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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職四] 나의 묘비명

직장인의 사계 - 봄(나의 묘비명을 통한 삶의 방향 설정)

by 등대지기

저번주 주말에 대뜸 아내가 '유서' 같은 거 써 놓은 거 있냐고 물었습니다. 추측컨대 어디선가 유서를 쓰면서 자기 정화를 하는 방법을 접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유서를 써 뒀다고 냉큼 대답해 버리고는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구체적인 유서는 아직 쓰지 못했습니다. 제 사전장례식을 거행할 때 써서 소중한 이들 앞에서 낭독하고 싶다는 아이디어 정도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신 제게는 잘 벼려둔 묘비명이 있습니다.


제가 떠나면 수목장을 해달라고 하겠지만 나무 앞에 작은 묘비석을 세우고 싶습니다. 2년 전 완성한 후로 조금씩 손을 보기는 했지만 기본 골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묘비명 테스트'라는 것이 있지요. 지금 하는 양심에 걸리는 행동이 과연 내 묘비명에 그대로 새겨진다고 할지라도 그대로 할지 생각해 보라는 일종의 자기 검열 프로세스입니다.


맞습니다. 삶의 끝을 미리 정해두고 노력하면 그 과정이야 뭐 알아서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양자물리학에 대한 책들을 접하면서 온통 혼란스럽습니다. 양자물리학과 영적세계가 혼합된 책들을 보다 보면 제가 한참 더 성장해야 사람구실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무겁게 저를 누릅니다.


그래서 제 묘비명을 다시금 되뇌며 25년도 제 개인의 운영방침을 세워보려 합니다. 제가 정한 그 끝에 부합하는 하루하루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제게 주어진 삶의 이유라 여기며 살아보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해 보는 그런 시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 나의 묘비명


평범한 직장인에서 인간을 사랑하겠다는 일념으로

자유인으로 거듭난 이가 이곳에 묻혔다.


50여 년 간의 수동적인 삶의 짐을 벗어던져 버리고


향이 짙은 글을 쓰는 낭만파 작가로,

주변 이들의 성장을 돕는 따뜻한 선배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업가로,

장례식을 자주 하는 괴짜 노인으로,


따뜻함과 여유를 나누며 인생 후반을 눅진하게 살다 간 자유로운 영혼이

세상에 온기를 보태고 이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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