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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대지기 Jun 07. 2024

[職變] 지독히도 맞지 않는 상사와

직장생활의 변곡점 – 안 맞아도 너무도 안 맞는 윗분과의 동행

지금 여기는 : 1년 차,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현재  


    중국 상하이로의 느닷없는 파견근무가 시작되었습니다. 집도 보러 다니고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도 받았습니다. 이미 현지에서 근무중 이던 법인장 1분과, 다른 아이템의 영업팀을 맡고 있던 동료 1명과 현채인 20여 명과 함께 상하이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업무는 사실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습니다. 본사에서 담당하던 아이템이었고 가끔씩 다니던 출장으로 직원들과도 면이 있던 터라 수월하게 적응하였습니다. 아직 사람들에 대한 파악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곳의 유일한 상사였던 법인장님과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습니다만 지금 와서 보면 그때가 제 인생을 휘저어 놓을 파견근무 기간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직장생활의 위기가 왔습니다. 유일한 상사와 너무도 안 맞았습니다. 현장과 영업을 중시하는 저와 관리를 중시하는 그분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큰 벽이 있었습니다. 뭐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저와 아무것도 바꾸거나 새로운 시도를 극도로 꺼리는 성향을 가진 그 분과는 완전 반대에 있는 듯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소통이라는 것에 별 관심이 없고 답정너에 가까운 분인지라 같이 근무하던 동료도 자주 난감해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그 친구는 표현의 수위를 조금 낮춰 언성이 높아지진 않았지만 저는 한 번씩 욱하곤 했기에 사정이 조금 다르기는 했습니다. 


    사실 다른 해외법인들 보면 주재원들끼리 똘똘 뭉쳐 골프도 치러 다니고 저녁도 자주 먹고, 가족들과 식사하는 자리도 자주 갖곤 했습니다. 이역만리타국에서 같은 회사, 같은 지역으로 파견 나와 생활하는 인연이 얼마나 큰 것이겠습니까. 그럼에도 저희 법인은 정반대였습니다. 갈수록 부딪히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지금처럼만 마음에 여유가 있고, 마음수양이 되어있다면 적당히 거리를 두며 취할 것만 취하고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했겠지만, 의욕이 충만한 상태로 시작한 현지 파견근무였기에 제겐 여러 가지 해 보고 싶은 의욕이 뜨거웠습니다. 


    이렇다 보니 제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는 번번이 극심한 반대와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힘들었습니다. 해보겠다는데 도대체 왜 그리도 반대하는 건지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눈 뜨고 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의 생활이 힘들다 보니 궁극적으로 삶이 피곤했습니다. 

    여하튼 저는 분노에 찬 모습으로, 상처 입은 날개를 품은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맡은 아이템이 지사에서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매출이 축소되며 조기 복귀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그분이야 냉큼 보내 버리고 싶었지만 다행히 본사에 계신 임원분들께서 뭐든 해 보라며 새로운 임무를 주셔서 연명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전국을 돌며 저희 회사와 제품을 소개하고, 궁극적으로 현장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선행 마케팅의 형태를 갖춘 팀을 맡게 됩니다. 새로운 일이고,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과 맞았기에 공격적으로 제가 머물고 있는 지역의 설계회사부터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쁘게 만주벌판을 누비다 보니 그 분과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어져 6개월 정도는 비교적 평온하게, 표면적으로라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휴화산이기에 언제고 분출할 수 있는 용암은 부글부글 뱃속에서 끓고 있었지만 말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서 판매해 볼 요량으로 현장에 시공도 해보며 테스트를 할 무렵, 그분의 심한 저항에 부딪쳤습니다. "굳이 리스크 지면서 그런 제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겠냐. 본사에서 과연 이런 걸 좋아할 거 같냐, 사고 치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라." 심한 어투로 얼굴을 붉히고 떨리는 목소리로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에 저도 엄청나게 저항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언성도 높이고, 먼저 빈정대기에 저도 빈정대기도 했습니다. 막말까지 오갔습니다.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말이죠. 현채인들은 놀란 표정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서로 수군대고 있었습니다. 같이 근무하던 동료도 제 의견에 힘을 실어 주어 같이 설득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정말 극단으로 치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유일한 직속상관을 손절했습니다. 


    그날 오전에 큰 전투에 패하고 동료와 함께 오전 11시경 나와서 밤 11시 정도까지 막걸리, 쏘주, 와인 등으로 마른 상처에 촉촉한 알콜 소독을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별 일 아닌데, 참 단순무식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니 정말 할 일이 없었습니다. 주재 기간은 아직도 2년 여가 남아있는데 말이죠. 그렇게 마음을 못 잡고 있던 차에 뭐든 하지 말라 하니 책이나 보자는 심산으로 전자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출장 오는 동료에게 부탁하여 직구로 누글삼이라는 예쁘게 생긴 기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책 보고 공부하는 삶으로 뛰쳐 들어갔습니다. 2019년 3월 제 직장생활, 아니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변혁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글도 쓰고 책 보고 공부하는 습관은 모두 2019년 봄부터 싹 틔운 것들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단단해지고 쉽게 휘둘리지 않는 제가 될 수 있도록 담금질을 하는 습관이 이 시절 싹텄으니 말이지요. 그렇게 저는 하루 종일 미친 듯이 읽고, 쓰고, 공부하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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