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사계 - 겨울(전혀 명예롭지 않게 쫓겨난 기억)
일전에 제 직장생활의 변곡점들을 정리하다 잘 나간다 건방 떨던 과장 시절 명퇴를 당한 얘기를 정리했었습니다. 글을 쓴 지 1년 여가 지나 다시 읽어 보니 당시의 놀라고 당황했던 마음을 달래는 위주로 글을 썼더군요. 감정에 치우쳐 그 경험에서의 인사이트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 같아 다시 한번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려 보려 합니다. 통보를 받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내팽개쳐졌던, 그 차가웠던 아스팔트 바닥의 느낌을 다시 되새기며 저와 같은 우를 범하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다시 과거를 끄집어 내 봅니다.
과거에 썼던 글을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상치 못한 전환점
사실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처럼 저 빼고 모든 이들이 아는 저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 가장 늦게 알았고, 어떤 대처를 할 시간은 전혀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버티겠다고 하면 사측에서 강제로 내 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들만의 노하우야 있겠지만 말이지요. 다만 혈기 왕성하던 시절의 저였기에 그 수모를 감내하고 회사에 남는 길을 택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쪽팔렸습니다.
갑자기 맞아서 더 아팠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온 그 주먹에 저는 한 동안 그로기 상태였습니다.
사원, 대리 시절에도 누군가는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그때는 그저 먼 나라의 얘기처럼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 과장이 된 시점에도 당연히 저는 조직 내에서 임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일 잘하는 팀장 정도는 될 줄 알았습니다. 지금이야 전환점이니 배울 기회니 얘기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하늘이 노래지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웅~하는 울림과 함께 진공 상태가 되어 버린 느낌으로 한 동안을 지냈습니다. 많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지금 누리는 일상이 루틴 하리라는 건 저만의 착각임을 알았기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상처받은 짐승처럼 그렇게 으르렁 거리며 한동안을 방황했습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나름 일도 열심히 하고 퍼포먼스도 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살았는데. 발가벗겨져 사무실 한가운데 서있는 것처럼 낯이 뜨거워졌습니다. 모두들 저를 '꼴좋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은 화끈한 느낌이 싫어 사람들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아프기만 하고 말면 또 비슷한 아픔을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배워야 합니다. 제가 배운 것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는 '조직은 나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입니다.
나름 회사에 충성을 다 한다고 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가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충성과 그들이 바라는 충성 사이에 큰 간극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니 늘 플랜 B에 대한 개념은 있어야 됩니다.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생존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바로 취직이 되긴 했지만 많은 분들이 방황의 기간을 갖기도 하기도 하고 재기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는 습관을 들여야 새로운 자리를 얻기가 쉽습니다.
회사의 조치에 절대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마세요.
큰 충격을 갑자기 받으면 사람은 쉽사리 감정적이 됩니다. 누군가 갑자기 뒤통수를 때리면 어떻게 반응하나요? 대부분 '뭐야', '아이씨' 정도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직장에서의 뒤통수에는 위와 같이 반응하면 안 됩니다. 일단 조용히 사태를 지켜봐야 합니다. 배우는 기회로 삼아야겠구나, '완전 러키비키잖아' 할 수 있다면 뭐 하산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잠시 멈춰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최대한 드라이하게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감정적으로 회사를 비난하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 합니다. 명퇴를 해야 한다면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협상에 나서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다 필요 없고 앞으로 이쪽으로 오줌도 안 눈다는 생각은 가장 나쁜 케이스입니다. 떠나면서도 끝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나야 인사담당자도 일말의 양심이 있기에 향후 레퍼런스 체크할 때 나쁜 말은 안 합니다. 경력사원을 뽑을 때 대부분 기존 회사에 확인해 보는 건 다들 아시지요? 인사담당자끼리 연락하기도 하고 지인의 지인을 통해 체크해 보기도 한답니다. 세상 참 좁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움 마무리는 늘 남는 장사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안에 떨며 조마조마하며 살아야 할까요? 아니지요.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준비를 미리 해두시면 전혀 두려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회사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사람이 되세요.
회사는 영원하지 않지만 시장은 인간의 삶으로 보면 거의 영원합니다. 그러니 회사에 매몰되지 말고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합니다. 그러니 일을 할 때 내가 성장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세요. 얼마나 좋습니까. 회사 돈으로 이것저것 해볼 수도 있고 말이지요. 그리고 업계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세요. 교류의 장에서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참여하면 더욱 효과 만점입니다.
한 가지 직무, 조직에만 올인하지 말고 변화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세요.
좋은 기회가 있음에도 기존 조직에서의 안정성, 그리고 새로운 조직에서의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화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과 한정된 일을 하다 보면 더 많은 것을 배울 기회를 얻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바꿔 유연해지세요. 새로운 곳에서의 변화는 본인을 객과적으로 한 번 리뷰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지요.
회사에서 최선을 다하되 본인 자신의 성장을 멈추시면 안 됩니다.
회사에서는 월급을 받고 노동을 제공하기로 한 약속 관계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런 태도가 결국 자기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일 외에도 개인적인 성장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 성장이건, 금전적 성장이건 간에 뭔가를 계속 탐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니 출근 전, 퇴근 후 여가 시간에 뭔가 자신을 채워 넣는 시간을 가져야 롱런할 수 있습니다.
소위 좋지 못한 큰 일을 겪고 나서 무언가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여러분께도 언제 갑자기 찬비가 내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작으나마 우산을 가지고 계신다면 '타닥타닥' 우산에 빗방울이 튀는 소리를 즐기는 여유로운 시간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준비하세요. 언제나 깨어서 본인이 제대로 가고 있는지 늘 관찰하는 사람만이 본인의 삶을 살 수 있으니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