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의 변곡점 - 새로운 사업부에서 외로운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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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에서 1년여 기획팀 근무를 하던 중 세치 혀를 잘 못 놀려 손익이 가장 좋지 않고 문제가 산적해 있는 사업부로 발령 날 예정. 기존에 야구동호회 활동 하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분들도 있고, 중국 주재원 가기 전 해당 사업부 수출팀에서 1년 반 정도 근무했기에 아주 남남도 아니고 하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라고 생각하며 사업부에 대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제가 새로 맡은 직책은 해당사업부의 사업부장님(상무)을 보필해서 사업부 손익을 관리하고 사업부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팀장 역할이었습니다. 사업부 내의 기획팀이라고 보시면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제가 발령 난다고 할 즈음부터 저를 보내신 CFO의 쁘락지네 칼잡이네 말들이 참 많았습니다. 제게 들린 말은 정말 일부분일 텐데 그 정도로 들렸으면 그 당시 대략 100여 명으로 이루어진 사업부 내에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오고 갔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지요.
그렇게 온갖 경계의 시선을 받으며 팀원 2명을 데리고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제가 사전에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팀원들 및 얘기가 통하는 몇몇 사람들과 상황에 대한 리뷰를 시작합니다. 물론 상황이 좋을 리 없습니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온갖 낭비와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합리한 업무처리가 횡행하고 있었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맘을 다잡은 후에 행동에 돌입합니다.
Action!
일단은 조직에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던 사업부인지라 나름 자부심도 강하고 내부 결속, 즉 그들만의 짬짬이가 매우 강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를 보내주신 윗분과 상의하여 조직개편안을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누구누구는 집에 가야 하고 누구누구는 어디로 보낸다 등의 다른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의 밥그릇을 찬다는 것이 참 기분이 더럽다는 것을 그 당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조직 전체의 생존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도 개인개인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팀을 없애기도 하고 팀원수를 줄이기도 하면서 대대적인 조직 정리에 들어갔습니다. 1년 사이 대략 40여 명을 줄였습니다. 무조건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겠지만 너무 비대해져 자연적인 다이어트를 통해 체질을 개선하기는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 판단이 되었기에 위절제술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곰곰 돌이켜 봐도 다른 대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똥개도 자기 나와바리에서 50 먹고 들어간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사업부장님을 비롯해 대부분의 팀장들이 오랜 기간 같이 근무한 지라 형제처럼 맺어진 끈끈이주걱 같은 관계입니다. 그러니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 같은 제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습니다. 이 분들 일하는 방식이 아주 독특합니다. 사소한 반대 의견에도 목숨 걸고 저항합니다. 얼굴을 붉히고 큰 소리를 내는 게 일상입니다. 제 예전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온갖 것들에 날을 세우고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사소한 것들에 화를 내고 소리를 치기도 하는 철없는 저의 모습이 겹쳐져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저항의 주축 세력들과 대화도 나눠보고 설득이 가능한지 타진도 해보았습니다. 사실 지금 와 곰곰 생각해 보니 저도 이미 그들을 실패한 사업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도 낙인찍어놓고, 이렇게 되도록 아무것도 안 하고 뭐 했냐는 비난의 시선을 가지고 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 부정적 생각에 그분들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아직 수행이 한참 부족했던 저이기에 반목이 끝없이 지속되었습니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밀고 나갔습니다. 가라앉기 직전의 배를 살리려면 다소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는 마음 가짐으로 한 땀 한 땀 정리하고 손을 보며 사업부의 무거운 부분들을 많이 정리했습니다. 조직, 설비, 비효율적인 시스템 등 거의 전반에 걸친 대대적 보수작업이었습니다. 지금도 아직 일부는 진행 중이지만 일단 큰 불은 잡았기에 한숨 돌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그래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건 팀원들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심적으로 힘들 때 같은 맘으로 함께 해주며, 재무 자료를 순식간에 가공하여 온갖 의사결정의 핵심자료를 제공해 준 '따뜻한 컴퓨터 박차장'과, 구조조정과 더불어 업무 프로세스 개선 등 체질개선에 힘써준, 뭘 맡겨도 늘 기대 이상으로 성과를 보여주는 '믿고 보는 백대리' 덕에 버텨 나갈 수 있었습니다. 가슴 아픈 사업부의 상황에 같이 동조하고 개선작업을 묵묵히 수행해 준 두 친구가 없었더라면 정말 아프기만 하고 성과는 없는 실패한 다이어트가 될 뻔했습니다. 두 사람에게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직도 다 상처가 아물지는 않았지만 응급수술은 마무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술로 인해 약해진 체력을 회복하는 과제가 남아 새로운 도전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고난의 1년을 보내고 나니 한 결 가벼워지긴 했습니다. 그래도 뒷맛이 개운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조직이 변하는 과정에서 안타깝게 함께하지 못하게 된 모든 분들의 앞날에 좋은 일들만 있으시길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