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職四] '화캉스'라니요?

직장인의 사계 - 겨울 (화캉스라는 얄궂은 말을 듣고)

by 등대지기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더니 꾸준히 내립니다. 아침 출근길에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건 단연 '장화'입니다. 여성분들의 장화는 사냥꾼표가 나름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 같더군요. 비 오는 날만 기다렸을 장화들을 생각해 보니 애처롭기는 합니다. 비 오는 날, 특히 장화를 신을 정도로 비가 많이 오는 날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터이니 말이지요. 여름 한철 폭우를 기다리는 장화의 애타는 심정을 떠올리며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뉴스를 보니 '화캉스'라는 해괴망측한 단어가 나오더라구요. 자세히 읽어 보니 화장실과 바캉스를 합친 신조어라고 하네요. 호캉스의 오타가 아닌가 살펴보다가 내심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케케묵은 군대 시절 화장실에서 입에 쑤셔 넣던 초코파이가 생각나기도 하고, 화장실에서 코를 골며 주무시던 신입시절 사수인 최 과장님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2013년인가 중국 심천에서 사무실을 구하러 다닐 때였습니다. 사무실 크기나 구조 모두 다 맘에 드는데 화장실이 에러더군요. 쭈그리고 앉아 쏴야 하는 무릎관절 브레이커 화장실이었습니다. 집주인에게 좌변기로 바꿀 수 있냐고 물었더니 중국어로 대차게 '안돼(不行!)'라고 한 마디 합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편히 앉는 변기를 가져다 놓으면 직원들이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이고 하면서 지나쳤던 중국에서의 추억이 남의 일 같이 않은 건 왜일까요.


사실 저는 화캉스라는 말에 반가운 느낌보다는 거부감이 더 크게 듭니다. 이미 관리자의 입장이 되어서 인지 아니면 천성적으로 쫌스러운 걸 싫어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뭔가 처량한 느낌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직장은 일터입니다. 놀이터가 아니지요. 잠시 쉴 수야 있겠지만 당당하게 내게 주어진 휴식시간을 즐기는 것과 '큰 일'을 핑계로 그 공간에 박혀있는 건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다 진짜로 급한 누군가는 나의 화캉스로 인해 진땀을 뺄 수도 있습니다. 화장실에 붙어 있던 옛 선배들의 운치 있는 문구가 생각납니다. "당신이 안에서 사색에 빠져 있는 순간, 저 밖의 누군가는 사색이 되어 갑니다." 함께 하는 공간에서는 그 공간의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 상호 간의 예의입니다.




그러니 음지에서 말고 양지에서 당당히 쉬는 건 어떨까요. 회사 주변을 보면 이따금씩 동료들과 회사 주변을 도는 후배들을 마주치곤 합니다. 햇볕도 맞고 바람도 느끼면서 잠시 걷는 게 훨씬 나은 휴식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밝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밝은 생각이 자리 잡고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두컴컴한 곳에서의 화캉스보다는 산캉스(산책 + 바캉스)로 바꾸시는 건 어떨까요? 빨리 걷지 말고 천천히 몸에 마음을 맡기고 걷다 보면 어지간한 근심은 쉽사리 떨어낼 수 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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