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職四] 감정의 워라밸

직장인의 사계 - 겨울(일과 삶에서 감정의 균형 잡기)

by 등대지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워라밸은 다들 이야기하는, 개인의 삶의 영역을 중시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근무 환경의 경우 이미 많은 부분 개선이 되었고 예전처럼 어떤 대가 없이 야근을 막무가내로 시키는 세상은 아니니 말이지요.

그럼 제가 다루고 싶은 워라밸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일과 개인 생활에 있어서의 감정의 균형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일이 개인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고 개인 생활이 일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는 밸런스입니다. 쓰다 보니 말이 어렵습니다. 저의 최근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번 주말, 공부를 억지로 시키려는 아내와 그 방식에 불만을 품은 중2 큰 아이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투닥투닥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지속적인 소음으로 제 안의 나쁜 에너지도 증폭되고 있었구요. 그러다 온 가족이 큰 소리를 치는 상황을 정점으로 마무리는 되었지만, 그래도 그 더러운 기분은 제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져 나가지 않았습니다. 월요일 출근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우울합니다. 오늘따라 일도 손에 잘 안 잡히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모든 일들을 대하기 시작합니다. 평상시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일들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고 일도 손에 잘 안 잡힙니다.


반대로 회사에서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날, 욕을 먹고 비난의 대상이 되어 영혼이 탈탈 털린 그런 날은 집에 간다고 짜잔 하고 기분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별일 없었을 아이들의 장난에도 성을 냅니다. 약간 높은 정도의 언성에도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말도 날카롭고 뾰족하게 나갑니다. 얼굴에는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 있고 절로 인상이 써집니다. '집구석 꼬라지 하고는'이라는 말이 자꾸만 뱃속에서 기어 올라오려 꿈틀 댑니다.


위 두 사례처럼 회사와 집에서의 감정은 서로 연결되어 잘 분리되지 않습니다. 나름 스위치를 오프하고 잘 끊어낸다는 사람들조차도 겉으론 티가 나지 않더라도 좋지 않은 에너지는 가슴에 남아 약하디 약한 인간을 괴롭힙니다.

팀원 시절의 어느 날이 문득 생각납니다. 출근하시는 팀장님의 표정이 좋지 않은 날, 팀원들 사이의 메신저가 분주해집니다. '팀장 부부싸움 했나 보다, 모든 결재는 내일로 미뤄라'. 그 팀장이 제가 되어 버린 지금 제 감정 처리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당장 해결할 방법을 떠올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문제는 정확히 인식을 하였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결국 평정심 유지와 태도 관리가 평생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더 깊이 수렁에 빠지기 전에 자각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하루아침에 나아질 사안이 아닌지라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히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고 마음 먹지만 참으로 이놈의 마음이란 것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의 끝에 오늘 하루 나름 가볍게 지냈다며 미소 지을 수 있도록 하루만큼 노력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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