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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Aug 12. 2024

[職四] 길바닥 매미에게 배운

직장인의 사계 - 겨울 (한참을 울다 길바닥에서 쉬는 매미를 보며)

    출근길에 한참 열심히 걷고 있는데 바닥에 매미가 한 마리 보였습니다. 느릿느릿 걷는 폼을 보니 한동안 음식을 제대로 못 드셨는지 영 힘겨워 보입니다. 이대로 두면 죽기야 죽겠지만 누군가에 의해 압사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에 조심히 다가가 들어 올립니다. '아이고 내가 죽는구나' 소리치듯 열심히 울어 댑니다. 우는 소리를 들으니 당장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 같아 내심 안심이 됩니다.


    나무에 살며시 붙여 드렸습니다. 어릴 때 매미를 무지막지하게 잡고 다녔던 저였던지라 매미의 생태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땅속에서 살다 여름 한 철 울다 가는 매미를 보며 늘 안타까웠습니다. 7~10년간 땅속에 있고 2개월 정도 파란 하늘을 보며 살아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너무 심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지요. 


    그런데 그건 제 미련한 생각일 뿐인 것 같습니다. 이전보다 조금이나마 더 깨달은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히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매미는 땅속 생활이 훨씬 좋은데 어쩔 수 없이 속 시끄러운 바깥세상으로 나와 밤새 과거를 그리워하며 울다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떤 사건이나 사물이 좋고 나쁘다는 가치판단이 사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즉 모든 것들은 중립적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요즘 다시금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제 소견머리가 얼마나 좁은 지도 알아가고 있어 늘 삼가는 마음뿐입니다.


    그래도 오늘 제가 나무에 붙여준 매미는 훗날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잠시 날아갈 힘이 없어 걸어서 나무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내 몸이 바람에 날리듯 날아 나무에 붙더라', '에이 거짓말 마라' 얘기하는 친구들에게 '정말이라니까 답답해 죽겠네'라며 무용담을 늘어놓을 것 같아 즐겁습니다.


    지나고 보면 저도 예상치 않았던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나마 모양을 갖추고 살아가지 않나 싶습니다. 추운 겨울 술에 취해 지하철 플랫폼에서 졸 때 챙겨주신 아주머니, 배낭여행 중 현지 화폐가 부족했을 때 흔쾌히 동전을 내어주던 코가 큰 영국인이며, 자동차 사고가 나 정신이 없을 때 가던 길 멈추시고 주변을 정리며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알려 주셨던 화물차 아저씨. 모두 제 삶에 지분이 있으신 고마운 분들인 것 같습니다. 


    성선설, 성악설을 떠나 인간은 누구나 같이 어울려 도우며 살 때 살 맛이 납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아무런 대가 없는 작은 선행을 베푸는 건 어떨까요. 꼭 거창하지 않더라도 아주 작은 일들로 살 맛 나는 세상을 같이 만들어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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