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서 미아 만든 엄마가 된 날
20개월의 아들, 요즘 어떻냐구요?
고집max, 애교max. 날 최고로 행복하게 웃게 만들고 최고로 화나게 만든답니다?
20개월은 다 이런가요? 고집맥스로 엄마에게 화를 북돋아주더니, 이제 애교맥스로 엄마 마음을 다 녹여 애간장을 태운답니다?
다 이런 거 맞죠?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우리 아들이요. 제 엄마를 미아만든 엄마로 만들었답니다. 푸하하 ㅡ.
요즘 윤우의 고집이 나날이 상승중이다. 아무래도 20개월의 아기들은 다 이런 거 같다. 오늘은 어린이집을 신나게 등원시키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아파트 입구에서 어머니 한분이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등원중이던 아이에게 꺼낸다.
“아우~ 이 고집쟁이, 정말.“
그리고 자동반사적으로 대답같은 말이 튀어나온 나.
“우리집에만 고집쟁이가 있는 게 아니었네요ㅡ푸하하”
“아우~ 그러니까요. 황씨 고집이잖아요.”
같은 아파트 호수 위층에 사는 집에 윤우와 동갑내기 아들 하나와 큰 딸이 함께 사는데, 또 신기하게 아이들 성이 같은 거였다. “황씨!” 그리고 같은 개월수, 20개월의 동갑내기 둘.
오늘 아침엔 새 신발을 신기 싫다고 울고불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를 붙잡고, “윤우야, 윤우야. 새 신발이 훨~씬 멋진데??! 그리고 새 신발 신으면 훨씬 편해질 걸?? 윤우 이제 키가 큰 만큼, 발도 커져서, 이전에 늘 신어왔던 신발은 작아졌을거야! 우리 더~ 멋진 새 신발 신어보자!!!!“ 한참을 설득하고 타일러서 겨우 새 신을 신기고 나왔다.
막상 새 신을 신고 나와서 움직여보니 꽤나 멋져보이기도 하고 편하기도 했는지 이내 신이 난 아들은 등원길에 어르신들의 인사에 신나게 허리를 구부리며 맞인사로 정다운 아침길을 나섰다. 어린이집에 다다라서는 웬일인지 어린이집까지 ‘다다다다- - - -’ 신나게 뛰어가더니 또 신나게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네? 오늘 아침에 왜이리 기분이 좋으신건데요? 혹시 아침에 안신다겠다고 난리부리던 새 신발이 마음에 드셔서 지금 이렇게 신이 난거에요?”) 그러고는 선생님께 신나게 안겨, 또 눈웃음을 한껏 발사하며 신나게 내게 인사를 해보이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선생님께 설명하곤 둘 다 빵 - 터져버렸다.
기가차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하면서도 웃기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이 모든 감정들이 즐거워서 룰루랄라 집에 온 나였다. (분명 아침에 떼 쓸때만 해도 ‘또 시작됐다’ 했던 나였다. 엄마들이란.)
바깥 구경하며 노는 걸 좋아하는 윤우는, 언제나 어린이집을 하원하고는 내 손을 끌고서 어딘가로 향한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급한 일이 없다면 그의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나는 마음껏 원하는대로 가셔, 하며 끌려가는 것이다.
어제는 평소와 조금 예외적으로, 지하역으로 나를 끌며 움직였다.
그냥 눈에 보이는 흥미로운 곳으로 계속 가나보다, 했는데 이제는 지하철을 타자고 한다.
그것까지는 안된다고, 이제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타이르니 고집부리기가 시작되었다.
싫다고 머리를 도리도리하더니, 그 작은 손으로 (대체 이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그의 압력이 대단하다.)내 손을 꼬옥 잡고서는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두 다리까지 딱 벌려 각을 잡고는 줄다리기마냥 온 힘을 다해 끌어본다. 지하철까지 탈 수는 없는 일이니, 이제는 정말 돌아가야한다고 타일러도 그는 생각을 바꿀 의지가 없다. 오히려 본인의 의지만이 더 강해질 뿐이다.
“윤우야. 윤우가 바깥구경하고~ 산책하고 싶다해서 엄마가 집으로 바로 안가고 나왔지?
여기까지 윤우가 가자는 데로 엄마가 따라왔지?
그럼 이제는 윤우도 엄마 말을 들어야지. 안그래?“
한참을 아무말 없이 잘 듣고 있는 윤우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생각을 바꾸려나보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의지를 꺾을 20개월 아기가 아니다.
다시 힘찬 줄다기리 경합을 내 손을 잡고 벌인다.
이제는 말로 설득을 해도 안될 거 같아, 고사리같은 손을 떼어내고서 말했다.
“윤우, 엄마 말 안듣네? 그럼 엄마는 엄마 가야할 길 갈게. 윤우는 그렇게 가고싶으면 윤우 혼자 가. 안녕~“
그리고 뒤돌아서서 (열심히 가는 척 했지만 아주 천천히)집 쪽으로 발길을 계속 옮겼다.
중간중간 살짝이 고개를 돌려 아들이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가면서.
‘이쯤 거리면 이제 뛰어올만 한데..’
보통같으면, ’이제 더는 안되겠다!‘ 판단하고 나를 따라 뛰어오는 거리쯤이 되었는데도 아이는 좀체 움직일 생각이 없다.
망부석마냥 같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여기서 지면 안되…!’ 하는 와중,
갑자기 전철에서 내린 인파들로 조용하던 지하역이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고,
이내 사람들은 조그만 아이가 멀뚱히 서서 한참을 아무것도 못하고 홀로 있는 모습에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학생들 몇명이 윤우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을 건네는 듯 하더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어 윤우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엇, 이거 큰일인데!!!’
아이가 미아가 된 줄 알았나보다.
큰일이다, 싶어 급하게 뛰어서 윤우에게 향했다.
그 도중에는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고, “아이 엄마인거 같아요! 아이 엄마 찾았어요!!” 외치셨고
나는 민망함 가득 안고서 너스레를 떨었다.
“아..하핫.. 죄송합니다. 아이가 고집을 부려서…
그.. 그 저기.. 멀리서 아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핫.. 감사해요.”
그제야 사람들은 다행이라는 안도를 품고서 흩어졌고,
몇몇 어르신들은 웃음을 터트리셨다.
“아이고! 고 자그만 것이 고집을 부리고 있었구만!! 그거 몬 이기지!!! 그거 몬 이겨~~ 쿠하하하핳ㅎㅎㅎ”
어르신들의 폭소에 민망스런 마음도 가라앉으면서 나도 이 상황이 조금은 웃프기 시작했다.
몇몇 착한 학생들은, 그때에도 윤우가 예쁘다며 시선을 거두지 못했고 이 남학생들이 처음으로 윤우를 발견하고서 “엄마 잃어버렸어?” 하던 아이들이었다.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이런 따뜻함이 주는 온기를 또 느꼈더랬다. 고마워요, 학생들. 다음부턴 아이 잘 챙길게요!) 학생들에겐 고마운 마음이 일었고, 다음부턴 아이가 떼를 쓰더라도 부둥켜안고 어떻게든 힘으로 움직여야겠다, 생각했다.
여튼저튼 그러한 이유로 나는 몇분간, 아이를 미아로 만든 못난 엄마가 된 것이다.
아이의 고집을 함부러 대적하다간 이런 일이 벌어진다. (대적이 못된다는 이야기다.)
한참을 회유시켜 겨우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도착하고 보니, 갑자기 오래 전 언니와 조카의 일화가 떠올랐다.
내가 대학생시절, 나와 9살차이가 나는 언니 덕에 나에게는 인생 첫 조카가 있었다. (지금은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
한참 아장아장 걸으면서 고집이 생기기 시작하던 어느 날, 언니와 내가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걷고 있는데 아이에게 무언의 떼씀이 시작되었다.
길에 주저 앉아서 울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어째야하나,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언니는 이 상황이 익숙한 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이를 지나쳐 “너 알아서 해~” 하고는 제 갈길을 갔다.
언니는 점점 멀어지는데 아이는 일어날 생각이 없으니 열심히 조카를 들어올려 움직이던 날이 생각난거다.
“너무 한거 아니야?
아니, 애가 이렇게 울고 있는데 그냥 가면 어떡해. 애가 놀래잖아.“
“야.
너 지나가다가 이렇게 애가 주저앉아서 울고 있잖아?
그냥 지나가는 사람 = 엄마
못 지나치고 달래는 사람 = 할머니 or 이모
이거 무조건이다.
그냥~ 엄마들만 못된 사람되는거야~~
니가 나중에 애 키워봐!!! 안된다 안되~~~~“
뭔 말인지도 모르겠으나(이해를 못했다는 뜻이다), 그 날 이후로 길을 걷다가 아이가 떼쓰며 주저앉아 있을 때,
자연스레 아이를 놓고 갈 길 가는 여자를 보면 그건 ‘아이 엄마다!’라는 사실 정도는 알게 되었으며,
우쭈쭈 온갖 애교와 회유를 펼치며 아이를 달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건 “이모다!” 하고 보일 정도가 되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두고서 지나가는 엄마(언니)에게 “너무 한거 아니야? 애 엄마가?“ 하던 스무살 초반의 내가,
서른살 초반의 내가 되어 울고있는 내 아이를 두고서 지나간다.
그리고 미아만든 엄마가 된 에피소드를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무엇을 깨달았냐고?
엄마는 결코, 아이를 이길 수 없다.
정도?
체력을 더 키워야겠다!
왜 고집만 커진 게 아니라 애교도 커진 거냐고요.
더 이길 수 없게 말이야 - 이래서 이길 수가 없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