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비건생활을 해온 멋쟁이 노부부를 만나다.
22년 10월 초가을의 어느 토요일 오후, 새하얀 머리칼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장하고 멋진 두 분이 가게에 들어서셨다. 왜 그런 사람들 있지 않나, 잠시 스쳐만 가도 시선이 가는 사람. 처음 보는데도 그 사람 고유의 에너지나 매력이라는 것이 워낙 강하고 특출나서 존재만으로도 아우라가 뿜어지는 사람.
이 두 분이 그러했다. 그저 가게 문을 들어서는 모습만 뵙는데도 건강하고 탄탄한 아름다운 에너지가 물씬 풍기던 두 분. 그 아우라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오르던 두 분.
두 분은 건네받은 메뉴판을 보시더니 나를 불러 혹시 비건 메뉴가 어떻게 되는지 여쭤보신다.
"아, 비건이세요? 지금은 와사비토푸샐러드, 그리고 아보카도 타프나드토스트, 이렇게 가능해요!”
“좋네요. 그럼 토푸샐러드 하나씩 두 개랑 아보카도 토스트 하나 주세요. 오렌지착즙주스 하나랑 에이드 하나도 같이요.”
"네!”
이때만 해도 나는 두 분 다 비건이시구나, 생각했다. 보통 그렇게 오래된 부부라면 극한 된 식습관을 양극화되어서 가지기란 쉽지 않으니까.
두 분은 세 접시를 아주아주 깨끗하게 비우시고는 내게 먼저 말을 건네오셨다. 식사가 너무 훌륭하다고. 부산에 와서 지금까지 얼마나 비건음식을 찾아 헤맸는지 모른다고.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좋은 식사를 건네주어서 고맙다고.
두 분에게서 그런 달콤한 말을 들으니 그 말이 얼마나 감미롭게 느껴지던지. 가끔은 이런 순간, 꼭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행복감을 느낀다. 이 행복감은 오직 가게를 꾸려나가고 음식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건네어줄 때에만 생길 수 있는 아주 ‘스페셜한’ 행복이다. 그러니까, 내가 가게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누릴 수 없었을 행복의 카테고리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럴 때면 ‘이 가게를 열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남모를 미소가 연신 지어지는 것이다.
“두 분은 여행 중이세요?”
이 질문 하나로, 정말 많은 걸 알게 되었는데 그것이 너무 로맨틱하고 낭만적으로 들려, 감동적이었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겠다.
두 분은 미국에서부터 이곳저곳 여러 나라를 돌며 도시를 여행 중이셨는데, 심지어 아프리카에서의 생활도 하셨고 지금은 한국여행을, 다음으론 바르셀로나로 가신다고_.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 이 부산여행이 무려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라이딩 여정 중 하나라는 사실!!!
두 분은 꽤 오랜 세월 라이딩을 함께 취미로 즐기며 여러 액티비티를 해오셨는데, 한국여행에서 가장 큰 비중이 이 라이딩여행이었던 것이다.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라이딩 여정에는 대구~ 전남~ 부산까지 이어지는 멋진 국내 여행길이었다. 그 여정이 더욱 빛나게 들렸던 건, 두 분의 반짝이는 열정 때문이었다. 어머님은 비건생활을 무려 40년간 해오셨다고 하셨는데 그 세월만 들어도, 새~하얗게 반짝이는 고운 흰머리들만 보아도, 두 분이 얼마나 긴 세월을 해오셨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 나이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체력과 건강한 에너지, (건강한 에너지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너무 건강해서 빛이 나고 감미로운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에너지라 해야 할까! 결코 과한 표현이 아니다.) 그리고 삶을 대하는 열정과 젊음을 간직한 마음, 청춘과 같은 그 모든 것들이 떠오르는 두 분의 모습 덕분이었다.
그게 너무 멋져서 (또 내가 이상적으로 꿈꾸는 삶이기도 하며 도전정신이기도 하고, 나이 들어가는 청춘 같은 모습이었다. 항상 꿈꾸던 모습이 이런 삶 아니었던가!) 연신 감탄하고 즐거워하니 두 분이 핸드폰을 꺼내어 내게 그 여정의 사진들을 하나씩 풀어놓으셨다.
깜깜한 밤하늘 아래에 어디인지도 모를 도로에서 헤드라이트 두 개를 반짝이며 헬멧을 쓰고 환하게 웃으며 따봉을 날리는 두 분의 모습, 비건인에겐 조금 잔혹한 우리나라의 음식점들에서 겨우 먹을 것을 찾아낸 거라곤 빵 몇 조각. 그것을 며칠 내내 들고서 견뎌낸 사진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비건이 아니었던 아버님의 식사로 몇 번 함께한 고깃집 식사사진들까지. (그렇다!! 놀랍게도 아버님은 비건이 아니셨는데, 비건 생활을 무려 40년간 해온 아내를 위해 많은 비건카페를 아버님께서 찾으셨고, 함께 하셨고 응원하셨다. 그리고 물론, 가끔은 아버님을 위해 어머님이 함께 고깃집을 향해 버섯에 쌈을 드시기도 하고. 이런 부부의 모습조차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 서로의 너무도 다른 라이프스타일, 식습관을 각자 존중하며 배려하고 함께 하는 모습.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레 함께 스며들고 존중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식사하는 내내 대화하는 내내 유지하셨던 꼿꼿한 허리와 단정한 자세, 나이가 들어도 가시지 않는 열정적인 삶의 태도. 그 모든 것들이 두 분에게서는 당연하게끔 느껴졌으니 두 분이 살아온 세월을 다 보지 못했더라도 두 분은 언제고 늘 그렇게 함께 삶의 여정을 아주 멋지고 탄탄하게, 재미나게 누비고 다녔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삶에서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그 삶에 대한 태도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이 듦’은 이런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호기심을 유지하며 사는 것, 재미난 것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다니는 삶, 열정적으로 탐험하며 살아가는 삶. 건강하고 탄탄한 젊음의 마음을 늘 지니며 사는 것. 아마 두 분은 그렇게 살고 계신 듯했다. 그건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저 두 분의 빛나는 눈빛만 보아도, 긴 여행을 젊은이들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탐험으로 이어가는 열정만 보아도,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만 보아도.
여러모로 내게, 좋은 기운과 감명, 그리고 큰 보람과 사명을 안겨다 준 두 분.
지금은 어디에서 어떤 멋진 여정을 함께 하고 계실까?
여전히, 단정하고 멋들어진 모습으로 건강함을 유지하며 아름답게 삶을 이어나가고 계시겠지!
잊을 수 없는 날들 중 하루다.
이 날은 그 생각을 제일 많이 했던 거 같다.
나도 이 멋진 노부부처럼 늙고 싶다고.
그렇게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그것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삶이면 좋겠다고.
그래, 인생은 아직 길다!!!!!
p.s
어머님은 무려 비건생활을 40년 동안이나 지속해 왔다고 하셨다.
그래서 한국에서 라이딩여행을 하는 동안 빵 몇 조각으로 한 끼를 버텨야 하는 날도 많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인즉 한국에선 아직 비건식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먹을 음식이 한정적이라 그러셨다는 말이셨다. 그래서 그것이 조금 힘들었다며 웃으며 라이딩 중간중간 꺼내 드셨던 빵 몇 조각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시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카페를 찾은 것이 너무도 만족스럽고 행복해 보이셨다.
두 분은 비건 메뉴를 세 개 정도 주문하셨고, 식사를 끝내고 커피를 다 드신 후에는 아버님께서 나에게로 다가와 혹시 아내가 먹을 수 있는 비건디저트는 없냐고 물으셨고, 그 물음에 나는 얼마나 행복에 차올랐는지 모른다!
그 당시엔 비건디저트를 계속해서 만들어보고는 있었지만 구매할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만들어두고서 판매하지는 않고(구매할 사람이 있을까, 생각했던 건 비건디저트에 대한 손님들의 견해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고, 그럼에도 아침마다 만들어두었던 건 맛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손님분들을 통해 의견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상품화될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 손님들께 중간중간 서비스로 드리려 했던 통밀참깨쿠키가 한 소쿠리에 가득 담겨있었던 것이다.
긴 라이딩여정에 어머님이 드실 음식이 없어 작은 빵 몇 조각으로 버텼다고 하시니 그것에 마음이 동해, 만들어둔 쿠키를 안 그래도 나가시는 길에 한 봉지 챙겨드릴 참이었다. 그런데 그러기도 전에 아버님이 쿠키를 사겠다고 하셨고, 서비스로 드린다고 말씀드려도 한사코 사 먹겠다고 하시니, 만들어 두었던 쿠키를 고민도 없이 몽땅 털어 가득 챙겨드렸던 기억이 있다.
몇 천 원이면 될 것을 너무도 쿨하게 만원을 건네주시며 고맙다며 잔돈은 괜찮다고 흡족하게 웃어 보이시던 아버님의 쿨함이란! 아직도 그 멋스러움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몽상가에서 난생처음 받아 본 팁이라니! 꽤나 그 팁이 흐뭇한 날이기도 했다.
쿠키를 그렇게 자리에서 몇 개 집어드시고는 가득한 쿠키를 연신 고맙다며 흡족한 얼굴로 가방 안에 챙기셨던 사랑스런 어머님,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버님의 모습.
두 분을 보며 또 즐거웠던 건, 보통 부부 중 한 명이 비건생활을 하게 된다면 다른 한 명도 그 식습관에 같이 합류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두 분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비건’은 말 그대로 식습관, 식문화, 식사에 대한 가치관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함께 매일을 식사하는 가족이라면 그 문화를 자연스레 따라가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각자 따로 식사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두 분은 후자에 속했지만 늘 함께 식당을 가고 서로에게 맞추는 모양이셨다. 아버님은 비건이 아니라, 고기도 좋아하고 즐겨드시는데 그런 아버님을 위해 여행 중 한 번은 고깃집에 들려 어머님은 고기 대신 반찬과 식사를 하시고, 한 번은 어머님을 위해 비건식당을 찾아가고, 혹은 다양한 메뉴가 있는 식당을 가면 각자 먹기 좋은 메뉴를 시켜 드시는 식이셨다.
이번 한국여행에서는 비건식당을 찾기가 어려워서 그게 힘들었는데 이렇게 좋은 곳을 찾으니 얼마나 좋냐고 말씀하시는 두 분의 말에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로 흐뭇하고 뿌듯했던 이날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보람차서 너무도 행복해’라는 생각을 정말로 가슴 깊이 가득 품었던 그런 날이었다.
가게가 구석진 2층에 자리한 데다, 건실한 간판 하나가 없어서 찾기가 꽤나 어려웠을 텐데도 찾아오신 것이 신기해서 여쭤보니, 아버님이 여기를 발견하시곤 정말 열심히 찾아오셨다고. 그리고 정말 너무도 사랑스럽고 반가운 공간이라는 말도 또 한 번 덧붙여주셨다. 두 분의 사랑이 나에게도 넘쳐 흘러온다.
그리고 이 날은 또 즐거운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일전에 소개한 나의 단골손님, 니짜와 태완씨를 기억하는지!
이날 이렇게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눈에 익은 반가운 또 다른 손님, 니짜와 태완씨 그리고 니짜의 시카고친구 재키까지 함께 가게에 들렀다!!
재키는 이날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미국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재키를 니짜와 태완씨가 부산까지 데려와 이곳을 또 찾아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인연은 약 일 년이 더 지나 재키가 또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 또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너무너무 즐겁고 사랑스런 인연들, 소중한 인연들.
인연은 이렇게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이어져 함께 한다.
그렇게 양쪽 테이블에 각자 자리해서 앉아있던 손님분들. 양쪽을 번갈아가며 대화를 나누다가, 노부부 손님께 니짜와 태완씨, 재키를 소개했다. 나의 단골손님인데 미국 시카고에서 왔다고.
그랬더니 이내 두 분이 너무 반가워하시더니 "시카고!!!"를 외치신다.
알고 보니, 두 분의 따님이 시카고에 사신다고!
그렇게 대화는 두 분과 세분이 함께 오가기 시작했다. 이내 대화꽃이 피어나던 이곳.
또다시 몽상가가 먼 이국의 사람들이 만나 반가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너무 아름답고 예뻐, 사진으로 찰나를 남겼던 나.
니짜도 이 순간이 좋았는지, 갖고 온 일회용 카메라를 들어 두 분을 남기고 나를 남긴다.
이렇게 또 잊을 수 없는 멋진 순간이, 또 한 번 기록되었다. 몽상가에, 손님에게, 그리고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