네요. 저는 방관자가 아닙니다. 사건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대화라는 게 불가능하기에 관찰자로 남아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는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아 아이의 방에 노크하고 들어 갑니다. 아직 분이 삭지 않은 아이는 엄마는 도대체 왜 그러냐며, 뭐가 문제냐며 성토를 합니다. 또 관찰해 봅니다.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동의해 주면서 들어 봅니다. 화가 좀 식었기에 '큰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쓴 것과, 발을 구르며 주변을 소란스럽게 한 것, 물건을 던져 파손한 것'을 정확히 알려 줬습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그렇게 하는 건 잘 못된 행동이라고 낮고 따뜻한 목소리로 알려 줬습니다. 


    아빠도 엄마 편이냐며 투정을 부리다가 이내 본인 잘못을 인정합니다. 기특하네요. 


    아이가 대뜸 제게 묻습니다. 아빠는 왜 화를 안 내냐고요. 잠시 어리둥절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책 덕분인지 화 안내가 상황을 잘 넘어갔더라구요. 그래서 아래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아빠는 책을 읽으면서 '작기 객관화'라는 걸 끊임없이 하고 '누구나 다 옳을 수 있다'는 열린 생각을 가지려 '노력'한다.


    아이가 제게 엄마에게도 책 좀 읽게 하라고 하십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내는 책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사람이니 말이지요. 엄마가 책을 읽는 것보다 우리가 같이 읽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설득했더니 이분이 내일부터 본인도 꼭 읽어 보겠다고 합니다. 또 웃음이 나옵니다. 과연 읽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말이지요. 그래도 아이에게 책을 읽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삶에서 중요하다는 걸 알려준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늘 같이 화내고 소리를 지르던 제가, '야이XXXX'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온 걸 삼켰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욕바라밀'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아내와 아이에게 감사하는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잘 잔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그 난장판을 지났는데도 제 기분은 별로 나빠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소가 자꾸 머금어집니다. 도무지 사람이란 알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마음 조금 바꿔 먹었더니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지요. 


    제가 책을 열심히 보고 공부하며 알게 된 것들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아래의 내용들을 배우고 나서 다른 이들과의 지내는 제 모습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나만 옳다는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나도 틀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아직 무소유를 온전히 배우지는 못했지만, 내 것이라 여긴 것들이 내게 잠시 주어진 선물임을 알게 되었으며, 

타인과 나를 동일한 선상에 놓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다 연결되어 있음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작은 생각의 변화가 모여 결국 이 세상에 막 왔을 때의 저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해 줄 것을 믿기에

오늘도 제 비루한 삶에 자그마한 공부를 보태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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