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사계 - 겨울 (인사발령 시즌에 즈음하여 내게 일어난 일)
인사발령 시즌입니다. 그 첫 번째 단추는 권고사직이라고도 하고 명예퇴직이라고도 하는 퇴사 종용 프로그램이네요. 몇 주 전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더니 대상자들에게 이미 통보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여러 분의 선배님들이 회사를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저와 사번 차이가 크지 않은 다섯 사번 정도 차이 나는 분도 포함되어 있으시니 정말 남 얘기가 아닙니다.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는 명퇴, 진급, 전보 등으로 회사가 온통 어수선합니다. 온갖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입방아를 찧어 대는 모습들이 자주 목격되기도 하구요.
권고사직을 받았던 선배 몇 분이 버티기로 하셨다고 합니다. 법적으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쫓아내지 못하니 버틴다고 하면 사실 회사로서는 고용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언론에 나오는 것처럼 책상을 빼 버리거나 도저히 다닐 수 없는 먼 곳으로 발령을 내기도 하지만 다행히 저희 회사는 그렇게 심한 조치는 취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렇게 버티는 케이스가 기존에는 거의 없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렇게 남은 분 중에 한 분이 제가 맡고 있는 팀원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헛웃음만 나옵니다. 물론 발령 당일 아침에 제게 통보는 했지만 실제로 발령이 뜨고 나니 참으로 황당했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이면 제가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을 선배를 생각하니 깝깝합니다. 회사의 뜻이야 대충 알겠지만 그 많은 팀 중에서 하필 제가 맡고 있는 팀인지 원망스러운 마음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팀원들도 술렁거립니다. 팁원들은 원망을 실어 제게 '알고 있었냐'는 눈빛을 보내옵니다. 저는 허탈한 외마디 욕설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아~ 신발.
그분은 저보다 5년 선배입니다. 그 선배의 동기들은 다 쟁쟁한 팀장들이구요. 속없는 양반이라 다른 팀원들을 괴롭히거나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겠지만 팀 분위기나 팀워크를 중시하는 제게 썩 달가운 인사는 아닙니다. 저보다 5년 선배이니 저희 팀원들에게는 10년 이상 먼저 입사한 대선배가 됩니다. 위아래가 많이 희석된 요즘이라고는 하지만 팀장보다 나이도 짬밥도 많은 동료가 달가울 리 없습니다.
에휴. 그래도 생각을 바꿔 봅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이미 떠 버린 발령을 돌려놓을 수도 없고, 오기로 한 사람을 제가 어쩌지도 못하니 말이지요.
선뜻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또 저 자신의 그릇을 키워 나갈 기회라 생각해 보려 합니다. 해결책이 있는 문제는 해결책을 찾아서 실행에 나서면 되고, 해결책이 없는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해야 아무런 득 될 게 없으니까요. 하지만 앞의 태도에 대한 전제는 일단 부딪혀 보는 것입니다. 부딪혀 보지도 않고 미리 걱정하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덤덤하게 늙다리 팀원과 일을 해 나가야겠습니다. 깝깝한 마음이 아주 조금은 나아진 것 같네요.
임원인사도 곧 날 것이고 직원들 인사도 곧 발령이 뜨겠지요. 이 틈바구니에서 우리네 직장인들은 나름의 평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일이 잘 풀려도 너무 나대지 말고 풀리지 않아도 다 뜻이 있겠거니 마음먹어야 나중에 덜 아픕니다. 사람 맘이 언제나 그럴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인사 관련하여서는 마음을 조금은 비워야 속이 덜 쓰리다는 점 기억해 두시구요. 칼바람 불어오는 시기 모든 분들께 좋은 일들만 있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