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사계(겨울) - 게으른 자의 자기반성
한 달을 글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습니다. 해외 출장을 한 주 다녀왔다손 치더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름 열심히 쏟아 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뭔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늘 뒷맛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과연 이게 정말 내가 쓰고자 한 글이었나 싶었습니다. 다들 관심 없는 글을 계속해서 배설하는 것이 어떤 큰 의미가 있을까. 이런저런 자기 파괴적인 생각에 빠져 술독에 묻혀 지냈습니다.
3년 전의 어느 날 포항의 한 펜션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몸부림치던 그때 저는 담배 피우기를 멈췄습니다. 술 먹을 때만 가끔 피운다는 구차한 변명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다시는 '어제의 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몸부림으로 담배를 내던졌습니다. 이제 또 그런 극적인 계기가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 아닌지 한 번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저는 늘 과했습니다. 운동을 할 때 특히 자꾸 무리하다 부상을 자주 입었습니다. 한참 플랭크에 심취하여 변형된 여러 플랭크를 시도하다 어깨를 다쳐 테니스를 비롯한 모든 운동을 거의 2달여 쉬기도 했습니다. 달리기를 해보겠다고 덤볐을 때 발바닥에 타박상(?)을 입어 걷지도 못하고 2주간 절뚝이며 다니기도 했구요. 꾸준히 오래 해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텐데 늘 마음이 급합니다.
최근 몇 년간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로 자기 계발러가 되어 새벽같이 일어나 마음공부도 하고 책도 보고 앞만 보며 달리다 툭 하고 끊어져 버린 연줄처럼 허망하게 한참을 하늘만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눈앞에 물이 있지만 가까이 가면 닿을 수 없어 늘 갈증을 느낀다는 저 서양 신화 속의 탄탈로스처럼 이 책 저 책 읽어도 늘 갈증이 깊어만 갔습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멈춰 서 보니 여전히 제 모습은 변한 게 없더라는 겁니다. 이 근원적인 허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
잠시 독서는 멈추고 내면으로 침잠해 봐야겠습니다. 모든 위대한 분들의 말씀은 결국 하나로 통하더군요. 모든 건 이미 내 안에 있다. 그러니 밖에서 찾으려 허둥대지 말고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봐라. 저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정작 제 자신을 들여다보는 심도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럽게 시간 투자 해서 배워온 위빳사나 명상도 삶에 안착시키지 못했고 거울명상도 결국 제대로 한 적이 없더군요. 진드감치 우물을 파지 않고 여기저기 표면층만 파 내려가다 다시 다른 우물터를 찾아 헤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반성은 늘 쉽지 않습니다. 자기 객관화가 어려운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도 한 달간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은 해야 명색이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으로서 면을 들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미루고 미루다 오늘에서야 글을 몇 자 적어 봅니다. 봄날이 성큼 다가온, 와이프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월급날, 그래도 다시 제가 바라는 삶의 한 모습으로 돌아와 뿌듯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