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 열심히 살았는데 이 삶의 허무함은 어디에서 오는건지.
차분하게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어느덧 추위도 얼추 지나 가신 것 같고 곧 겨드랑이에 땀 흘리며 지낼 계절이 돌아올 것 같습니다. 입방정 떨면 안 된다는 이여사님 말씀을 새기며 누그러진 날씨 얘기는 그만하겠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늘 누군가가 못마땅하고 꼴 배기 싫고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따라다닙니다.
이쯤 되면 한 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 모든 미움이 다 그들의 잘못이란 말인가?
정말 그럴까요? 곰곰 침잠해 봅니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더 갈 곳이 없는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나옵니다. 도무지 이 안에 뭐가 있길래 이리도 삶이 힘든지 생각하다 보면 저 안에 숨어 있는 저를 만나게 되지요.
물어봅니다. 도무지 왜 그리 옹송그려져 살아 가는지.
왜긴 이 바보야.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야. 춥고 외로운 곳이라고. 저들이 너에게 관심이나 있는 줄 알아. 다들 지 생각만 하는 머저리 들이라고.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 먹히지 않으려면. 먼저 물지 않으면 니가 물릴걸. 먼저 등 쳐 먹지 않으면 등신같이 등을 쳐 맞을 일이 생길 거야. 꼬일 대로 꼬여 도무지 매듭을 풀 수 없을 것 같은 실타래처럼 언젠가 제주도에서 봤던 연리지처럼 서로를 꼬고 꼬아 도무지 풀어낼 수 없는 그런 껌딱지. 그래 껌딱지야. 내 안에 척 하니 달라붙어 편안히 숨을 쉴라치면 기도를 막고, 편히 음식을 삼키려 치면 식도를 꽉 채워 버리는 거대한 껌딱지. 언젠가 혀가 잘 닿지 않는 곳에 들어가 이에 찰싹 붙어 버린 껌딱지를 혓바닥으로만 떼어 보려 한 적이 있었어. 혀에 쥐가 날 정도로 뻗고 뻗어 밀어내려 했지만 해결되지 않는, 결국 짭짜롬한 손가락을 입안 깊숙이 밀어 넣어 뜯어내야만 했어. 늘 그런 식이야 이놈의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잡으려 하면 이리 피하고 저리 파하고,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애를 태우고는 훌쩍 도망가 버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약 올리듯 옆에 찰싹 붙어서 혀를 낼름 거리지. 그놈의 혀. 혀가 문제야. 생각 없이 말을 뱉어내는 고놈의 쌧빠닥. 확 뽑아 버리고 싶어도 미끌거리는 놈이 잘 잡히지도 않아. 뭔 놈의 잡히지 않는 게 이리도 많은 거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맞는지도 모르겠는데 누구도 알려주지 않아. 좀만 더 가면 된다고. 좀만 더 참으라고 알려주기만 해도 좀 더 나을 것 같은데. 씨발. 좆같은 인생. 답답해 죽겠네. 힘들기는 오지게 힘든데 도무지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힘에 겨워 죽겠는데. 왜 이리 척척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즐기면서, 누리면서 사는 인간들은 저리도 많은 거야. 공부도 못하진 않았고 어지간한 직장에도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갔건만 여긴 또 어디야. 누구는 여기도 못 와서 난리라는데 나는 왜 자꾸 여길 떠나고 싶지.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이 더러운 기분. 뭘까.
씩씩한 척. 아무 일 없는 척. 열심히 일하고 있는 척하며 하루를 채워가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척'이라는 걸 할 힘이 남지 않은 거지. 그러니 밤만 되면 날카로운 거야. 더 이상 가면을 들고 있을 힘이 없거든. 가면이 반쯤 내려져 맨 낯짝이 기어 나오는 그 순간이야. 그때부터 삶이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외로워. 다 싫어진다고나 할까.
이제부터 진검 승부야. 살짝 스쳐도 죽을 수 있는 진검승부. 진짜 칼이야. 나무칼이 아니라고.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자 잘해보라고. 친구.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제 안에 저런 친구가 앉아 있다는 걸 발견합니다. 역시나 삶이 늘 순탄치 않은 이유는 밖이 아닌 안에 있나 봅니다. 기분이 별로인, 날씨는 참 더럽게도 좋은 수요일,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