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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職四] 아침 달리기

직장인의 사계 - 봄(멘탈 관리를 위한 러닝)

by 등대지기

11월의 어느 날 갑자기 뛰고 싶어 졌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갑자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허리둘레가 늘기도 했고 몸이 무거워져 무릎이 뻐근해지기도 하는 전조증상은 있었습니다만 그런 것들은 별로 애쓰지 않아도 무시하고 살 수 있었기에 직접적인 계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책은 거의 매일 읽으니 마음수양은 꾸준히 하고 있는 셈 치고 몸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곰곰 생각해 보니 혹사만 시켰지 따로 해준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메가 쓰리, 멀티 비타민, 루테인, 밀크씨슬을 챙겨 먹긴 하지만 이 정도야 뭐 현대인의 기본 옵션이니 뭐 몸을 생각한다고 하기 민망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1월에 10회, 12월에 17회를 달렸으니 나름 열심히 달렸습니다. 12월에 음주를 19회 했는데 음주 다음날에도 뛰었으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베트남 여행을 가서도 아침에 리조트 주변을 뛸 정도로 나름 진심입니다. 아내를 졸라 새로 산 Hoka 러닝화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러닝이 가진 매력 때문에 꾸준히 달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영하 8도에 가까운 날씨에도 잠시만 달리면 땀이 납니다. 몽글몽글 맺힌 땀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기분이 상쾌합니다.

달리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난데없이 잊고 지내던 제 꿈들이 솟아오르기도 합니다. 아침에 책 볼 시간을 러닝에 양보하기는 했지만 책 보는 것 못지않은 자기 정제의 효과가 러닝에 있습니다. 그러니 달릴수록 맑아집니다. 실제로 제가 거울로 얼굴을 확인해 봐도 달리기를 한 날 샤워 후의 얼굴이 더 맑은 느낌입니다.


보통 아침 5시 30분 전후에 달리다 보니 마주치는 분들도 맑은 분들입니다. 저도 덩달아 맑아지는 기분이구요. 어제는 달리다 하천변 갈대밭에서 소리가 나길래 고양이가 있나 보다 하고 흘끗 봤더니 고라니가 떡하니 서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잘 못 봤나 싶어 멈춰 서서 자세히 봤더니 정말 고라니였습니다. 자그마한 체구를 가졌지만 맑은 눈을 가진 고라니가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땀을 흘리는 저를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펄쩍펄쩍 뛰어가는 모습을 제게 보여주네요. 고놈 참 기특합니다. 전생에 사람이었는지 사람과 스스럼없이 잘 지냅니다. 건강히 잘 지내라고 인사하며 고라니와는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40분여의 달리기를 마치고 벤치를 찾아 팔굽혀펴기도 몇 개 하고 복근 운동도 가볍게 해 줍니다. 조용한 새벽 공기 사이로 제 신음소리가 퍼져 나갑니다. 하얀 입김과 함께 잠든 공기들 사이로 흩어집니다. 헉헉 거리며 힘든데 얼굴엔 연신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새벽에 부리전 떨며 달린 상으로 우주는 제게 미소를 선물해 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과 지내기가 다소 수월해졌습니다. 땀 흘리고 쾌변을 봐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달리기도 좋고 걷기도 좋습니다. 혼자 생각들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건 아주 훌륭한 투자인 것 같습니다. 속세에서 최고로 치는 돈도 들지 않고 마음만 먹으면 나머지는 자연이 해결해 줍니다. 어디에나 길은 있으니 뛰면 됩니다. 이 좋은 습관을 오래도록 유지해 봐야겠습니다. 제 생활 습관을 기록한 월별 Tracker에 러닝을 했을 때 쓰는 'R'이라는 글자가 꾸준히 박혀 있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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