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職四] 사소한 질책에 열폭후

직장인의 사계 - 겨울(사소한 일에 웬 열폭이냐!)

by 등대지기

엊그제의 일입니다. 전날 술을 과하게 마시고 아직 술이 덜 깬 상태였습니다. 저 윗분으로부터 사소한 보고를 놓쳤다고 사업부장님이 심한 질책을 받았다는 전갈을 듣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당 팀장이었으니 내게 하는 비난이구나라는 생각에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업부장님 방으로 돌진해 제법 큰 목소리로 건방지게 '그런 사소한 안건까지 저 위로 올려야 되면, 우리 팀 막내가 오늘 반차 낸 것도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니냐',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른 중요한 일들이 많은 분들이니 소소한 일들은 알아서 처리하는 건데 그럼 뭐 하러 직급은 나누고 업무는 나누냐'며 애먼 분한테 분풀이를 했습니다.


사업부장님께서는 짜증과 슬픔이 섞인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시더니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닌 것 같은데'라는 간단한 대꾸를 해주셨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그렇게 무례하게 대응할 만한 일이 아닌데 술귀신에 씌어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 난리를 피우고 나니 제 맘도 영 불편했습니다.


자 그럼 알아봐야겠습니다. 뭐가 제 맘을 그리도 폭주하게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제 맘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노트와 펜을 들고 가만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마구잡이로 이런저런 감정들을 써 내려가다 보니 제게 처음으로 발견된 단어가 '인정 욕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충분히 하드캐리하고 있으며, 회사에 기여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데 그딴 사소한 일로 뭐라고 한다는 건 내 공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 아니냐. 나를 뭘로 보고 이러는지 라는 생각까지 있었습니다. '자부심'이라 부르는, 내가 남보다 뛰어나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아주 못된 생각까지도 근간에 깔려 있더군요.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음공부 한답시고 아침에 책도 보고 일기도 쓰고 명상도 하는 놈이 아직도 이 모냥이라니?


술기운을 빌어 튀어나온 저의 속내를 들여다보고는 헛웃음이 났습니다. 갑자기 와이프가 제게 던지는 뼈 때리는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명상이고 나발이고 먼저 마누라한테 상냥하게 대해라!' 맞습니다. 그 근간에도 제가 옳고 와이프가 잘못했다는 못된 생각이 깔려 있었습니다.


나아진다고 나아졌는데도 역시나 사람이 되는 길은 멀기만 하게 느껴집니다. 실수는 누구나 하지만 그 실수에서 누구나가 교훈을 얻지는 못합니다. 다행히 이번 실수를 통해 저는 한번 더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가 있었습니다. 배웠으니 실천해야겠지요.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름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그들을 존중하며 지내야겠습니다.


제 주변의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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