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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Aug 26. 2024

[職變] 말 한마디에 다음 근무지가

직장생활의 변곡점 - 오랜만에 본사에서의 생활, 1년 만에 다음 근무지로

지금 여기는 : 1년 차,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현재  


Previous story : 한국으로 복귀하여 나름 한산한 1년을 보내다가, 보고서를 쓰고 평소 가진 급진적인 생각을 피력하는 와중에 다음 근무지를 결정 지었으니.....




    4년여의 해외 파견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북귀했습니다. 신사업 발굴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배정받아 근무를 하였으나, 신사업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뜬 구름 잡는 일인지라 때로는 심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따금씩 연구소 인원들과 지방의 유관 업체를 방문하기도 하고 행사에 참여하느라 가끔씩 바빴으나 대략적으로 한가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당시 저희 팀 사무실 옆에 계시던 CFO께서 제가 심심해 보였나 봅니다. 갑자기 업무를 하나 배당해 주셨습니다. 그 첫 업무가 '중국 법인 현황 보고'였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근무하다 왔으니 저를 통해서 중국 현지의 상황을 자세히 듣고 싶다고 하셔서 대략 3일간의 산고 끝에 드디어 첫 작품을 출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도 늘 마음 한편에 불만으로 가지고 열변을 토하던 주제였으므로 어렵지 않게 현황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 태도가 반영되었기에 문제점에 대한 신랄한 지적은 덤이었고요. 


    지금 와서 보니 제 안의 반골기질이 그분의 니즈와 맞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 몇 개의 보고서를 더 썼지만 모두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개선 방안을 도출했던 보고서들이었습니다. 본업에서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지만, 다행히 부캐를 통해 저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니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뭐가 어찌 되었건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사권을 가진, 혹은 가지지 않으셨더라도 윗사람들이 그 효용, 속된 말로 '쓸모'를 인정해 준다는 것은 직장인에게 기분 나쁜 소식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회사의 이곳, 저곳을 기웃 거리며 경영개선에 관한 보고서를 쓰고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당시 팀장님께서 잠시 면담을 하자고 하셔서 자그마한 회의실에 앉았더니 대뜸 사업장, 즉 공장에 있는 팀의 팀장으로 배치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오랜만에 한국 와서 가족들도 적응하고 저도 이제 막 회사에 적응해 가고 있는데 갑자기 지방에 있는 공장에서 근무를 하라고 하니 처음엔 난감했습니다. 아내와 상의를 해봐도 걱정만 태산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여가 지났을 때, 직장인이 까라면 까야지 방법 있나라는 맘으로 제가 맡아야 할 팀에 관하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제가 해당팀에 대해 정리한 보고서가 있었습니다. 제 철없는 손이 그 보고서를 썼었고, 공석이 생기자 이런저런 개선 방안을 냈던 제게 그 자리를 맡기려 하셨던 거 같았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 인사발령 나기 4개월 전에 그래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알려주신 것에 감사하며 관련 자료들을 모으고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사라는 것이 발령 날 때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라 팀장님 빼고는 팀원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2주 정도를 열심히 고3 모드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CFO 분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대뜸 현재 제가 근무하고 있는 사업부에 대해서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해외 근무 전에 속했던 사업부였고, 보고서를 쓰기 위해 인터뷰도 하고 현황 파악도 했던 지라 솔직한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실적이 잘 안 나오는 사업부였기에 기존에 분석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이렇게 지속하면 아니 되옵니다'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큰 폭의 개선, 즉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옵니다'라고 이 철없는 인간이 보고서를 작성하고야 맙니다. 그 자리에서 그분께서 제 진로를 수정해 주셨습니다. '니가 가라, 그 사업부로' 이 한 마디와 함께 제 다음 근무지는 그 사업부의 살림을 맡는 팀장 자리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렇게 23년 1월 1일부로 인사 발령이 났고, 실제 근무는 발령이 난 11월 중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등바등 살지만 당장 5분 뒤에 있을 일도 전혀 모르고 살아가니 말이지요. 작년 한 해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시간이었습니다. 우울증이라는, 저와는 안 어울린다고들 생각하는 증상까지 겪었으니 말이지요. 그래도 작년을 돌이켜보면 또 한 번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늘 엉뚱한 일들을 겪고 나면 무언가 배워왔던 것 같네요. 


    그렇게 또 제 직장생활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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