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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i eun Feb 07. 2024

일본 방송국의 촬영날. “우와.. 신기해!”

우리 가게가 일본방송을 타다니!

한 날, 어느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카페 몽상가 사장님이신가요?”


“네, 맞아요.”


“반갑습니다. 다름 아니라 여기는 일본 지역방송국이에요. 찾아보다가, 부산 해리단길이라는 곳에서 여행하기에 좋고 음식 맛도 좋은 카페를 소개하고 싶은데 사장님 가게가 너무 예쁘고 평도 좋아서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주말 중 하루 촬영이 가능할까요?”


“아, 그래요..?”



이런 연락을 받게 될 줄이야. 언젠가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이전에, 가게를 차리기 전 내가 좋아하던 조그만 가게 몇 군데가 일본의 잡지나 외국 방송사, 혹은 국내 잡지사에 아주 멋지고 예쁜 가게 내 풍경사진과 음식사진이 올라가며 가게를 홍보하는 멋들어진 글귀와 사장님의 인터뷰가 실린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이 내 눈에 왜 그리도 멋있어 보였는지.

멋진 사진과 멋진 글귀들이 그 조그만 가게들을 더 빛나고 아름답게 밝혀주는 것 같았다. 사장님들의 진정성 어린 인터뷰들은 그곳의 음식을 더없이 믿음직스럽고 감칠맛 나게 그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훗날 내가 가게를 열게 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 가게도 그런 날이 오면 정말 좋겠다! 얼마나 신나는 일일까!’ 생각했다.

그게 무려 3년 전이었는데.


이렇게 나의 가게를 오픈한 지 약 반년만에 이런 멋지고 즐거운 일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magic! 이건 또 무슨 매직일까 !



주말촬영이라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이런 즐거운 경험을 또 언제 할까 싶어 흔쾌히 촬영에 응했다.

일전에 방송국에서 들은 바로는 일본 연예인 두 분과 촬영팀 몇 명이 와서 음식을 먹는 모습과 음식 인서트 촬영을 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같은 채널 촬영일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그것도 즐거운 경험이 되리라 생각하며 작은 규모의 소소한 촬영을 생각했다. 그래서 큰 부담감을 가지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던 이날.


촬영예정 시간이 12시 반이었기에 11시부터 착석해 있던 손님분들과 찾아오신 손님분들 모두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 촬영이 있을 것임을 알려드렸다. 그리고 곧 테이블 몇 자리를 남겨두었다. 어떤 식으로 촬영되는 것인지 자세하게 전달받은 바가 없어서 그저 일반 손님분들을 대하듯 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편안하게 기다렸고 어느새 시간은 열두시반.


방송국 피디님께서 문자가 왔다.


[사장님 저희 이제 촬영 안으로 찍으면서 들어갑니다 음악 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누가 봐도 유명인처럼 보이는 예쁜 얼굴의 두 일본분과 엄청나게 많은 촬영팀이 줄줄이 가게에 들어섰다.


‘헤—엑~~~??!!!'

난 단출하게 몇 명만 올 줄 알았던 두세 명의 촬영팀이… 아니라 열명 남짓한 인원이 대거로 가게에 들어서더니 이내 좁은 가게 안에서 정렬을 맞추기 시작했다.

가게에 들어서는 배우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곧이어 배우들이 앉아서 메뉴를 보고, 음식을 시키고,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는 컷까지, 그리고 음식을 먹으며 음식평을 하는 컷까지 그 모든 것을 한 자리에 앉아 촬영할 테이블장소를 탐색했다. 두 배우분이 이곳저곳 테이블에 앉아보았고 촬영팀이 그곳에 카메라를 맞춰보고 구도와 빛이 들어오는 모습, 가게 전경 등을 모두 고려하여 맨 안 쪽 벽에 붙은 조그만 2인테이블에 앉아 촬영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내 열명이 넘는 촬영팀이 각자 정렬을 잡아 각을 맞추기 시작했다!

기~~ 다란 검은색 봉 끝에 달린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 몸을 웅크리고 있는 듯한 털뭉치의 마이크, 잡음과 소음, 그리고 배우들의 목소리 등이 얼마나 잘 잡히고 있는지 세심하게 확인하는 음향팀. 그중에서도 막내들로 보이는 스텝들은 뒤쪽에서 장비를 만지고 있고 아마도(그저 짐작만 해본 바로!) 음향감독님으로 보이는 스텝분은 가장 가까운 곳에 쭈그려 앉아 온 심혈을 기울여 머리 위에 왕관처럼 씌인 커다란 헤드셋에 집중을 가하고 계셨다. 수많은 촬영카메라팀은 한 명당 하나의 커다란 카메라를 각자 손과 어깨, 삼각대에 짊어지고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곳곳엔 촬영모습을 보면서 무엇인지 모를 메모를 연신 해나가시는 스텝분들도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도 마이크봉 손잡이를 잡고서 털뭉치를 봉만큼이나 기나긴 팔로 쭉 뻗어 배우들의 머리 위에 올리고 있는 스텝이 내 눈엔 가장 힘겨워보였는데, 정말로 간혹 티비에서 본 것처럼 호리호리 얇은 그 젊은 스텝의 팔에 힘이 풀려 털뭉치가 살짝 내려앉으면 이내 그 모습이 촬영박스에 들어와 NG! 가 나고야 마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내 눈앞에 이뤄지고 있다니.) 심지어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연예인들과 살 부대끼며 두 달을 합숙하며 영화촬영도 하지 않았던가. 근데 왜 이 조그만 가게에서 이렇게 수많은 스텝들이 한 곳으로 기를 모아 촬영 한 컷 한 컷에 집중하는 모습이 이리도 낯설고 멋진지.


그들의 모습이 너무 프로페셔널하고 멋있어 보여,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혹시나 ‘찰칵’ 하는 내 아이폰 카메라소리가 촬영에 방해될까, 핸드폰은 들어 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숨호흡을 참아가며 스텝들의 열중하는 촬영모습과 배우들이 가게 안 가득 연신 사운드를 채우는 “오~~~~ 카와~~~이~~~~~~ 에~~~~ 스고~~~이~~~~~~” “에~~~~~” 소리에 즐거움을 가득 머금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이 모습을 숨죽여 바라보며 즐기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촬영 전에 나가시는 손님분들도 계셨지만 그 촬영을 보고 싶다며 자리에 일어나 구경하던 몇몇 손님들도 함께 이 모습을 연신 신기하고 즐겁게 바라보며 즐기고 있었는데 역시 두 손으로 입을 가려 숨을 죽이며 바라보고 계신 것이었다. 혹여나 우리가 엔지를 내버리면 안 되니까!


그렇게 몇몇 컷을 찍고 나서, 이번에는 내가 나와줘야 한단다. 그러니까, 내가 배우분들께 메뉴판을 내어드리고, 메뉴를 설명드리면 옆에 있던 통역자분께서 통역을 해주고 그에 따라 또 배우분들의 커다란 환호와 리액션, 그것들을 뒤로해 두 분이 먹을 음식을 주문하고 내가 주방으로 들어가 주문받은 음식을 요리하는 모습까지 아주 zoo~m을 가까이까지 끌어당겨 찍기도 했다. (실제로 그 많은 스텝분들 중에 한국분은 단 두 분뿐이었는데, 방송국 중간 담당자로 보이던 한 분(아마 이 분이 나에게 연락을 취하신 분 같았다.), 그리고 통역사분만이 한국분이셨는데, 그래서인지 이 안의 모든 분위기가 일본의 무드로 물들어갔다. 여기가 일본인가, 한국인가! 크큭.)


그래도 나름 긴 청춘을 배우로써 몸 담았던 사람이 나인데 그게 맞나, 싶을 정도로 삐걱삐걱거렸다. 메뉴판을 들고 드리는 모습도 엉거주춤, 배우들의 리액션 하나하나에 고장 난 나의 리액션에, 음식을 설명드리는데 왜 이리도 말은 마음과 다르게 떠듬떠듬 나오고야 마는지! 더운 날씨가 아닌데 마스크 사이로 땀은 왜 이리 삐질삐질 흘러내리고 있는 건지!!!!!

꼭 영락없이 음식만을 해오고 가게만을 운영해 온 어색한 가게 사장의 모습같은 어색한 내가 담겼으리라!!! 생각하니 또 그건 왜 속으로 피식 - 웃음이 나는지!! 그 순간마저도!!


내가 요리를 하는 모습과 조리되고 있는 음식들의 모습을 크게 크게 줌땡겨 촬영할 때는 어쩐지 너무 긴장되고 민망해서 손이 덜덜덜 거리기도 했다. 고작 계란프라이를 뒤집는데 말이다. ‘이… 이 무슨 큰 조리를 한다고 계란프라이 하나 뒤집는 게 평소와 같지 않아!!!’ 하고 머리를 쥐어잡아뜯고 싶었다!!! 세상에. 내 손과 몸이 따로 노는 이 어색함이란. ㅠㅠ


그리고 촬영은 끝을 향해 갔다. 다 조리된 음식이 배우분들 앞에 놓였고, 두 분은 너무도 맛있게 즐겨주셨다!! 정말 그런 리액션은 한국에서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일본스러움 가득 담긴 리액션이었는데, 눈앞에서 실제로 그 리액션과 소리를 듣고 있자니 정말로 일본 영화나 일본 티비를 내 눈앞에서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것이 또 얼마나 신기하던지….!

“에~~~~~!!!! 스~~고이!!!!! 혼~~~~또니 오이시데스!!!!!” 가 연달아 가게를 가득 채웠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망울이 저렇게 더 커질 수 있다니!!!! 놀라울 만큼 커다래진 눈에 고주파의 리액션 소리가 그렇게도 속이 뻥~ 뚫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내 음식을 먹고 난 후의 리액션이 아니던가..!


그렇게 긴긴 촬영이 모두 다 끝나고, 스텝들은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우분들은 내게 다가와, “촬영이 아니라 정말 맛있었어요! 감사해요!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라며 인사를 건네주셨고 그 마음에 감사했다.


‘감사는요! 이런 경험을 제게 선사해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한걸요!!!!’


촬영모습을 하나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워, 두 분과 함께 사진을 남겼다.

어쩜 그냥 막 찍어도 이렇게 다들 예쁘신지!


그렇게 마냥 신난 내 모습이 그대로 찍혀버렸다.




아쉽게도 나는 촬영분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22년 11월 27일 서일본TV(후쿠오카 지역)에서 방송될 예정이라고 건네받았지만, 시간을 맞춰 내가 볼 수 있는 상황은 당연히 안되었다.

아쉽게도 유튜브채널을 따로 찾을 방법도 없었으니 결론적으로 이 촬영분을 난 보지 못했지만 다들 성심성의껏 촬영해 주셨으니, 아마 예쁘게 담기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지내고 보니, 정말로 원하던 순간들이 하나씩 기적처럼, 혹은 마법처럼 다가온 날들이 많았던 거 같다.

가게를 차린 것도 생각만 하며 그리기만 하던 것이 몇 년이 흘러 정말 현실이 되는 날이 내게 왔고, 손님으로써 좋아하던 가게들의 행보를 바라보며 훗날 즐거운 상상을 내게 대입하던 순간도 몇 년이 흘러 정말 나에게 현실이 되는 날이 왔다.


살아보니 그랬다.

어린 학창 시절부터 기나긴 시간, ‘내가 무얼 하면 좋을까’, ‘난 무엇을 잘할까’, ‘난 무슨 일을 할 때 행복하지?” 수많은 질문들과 방황이 오가던 와중에 생계를 위해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해오던 수많은 아르바이트들이 어느새 시간이 한참 흘러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내게 경험이라는 찬스를 주어 도움을 준 순간들이 수없이 많다.

그때는 그저 방황하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잘 살고 있는 걸까?’ 모든 게 초라하고 우습기만 하던 내 삶이, 그래도 꿋꿋하게 열심히 살아낸 덕분에 훗날 그것이 나에게 거름이 되어줄 줄은 그땐 미처 몰랐지.


그래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건 가보다.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다는 것.


어떤 일이든 다 값어치가 있다는 것, 그 일이 훗날 내 삶에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


방황하던 길고 긴 시간들이 나에게 준 또 하나의 마법, 매직 같은 선물이 되어 날아왔던 날.

그런 날이 하루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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