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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Apr 11. 2024

[職變] 늘 배우는 자세

직장생활의 변곡점 - 새로운 기회를 찾아 중국으로


지금 여기는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현재  


  이도 저도 되지 않던 때에 신사업 TFT를 시작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존에 제가 담당하던 아이템과 사업적 연관성이 있고, 제가 맡고 있던 업체가 신규 아이템의 잠재적 고객이라고 하여 제가 대상에 노미 되었습니다. 제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팀장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팀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꼴 보기 싫은 놈 털어낼 구실이 생겼으니 팀장님도 좋고, 저도 말도 안 되는 강아지 짖는 소리 더 이상 안 들어도 되어 좋다고 생각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훌륭한 딜이 성사된 것입니다. 그렇게 저와 중국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TF팀에서의 제 역할은 신규 제품의 국내 프리마케팅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신규로 투자한 라인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국내의 기존 거래선에 판촉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팀에는 주요 타깃 시장인 중국을 담당하던 동기급의 경력사원과, 기획 업무를 맡던 후배, 영업 지원을 하던 후배를 포함 총 4명의 팀원이 있었고, 팀장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물론 개발, 생산, 품질을 담당하는 10여 명의 엔지니어도 있었습니다만, 근무 사이트가 달라서 본사에서의 영업조직 내 팀원은 4명이었습니다. 국내 마케팅이 녹록지 않고, 가망성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예전에 중국어를 잠시 학습했던 이력이 있는 제게 중국출장을 동행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중국어는 회사에서 지원을 해 준다기에 대략 2년 정도 회사 앞 학원을 다녀 떠듬떠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회사가 종로 학원가와 가까워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열심히 다녔는데 드디어 빛을 볼 날이 왔습니다. 내수영업을 담당해서 쓸모도 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소규모 회화반에서 중국인 선생님과 대화를 하며 배우는 코스였는데 늘 즐겁게 수업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뭘 하면 열심히 하는 성격인지라 강의내용 녹음해서 외근 가는 차 안에서 돌려 듣고 따라 하며 이상하게 열정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렇게 배웠던 중국어를 써먹어 보겠다며 10여 일의 중국출장을 동행했습니다. 같이 간 동료는 중국어과를 졸업했고, 계속 중국 영업을 담당했기에 상당한 수준의 중국어를 구사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나름 중국어 학습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따라갔는데, 실전에서의 결과는 정말 좌절이었습니다. 천천히 제 중국어 실력을 고려하여 얘기하던 친절한 우리 중국 선생님과는 달리 따발총 같은 속도와 약간 눌린 듯한 사투리 섞인 발음은 진짜,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첫 출장은 그렇게 현실의 벽만 절감하고 별 성과 없이 끝났습니다. 하나 성과가 있다면 현실의 벽은 정말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멈출 제가 아니지요. 배우고 정진하는데 익숙한 저이기에 강점을 발휘할 시간이 왔습니다. (강점혁명을 통한 진단을 통해 제가 가진 강점 중에 꽤나 높은 점수를 받은 항목이 '배움'입니다) 초기에 적응하기 위해 저는 미팅을 몰래 녹음해 보았습니다. 모든 미팅을 다 리뷰하지는 못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미팅은 녹음하고 찬찬히 들어보는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자주 쓰는 단어들은 사전을 찾아 정리해 뒀고 사전에도 없는 업계 용어는 중국어에 능통한 동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업계 용어와 자주 쓰는 표현에 익숙해지자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저를 조금 더 배려해 주는 대리점 사장들과의 대화는 훨씬 편해졌습니다. 술 마시고 농담하기 좋아하는 제 성격을 바탕으로 음주를 동반한 야간 시간대에는 중국어 실력이 대략 1.5배 정도 증가되는 기이한 체험도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언어 학습은 말을 많이 하고 많이 듣는 것인가 봅니다. 알코올의 힘을 빌어 거침없이 내뱉는 음주중국어를 통해서 제 하관은 중국어에 익숙하도록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 중국어 실력은 훌쩍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TF팀에 발령받고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이 중국어 실력 업그레이드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중국 업체 쫓아다니며 2년여를 보내게 됩니다. 그 와중에 거의 1년 반 이상은 중국에 체류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당시 비자 핑계를 대고 가족들을 보러 한 달에 한 번 귀국했지만 25일 정도는 중국에 체류했었으니 중국생활이나 진배없었지요. 심천이라는 중국 남부 지역에 아파트도 얻고, 자전거도 사고 제법 사람 사는 모양을 갖춰 엔지니어 1명, 영업 담당 2명과 함께 지냈었습니다. 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생활 중국어가 폭풍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은행 계좌 개설, 인터넷 설치, 장 보기 등 여러 상황에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기회는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냥 학교에 입학해서 배우는 것과는 또 다른, 정말 리얼한 생활을 통한 중국어, 중국인에 대한 공부는 그 이후에도 제게 그들을 이해하고 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회는 정말 엉뚱한 모습으로 오는 것 같습니다. 정말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그렇게 기회는 스멀스멀 기어 와서는 '짜잔'하고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만 누군가는 그 기회를 알아보고 모셔 오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지요. 모든 문이 닫혔다고 생각할 때 닫힌 문만 쳐다보느라 새로 열린 문을 보지 못하는 우둔한 마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 생활하던 팀에 저와 맞지 않는 팀장님이 오셔서 쫓겨난 저에게 신은 또 중국 생활이라는 기회를 통해 또 한 번 자라날 기회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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