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wi eun Aug 26. 2024

꼭꼭 씹어먹는 책읽기

6년 전에 쓴 책의 코멘터리.

코멘트를 안쓴지는 아주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간간히 내가 본 책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체크할 때면 오래 된 왓챠피디아를 열어본다.

책과 영화, 드라마 모두 체크가 가능해 꽤나 유용하게 쓰고 있지만 시간이 없어 영화는 어릴 적처럼 자주 보지 못하고 시간을 길게 두고 봐야하는 연작물인 드라마는 내 인생에 없어진지 오래다. 그나마 책을 검색하고 기록할 때 요긴하긴한데, 독립물을 읽을 때면 검색자체가 안되어 기록을 남길 수 없어 내가 읽은 책의 반정도만 체크가 되어있다는 것도 조금은 아쉬운 면이 있긴하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다시 왓챠피디아를 열게 되는 날이 잦아진 건, 오래 전 내가 즐겁게 읽어나갔던 책들을 다시 펼쳐보는 즐거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책을 읽어나가는 것도 물론 너무 즐거운 일인데, 묘하게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 것을 질보단 양적으로 채우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세포 하나하나가 쭈뼛쭈뼛 서면서 온 몸으로 흡수하던 때가 분명 있었거늘, 어느순간부터 책을 읽을 여유의 시간이 적어지니 조바심에 쫓겨 하나라도 더 읽기 위한 혼자만의 고군분투(?)가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쫓기듯 급하게 읽으니 꼭꼭 씹어먹지 못해 소화가 덜 되어 부글부글하다 결국 내 몸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곧바로 배출되어버리는 책읽기가 되는 것이다.

분명 열심히 읽어나간 책인데 돌이켜보니 기억에 남는 내용이 하나도 없어 황당하고 공허한 느낌이 들어, 욕심만 채우고 어리석게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을 많이 하는 건 좋지만 채우기만 급급해 결국 우격우격먹고 배출시키는 건 이래나저래나 남는 거 하나 없는 낭비아닌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는 시간을 정말 무지無知하게 낭비하는 시간낭비. 에너지낭비.


그래서 새 책에 대한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책장에 자리한 오래된 책들을 하나씩 꺼내 꼭꼭 씹어먹는 책읽기를 하자 생각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지금 내가 가진 삶에 대한 태도, 생각의 토양을 만들어낸 거름들을 다시금 만나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그 책들을 하나씩 꺼내 읽으며

‘아. 내가 이 책의 영향을 정말로 내 인생에 많이 받아왔구나.’, ‘아. 10대 때의 난 그렇게 생각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의 내가 되었네.’, ’오 마이갓!!! 십년이나 지난 소설인데 다시봐도 이렇게 재밌다고??!?‘

하는 또다른 감상이 날 즐겁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사람은 변하지 않는 터라, 이번엔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중에 뭘 읽어야 시간낭비가 아닐까‘ 하며 또 효율을 재고 있고. ’이 책들을 다 읽다가 새로운 책을 읽을 타이밍은 언제 잡을 수 있지! 얼른 읽어야겠다!‘며 또다시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기도 한다. 푸하하-)


여튼저튼 그러한 이유로, 오래 전 읽었던 책들을 내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 어플을 켜보는 것인데, 새로운 알림이 떠있었다.


내가 6년전에 읽고 쓴 한 책의 코멘터리에 새 댓글이 달린거였다. 매우 공감한다는 뜻으로 쓴 대댓글이었는데 여전히 대댓글이 달리는 게 신기해 내가 썼던 코멘터리를 다시 읽어보니. 세상에.

장황도 이런 장황함이 없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이토록 많은 생각을 뽑아내다니. (책을 이렇게나 흡수하며 읽어나가던 나였다! 몇년전의 나는 아주 진지했다. 쿠하하하) 그런데 그 장황하고도 장황한 기~~~~~~~일고 긴 코멘터리에 좋아요가 계속해서 달리더니 그토록 유명한 책의 수많은 댓글중에 내 댓글이 우선순위에 올라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달려있던 대댓글중에 그토록 기분이 좋았던 대댓글도 다시 보였다!


‘책을 읽고 왠지 모를 찝찝함을 좋은 글로 정리해주셨네요.‘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고나서 계속 찝찝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코멘트를 읽고 그 가려움이 해소가 됐네요!‘



그 기분좋은 대댓글에 연신 싱글벙글.

오랜만에 켠 어플에 예상치도 못한 칭찬을 받은 기분이 들어 꼭 좋아하는 선생님들께 좋아하는 과목으로 인정받는 초등학생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뭐랄까

글을 좋아하고 언제나 무슨 글이든 글을 끄적여야 살 수 있는 내가, 글에는 소질이 없다고 느껴 소소하게 낙서하던 나만의 노트장이 꼭 자그만 책이 되어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뭐 이런 표현이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떠오르는 상황이란 요런 거!)



어쨌든!

요 조그맣고도 조그만 (사건)이 남몰래 신이나, 기록을 남겨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기와의 전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