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職四] 모두가 당신의 성공을 바라진 않는다.

직장인의 사계 - 겨울(대부분 우리 팀이 잘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구나)

by 등대지기

2월에 새로 맡게 된 팀의 주요 임무가 '신규 상품 개발'인지라 나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국내외 여기저기를 바삐 돌아다닌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만 해도 경기도에서 울산까지 여러 곳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우울해지게 된 사건이 생깁니다.




과장 초년차 시절 신사업 TFT에서 영업을 담당했던 저는 사방팔방으로 신규 투자한 설비에서 생산한 제품을 팔기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열심히 제안도 하고 샘플도 제공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엔가 옆 팀 선배의 얘기를 듣고는 한참을 씩씩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선배가 말하길 '야, 열심히 한다고 그게 잘 되겠니, 시장성도 없고, 우리 회사에 어울리지도 않는 사업인데. 너희 팀원들이 마치 대단한 일 한답시고 다니는 것 같던데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맞습니다. 지나고 곰곰 생각해 보면 이 선배 말이 100%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팀의 그 당시 태도는 마치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의열단이라도 된 양 일이야 죽어라 열심히 했지만 태도면에서는 다소 건방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반 부서와 달리 회사의 지원도 잘 받고 있어, 나름 편안히 일하는 시절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질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공평. 그들의 공평은 일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모두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인가 봅니다. 그 당시의 어린 저는 이런 그들을 나약한 인간들이라며 무시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저희 팀이 딱 그 어린 시절의 모습이었나 봅니다.


저는 나름 회사로부터 지원을 잘 받아오는 팀장입니다. 팀장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팀원들과 함께 생각하고 만든 방식이나 행동 전략을 윗사람들, 즉 회사로부터 승인을 받아내고 필요한 자원을 팀원들에게 적기에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들 가기 힘들다는 먼 나라 출장도 나름 빌드업해서 보내고, 외부 교육에 대해서도 타 부서에 비해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함께하는 팀원들이 잘해 주어야 저는 물론이고 회사에도 득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당연스레 한 행동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순수했을지라도 타인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다른 사업부 인원들과의 술자리에서 해괴망측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소싱해서 상품화할 제품을 팔아야 할 영업팀장들을 믿지 말라는 겁니다. 뭔 강아지 짖는 소리인가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이 외부에서 저희 팀에 대한 험담을 자주 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옛 선배의 빈정거리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얘기를 듣고 보니 맥이 풀렸습니다. 그 외에 다른 얘기는 없냐고 묻자, 애초에 회사 전반에 저희 팀의 성공을 바라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질투라고 하기엔 유치하지만 뭔가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나 사업이 잘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내지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힘이 빠졌습니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면서 뒤에서 그렇게 공격을 하는 주변 팀장들에게 심한 배신감도 느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의도적으로 그들과 말도 섞지 않으며 지냈습니다. 나 싫다는 놈이 저라고 좋겠습니까. 저도 사람입니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불편해진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가 했던 일들이 떠 올랐습니다. 남일이라고 편히 얘기하던 것들부터 '어디 해봐라 되나'라며 다른 이들의 새로운 방식을 거부했던 모습들까지. 전부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이 나쁜 게 아니라 저와 같은 사람이며, 사고의 폭이 별반 다르지 않은 범부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걸 통달해서 다 품고 가기에는 제 그릇이 좁쌀만 하다 보니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단 하나만 하기로 했습니다. 별 기대 없이 대하기. 그들의 모든 반응은 누구나 그럴 수 있는 보편적인 생각이기에 어떤 감정의 개입 없이, 즉 큰 기대 하지 않고 사실 위주로 소통하기로 말이지요. 오늘이 제 실험의 첫 번째 날입니다. 그냥 다소 덤덤하게 기존처럼 편안하게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되, 일 관련해서는 담백하게 사실과 있는 그대로의 상황만을 바탕으로 소통해야겠습니다.




완전히 맑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칠흑 같은 어둠이 옅은 안개 정도로 바뀐 것 같긴 합니다. 역시나 회사에서는 사람관계가 전부인 것 같습니다. 일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거니 말이지요. 오늘 하루 제 작은 실험이 성공으로 끝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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