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職四] 첫 번째 인사발령 - 임원인사

직장인의 사계 - 가을(떠나고 남고 다시 누군가가 오는 계절)

by 등대지기

인사가 한창입니다. 앞서 명예로운 퇴직을 진행하였으니 이제 임원인사입니다.


규모는 작아도 그룹사인지라 신문을 통해 임원의 전보 내용은 일찌감치 파악했고, 게시판을 통해 세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금 모시는 사업부장님께서는 변동이 없으셨니다. 그런데 대표이사 변경이라는 엄청난 쓰나미가 몰려와 버렸습니다.

제가 입사했던 때와는 다른 그룹으로 회사가 넘어간 지라 이제 저희에게 인사에 관한 고급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소위 점령군이라는 분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정보가 도는 것 같았지만 철저히 저희 같은 기존 세력에게는 비밀이더군요. 조직의 생리니 뭐 어쩌겠습니까, 나라 잃은 설움이라고 저희들끼리 씁쓸한 위로를 나눌 뿐 별 수 없습니다.


작년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그 당시에도 제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제가 모시던 상무님께서 떠나시는 순서가 되셨다는 발령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발령지 한 장으로, 떠나는 자는 정말 말없이 떠나갑니다. 영원히 자리일 같던 책상과, 당연한 일상이었던 탕비실에서 내리는 커피 , 나와 함께 했던 컴퓨터들이 어색해지는 순간이 오면 당연한 없어집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도 10년여의 직장생활을 정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권고사직의 형태였고 버티면 대기발령 상태로 어떻게든 붙어먹을 수는 있었겠지만 피가 뜨겁던 시절, 그런 처분을 버틸만한 그릇이 아니었던 저는 '여기 아니면 곳이 없을쏘냐'라며 박차고 나왔습니다. 정확히는 쫓겨난 것이겠지요.


제가 떠나 봤기에 떠나는 분의 마음이 전해 더 애절합니다. 당연했던 것들이 이상 당연하지 않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은 돌이기에 아픈 느낌 충분히 공감할 있었습니다. 그렇게 떠나는 자는 어리둥절하게, 어버버 하는 사이에 조직에서 사라져 갑니다. 남은 자들은 조금 지나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새로워진 일상을 만들어 가는 게 조직의 생리이니 야속하다면 야속 있겠지요. 그러나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고 헤어지면 만나게 되는 것이 삶의 이치이니 편히 새로 맞을 삶을 반가이 맞이하는 자신을 위해 좋습니다.

떠나온 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훌훌 털고 새로운 문을 여는 태도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기입니다. 떠나는 자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남아있는 자라고 편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나도 언젠가 저런 모습으로 퇴장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잠시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일도 손에 잡히고 어수선합니다. 옆에 앉아있던 동료가 갑자기 책상을 정리하고 자리를 떠나 퇴장했습니다. 함께라고 생각했던 축이 사라져 버리니 한쪽 날개를 잃은 처럼 잠시 허우적거립니다. 비도 계속 오지 않고, 바람도 결국 멈추지요. 허우적거리던 날갯짓도 어느새 다시 유려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남은 자에게는 숙제가 하나 남아있습니다. 떠나간 자들이 떠난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슬픕니다. 사람이 떠나갔는지에 대한 이유를 어렴풋이 이해한 뒤에야 서서히 상처가 아물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바람이 번씩 지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자라납니다. 무뎌지기도 하구요. 그래서 늘 우리는 열심히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되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갑자기 떠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떠날 것을 알기에 오늘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때문이지요. 삶에서 어떤 문이 하나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닫힌 문을 오래 바라보느라 새로운 문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한다고 합니다. 새로 열린 문이 있다면 용감하게 문턱을 넘어서는 것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 않을까요.




그래도 아직 내 자리가 있다는 비겁한 안도감에 슬픈 아침입니다.

날씨도 구질구질한 게 이른 시간임에도 쏘주가 땡기는, 가슴이 시린 월요일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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