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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Aug 14. 2024

[職四] 오늘의 첫 변기에 앉으며

직장인의 사계 - 여름 (이른 아침 깨끗이 정돈된 변기를 보며)

    저는 아침에 일찌감치 회사에 도착합니다. 


    정시 출근 시간이 9시이지만 7시 20분경에는 사무실 자리에 앉아 회사에서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급한 업무가 있으면 바로 업무에 착수하지만 보통은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곤 합니다. 요즘은 날도 덥고 지쳐서 다소 루틴이 무너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침에 5시경 기상해서 책 보고 공부하는 시간을 1시간 정도 갖은 후에 부족한 부분은 회사에 와서 채우곤 합니다. 이 두 시간이 사실 제 하루 중 온전히 제가 제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그러니 이 두 시간은 제게 삶의 에너지를 채우는 중요한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아무도 없는 회사에 홀로 앉아 있으면 호젓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따뜻한 도라지차 한 잔 준비해서 여유롭게 시작해 봅니다. 덥다고 찬물을 좀 마셨더니 배가 영 불편해서 조용한 화장실로 향합니다. 큰 일을 볼 수 있는 공간이 7개인데 역시나 화장실은 온통 고요합니다. 제가 나름 선호하는 가장 안쪽 칸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깨끗하게 청소된 상태의 화장실이 두 팔 벌려 저를 맞아 줍니다. 밤새 보고 싶었다며 입을 헤벌죽 벌리고 웃어 줍니다. 


    겨울밤 밤새 들리던 함박눈 내리던 소리에 기대하며 차가운 밖으로 나섰을 때 펼쳐지던 광경이 문득 떠오릅니다.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바라봤던 온통 하얗게 덮여버린, 온갖 추한 것들 모두 덮어 눈이 시린 그 하얀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온통 하얀, 아직 누군가의 흔적이 남지 않은 변기에 앉습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새벽눈을 밟을 때의 '꾸욱 꾸욱'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시원한 냉기가 스쳐 갑니다. 


    누구도 앉지 않았던 변기에서 추운 겨울날 아침의 시원한 광경을 떠올리고 나니 더위가 한풀 꺾인 느낌입니다. 실제로도 아침저녁으로는 찬 바람이 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덥다고 아무리 아우성쳐도 결국 계절은 바뀌어 갑니다. 오늘이 말복이네요. 이런 날은 꼭 닭의 목을 비틀기보다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 힐링하는 하루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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