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職四] 한 줌의 온기

직장인의 사계 - 봄(벤치에 앉아 쉬시는 청소부 아저씨를 보며)

by 등대지기

언젠가부터 제게 늘러 붙은 뱃살을 깎고 늘어진 엉덩이에 다시 탄력을 주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이어리를 뒤져보니 작년 11월 11일 날 시작했네요. 나름 달리기에 진심인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새해 첫 근무일인 어제도, 오늘도 달렸으니 올해는 스타트가 꽤나 괜찮습니다. 뱀의 해이니만큼 꼭 뱀맹키로 길쭉하게 오래오래 좋은 습관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아침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두 컴컴한 겨울 길에서 청소하시는 분을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영하 8도라고 찍혀있는 휴대폰을 보면서 달려야 하나 고민을 하다 나선 길이었기에 더욱 춥고 바람 부는 힘든 새벽이었지요. 지나다니면서 늘 청소하시던 모습만 보았었는데 오늘은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하얀 입김을 한껏 내뿜으며 쉬고 계셨습니다. 청소가 힘드셨는지 거친 숨소리도 들려왔습니다. 그의 삶의 무게까지는 아니겠지만 어두컴컴한 새벽녘의 고단함은 뿌연 입김에 실려 전해졌습니다.


그분이 앉아 계시던 철제 의자가 참 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친 이에게 잠시 앉아 쉴 곳을 제공해 주기도 하고,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온기를 엉덩이에 불어넣어 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장한 일입니까. 맞습니다. 이 의자는 차가운 철제의자가 아니라 의자를 따뜻하게 데워 놓은 '온기의자'입니다.

'22년 1월의 어느 날 저도 버스 정류장 벤치로부터 큰 위안을 얻은 기억이 있습니다. 해외에서 들어와 격리를 마치고 잠시 물건을 사러 나왔다 들어가는 길, 춥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지 의자에 앉고 싶어 졌습니다.

어떤 환대도 바랄 수 없는 차갑고 날카로운 느낌에 몸서리 쳐졌지만, 그럼에도 몸이 너무 피곤한지라 잠시 기대어 쉬려 버스 정류장 벤치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갖다 대었습니다. 차가운 손길을 예상했던 제 걱정과는 달리 이분이 글쎄 아주 따뜻했습니다. 아니 뜨끈뜨끈 했습니다. 어린 시절 차가운 겨울날 콧물 흘려가며 밖에서 놀다 집에 돌아오면 냅다 뛰어들곤 했던, 이불 덮인 아랫목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아랫목에 달그락 거리며 모여 있는 밥그릇에 손이 닿았을 때의, 마음속까지 따뜻해지는 따스함처럼 제 엉덩이에 놀라운 뜨끈함을 전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고 계신 청소부 아저씨께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는 온돌 의자가 대견해 보이네요.




날씨가 춥다고 우리마저 차가워지면 안 되겠지요. 서로 기대고 온기를 나누라고 같이 모여 살고 있으니 서로서로 따뜻함을 나눌 시간입니다. 꼭 누군가의 엉덩이가 아니더라도, 사소한 말 한마디 미소 한 번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데워줄 수 있는 그런 하루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職四] 아침 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