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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May 14. 2024

[職變] 명퇴 후의 새로운 시작

직장생활의 변곡점 - 아쉽게도 너무 쉽게 새로운 직장을 구하다

지금 여기는 : 1년 차,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현재  


  전편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전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퇴사 통지를 받고 음성의 길바닥에서 느꼈던 기분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담배 한 대를 물고 새벽 1시에 가까운, 만물이 쉬고 있는 그 시간에, 도로 경계석에 주저앉아 소리 없는 울음을 울었습니다. 아파서 라기보다는 창피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고, 조직에 대한 서운함 보다는 그간 바보 같이 살았던 저 자신에 대한 분노의 울음이었습니다. 사실 많이 아팠습니다. 모든 걸 다 잃은 듯한 느낌도 들고, 비련의 여주인공인 것 마냥 피해자 코스프레도 하고 다녔던 것 같네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뼘 더 자라난, 성숙의 수준이 다른 지금도 같은 일을 겪으면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 같으니 말이죠. 아픔을 뒤로하고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예전에 사내에서 같이 야구 동호회 활동 하던 선배가 추천해 준 회사에 덥석 원서를 냈습니다. 


  제가 원서를 낸 회사는 생판 모르는 회사는 아니었습니다. 기존에 같은 회사에 다른 사업부로 있던 일부 사업부를 물적분할하여 설립한 회사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면이 있거나, 동호회 활동 등으로 친한 사람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면접도 모두 알던 분들이 보셨고 직위나 경력도 모두 인정받았으니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아직 사직서에 잉크가 마르지 않을 무렵, 너무도 수월하게 다음 취직 자리가 세팅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이따금씩 생각하는 아쉬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크게 한 방 맞았으니 조금은 누워서 그 충격을 더 곱씹고 분발할 에너지를 얻고 일어섰어야 되는데, 너무도 쉽게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조금 더 아프고, 처절하게 반성하고 지나야 할 시기를 너무 얼렁뚱땅 넘어간 게 아닌가 하는 배부른 아쉬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신은 늘 제게 모든 날들을 이용해 배우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그 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래서 늘 삼가고 조심합니다. 삐끗하면 너무 아프게 배워야 하니 따끔한 예방주사 정도로만 배울 수 있도록 미리 자세를 가지런히 하고 겸손히 맞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10년여 직장생활을 하던 익숙한 곳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낯선 환경에서 낯선 아이템을 맡아 다시 직장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회사를 옮기는 잠시의 휴식동안 쉬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단 하루의 실업자 신분도 없이, 오늘 퇴사하고 내일 다른 회사로 입사하는 제대로 된 '소팔자'를 인증한 꼴이 되었네요. 저는 일복은 늘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많은 일들이 모두 배울 수 있는 기회였을 텐데,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린 것이 아닌가 아쉬운 생각이 들곤 합니다. 물론 그래서 지금은 버거운 일들이 닥쳐도 꾸역꾸역 완수해 나갑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자라날 수 있으니까요. 


  얼마 전 산에 오르다 나무테를 본 적이 있는데, 가장 안쪽의 원은 나이테 사이의 간격이 넓었고, 밖으로 갈수록 그 간격이 좁았습니다. 우리네 직장생활에서의 배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같은 노력을 들인다면 시간이 흘러 직급이 올라갈수록 성장하는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애써 배워야 합니다. 직장에서 끝을 보고자 하건 개인 사업을 하려 하건 마찬가지로, 지금은 직장에 있으니 여기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갈고닦아야 합니다. 


  기존 중국생활 경험 및 영업 경험이 있어 중국 법인 관련 사항들에 대한 대응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직접 세일즈를 하는 게 아닌 지원 역할이었기 때문에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머리가 완전히 굳지는 않았는지 아이템에 대해서도 금방 학습하였구요. 생산 라인의 메인 엔지니어와도 기존에 다소간의 친분이 있어 어렵지 않게 사업부 이곳저곳에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타고난 술판 짜기 능력으로 팀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게 되었지요. 불과 채 반년이 가기도 전에 저는 금방 새로운 조직에 아무렇지 않게 적응하였습니다. 


  그렇게 1년여를 술에 물탄 듯 물에 술 탄 듯 흘려보냈습니다. 중간중간 중국에 출장도 가서 오랜만에 백주도 좀 마시고 중국요리도 먹을 기회가 있었기에 생활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그 당시 사업부장님께서는 저를 좋게 봐주셨습니다. 기존에 신사업 위주로 어려운 영업을 오래 했고, 해외에서 고생한 거 다 안다시며 어깨를 두들겨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확실히 경험의 스펙트럼이 중요한 것 같네요. 그분은 혈기 넘치는 과장 즈음에 태국에 새로운 공장을 세팅하며 고생을 많이 하셨던지라 신사업이나 해외 근무에 대한 어려움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저도 최근에 해외로 주재원 근무를 떠나는 후배들이 있으면 점심 한 끼 사주면서 외로운 생활 잘 버티라며 격려해 주곤 합니다. 또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시야를 많이 넓혀 보고 여기저기 사람들 많이 만나보라 조언도 해줍니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1년 반 정도를 보내던 어느 날 갑자기 사업부장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중국 법인에 공석이 생겼는데 주재원 근무 해보는 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즈음 저는 또 건방병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중국 법인의 제 카운터 파트너인 담당 선배가 영 못 마땅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넋두리도 질려 가고 있었고, 늘 빈정대는 듯한 말투도 별로였습니다. 그런데다 저도 중국에서 굴러 먹었던 놈이었던 지라, 제가 하면 그 보다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지금 와서 보면 그 선배는 나름 최선을 다했던 거고 구조적 어려움 때문에 실적이 좋지 않았던 거지 사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나름의 건방을 바탕으로 저는 10초도 고민하지 않고 '제가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넙죽 대답했습니다. 물론 제가 동의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겠지요. 주재원을 내 보낸다는 건 회사입장에서 볼 때 기본적으로 비용이 상승합니다. 숙소 비용, 아이들 학비, 주재 수당 등 같은 직급의 본사 인원 대비 2배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므로 쉽게 결정하지 않는 문화였습니다. 


  그렇게 생각 없이 불쑥 대답해 놓고 2주 정도 지나서 중국 출장을 갈 일이 있어 중국 광동성의 심천 지역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친하게 지내던 동료에게 메시지가 왔더군요. 중국에 주재원 발령 났는데 알고 있었냐고요. 막연하게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발령이 날지는 몰랐고, 그 날짜가 불과 석 달을 앞둔 10월 말이라는 것에 더욱 놀랐습니다. 


  이렇게 또 순간의 선택이 저를 '중국 상하이'로 데려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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