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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기 위해 숨 쉴 수 없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비로소 '나'의 숨소리가 들린다.

by 송현C

"다이빙이 왜 좋아요?"


지난 11년간 바다와 사랑에 빠져있는 날 보며 참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질문의 내용은 내가 다이빙을 좋아하는 이유를 묻고 있지만 그것은 남편을 선택한 이유, 연기자가 된 이유를 묻는 질문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묻는 이의 표정, 따라오는 후속 질문들이 반복적으로 비슷하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는 그 질문 속에 호기심을 넘어선 걱정과 신기함이 들어있다는 것을 종종 느꼈다.


“무섭지 않아요? 위험할 거 같아.”


물에 대한 공포를 가진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다는 걸 다이버가 된 후에 체감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후 내 인생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다이빙과 바다. 이 새로운 세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다이빙 초보 시절,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이빙을 배워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했었는데 열에 아홉은 물이 무섭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스쿠버다이빙 입문자를 직접 수중 세계로 안내할 수 있는 강사의 자격을 갖게 되었고, 레크리에이션의 범주를 넘어서는 더 깊은 수심으로 가기 위한 전문 교육을 받았다. 혹등고래나 백상아리, 만타 가오리 등 꿈에만 그리던 슈퍼스타들을 직접 만나러 아주 먼 길을 떠나기도 했고,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며 경험과 추억, 웃음과 눈물이 더해졌다. 물에 들어가는 상상만으로도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다수인데 나의 이런 활동이 특이해 보였을까. 프로그램이나 인쇄 매체에서 다이빙은 나의 인터뷰 소재로 자주 다뤄졌다.


"정말 아름다워요. 한 번도 보지 못한 생물들이 가득해. 물속에 떠 있는 평안한 느낌이 참 좋아요. 바닷속에도 산이 있거든요. 지형이 얼마나 멋지다고. 숨을 내쉴 때마다 공기방울이 올라오는데 그게 참 예뻐요. 그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 요즘은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수중촬영에 빠지는 사람도 많아요. 깊은 수심의 고요함이 주는 매력도 있고..."


Heart Bubble, 2022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세상을 한 명이라도 더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던 시절에는 최선을 다해 최대한 많은 이유를 나열하려고 했다. 내가 말하는 여러 이유 중 어떤 한 가지라도 상대의 관심을 자극할 수 있길 바라면서. 그 모든 것은 내가 바다를 만나고 다이빙을 할 때 문득 '아, 좋다.'라고 느끼는 점들이어서 모두 내 진심이었지만 듣는 이의 반응을 볼 때면 무언가 한 방이 부족한 기분이었다. 내 이야기가 귀로는 흡수되었지만 상대의 마음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느낌. 역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감정의 영역으로 가져오긴 어려운 것일까? 나는 한동안 다이빙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어차피 직접 해보지 않으면 공감하지 못할 거잖아.'라는 마음으로 대답에 쏟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2019년 수중촬영대회에서 운명처럼 만난 나의 반쪽은 해외 다이빙 리조트에서 수년간 살며 천여 명을 교육한 경험과 실력, 내겐 없는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었다. 사랑과 함께 바다와 관련된 우리의 꿈도 키우며 많은 것을 계획했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인류의 불행, 코로나 19가 우리의 꿈은 물론 다이빙 산업 전반을 삼켜버렸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과연 버텨낼 수 있었을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은 코로나 블루에 참 오랜 시간 침잠해있었다. 그렇게 바다를 떠나 있던 시간이 길어지면서 뭔가 내가 바다와 조금 서먹해진 게 아닐까 의심이 들던 때쯤에서야 나는 내가 정말 그토록 바다와 다이빙을 원했던 이유가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너무 답답해. 숨이 잘 안 쉬어져.'


마스크를 쓴 세상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에겐 지켜야 할 새로운 규칙이 많아졌다. 남편에게는 생계의 영역인 다이빙 교육이 배우러 오는 학생들에게는 여가의 영역이라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자발적인 쉼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리 길지 않을 거라 믿었던 쉼이 강제적으로 길어지게 되자 불안함과 초조함이 찾아왔고 이는 고통을 거쳐 무기력함에 이르렀다.


'바다로 갔었는데. 이렇게 숨이 안 쉬어질 때는 숨을 쉬러 바다에 잠겼었는데...'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러 간다고 생각했었는데.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바다를 찾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 가끔은 집착과도 같아서 나조차도 잘 이해되지 않았던 다이빙과 바다에 대한 나의 절실한 애정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고래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수면에 올라와 호흡을 내뿜고 새 호흡을 가다듬어야 하듯이 내게 바다와 다이빙은 현실 자극으로부터 참아낸 스트레스의 한계치에서 숨을 쉬러 가야 하는 수면과 같은 곳이었다. 바닷속에 탱크와 함께 잠겨 있으면 나는 숨 쉴 수 있었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생존의 기분이 선행되었기에 그동안 다이빙을 좋아하는 수많은 이유들을 나열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만난 혹등고래들. Mo'orea, 2017


물속은 인간이 숨 쉴 수 없는 환경이다. 다이버는 압축된 기체가 들어있는 탱크를 가지고 그 숨 쉴 수 없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우리에게는 오직 탱크 속 기체로 내 호흡이 가능한 만큼의 시간만이 허용된다.


기체의 잔여량은 탱크에 연결된 잔압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잔압계는 눈금과 바늘이 있는 저울의 동그란 부분과 비슷한 생김새다. 입수 전에 200을 가리키던 바늘은 내가 호흡을 하면서 바다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점차 낮은 숫자 방향으로 이동하고 바늘이 0에 도달한다면 더 이상 나는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숨 쉴 수 없는 공간에서 나를 숨 쉴 수 있게 하는 기체가 내가 한 번 숨 쉴 때마다 사라져 간다. 어떻게 생각하면 극도로 공포스러운 상황일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나 내 숨의 가치를, 기체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있을까. 바로 여기서 다이빙의 매력이 시작된다.


잔압계. 다이빙 '게이지'라고도 많이 부른다. 2022


다이버에게 기체의 잔압을 수시로 확인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 중요한 일을 잘 해낸다면 다이빙은 공포가 아니라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여태까지는 사용해보지 않았던 방법과 감각으로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 보이지 않는 공기, 그런 무형의 존재가 바닷속에서는 선명해지는 순간을 만난다.

숨을 내쉴 때마다 기체 방울이 버블버블 귓가에 노래를 부르며 수면 위로 올라간다. 내가 숨 쉬고 있음을 눈과 귀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들숨에 폐가 부풀면 몸이 떠오르고, 날숨에 기체가 빠지면 몸이 가라앉는다. 숙련된 다이버들은 호흡으로 많은 것을 조절할 수 있다.


안정적인 호흡은 기체량을 낭비하지 않고 잘 사용하는 기본 방법이기에 다이버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호흡에 집중한다. 한 번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눈앞에 내 숨이 보이고 귀에 숨이 들리며 내 몸의 위치가 변화한다. 내가 가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 좋은 판단력과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호흡을 하려고 신경 쓴다. 동료와 함께 있지만 굳이 사회적 관계를 위한 대화를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 나의 모든 감각이 온전히 내 숨과 나에게 집중되는 시간이다.


'아, 나 숨 쉬는구나. 살아있구나.'


그렇게 죽어가던 육상의 영혼이 바닷속에서 다시 생명의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나를 괴롭히던 수만 가지 생각들이 다 사라진다. 바닷속은 땅을 밟고 사는 인간에게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서 아주 많은 제약이 따르고 신기하게도 그 제약은 느낄 수 있는 것들의 가치를 폭발적으로 상승시킨다. 다음에 또 보고 싶어 정확히 이 지점에 다시 입수한다고 해도 또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자연, 더 머물고 싶지만 고갈되어 가는 기체, 정말 애정 하지만 해양생물을 존중하는 맘으로 절대 스킨십은 하지 않는 제한된 행동.


한정된 시간, 지금뿐인 기회, 바라만 보는 만남은 그 순간을 엄청나게 소중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한 번뿐인 인생이며 영생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끝이 너무 먼 것만 같아 종종 삶의 가치를 망각하곤 한다. 수중에서는 줄어드는 잔압계 바늘 끝 숫자와 함께 그 끝이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와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려는 노력이 활발해진다. 내가 숨 쉬고, 시간이 소중해지고, 그 시간을 채우는 다른 생명이 소중해지고,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그 공간이 좋다.


I Love Diving. 2021


누구에게나 그렇게 숨 쉬는 시간과 공간, 나를 숨 쉬게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것이 나에게는 바다와 다이빙, 나와 함께 그곳에서 많은 것을 공감하는 나의 짝꿍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숨 쉬는 시간과 공간을 찾지 못했다. 이제 곧 익사할 것 같은데... 너무 두려운데 수면 위로 올라가 숨을 쉴 수 있는 법을 전혀 몰라서 결국 그곳을 영원히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살고 싶어서였다.


만약 그때, 내가 다이빙을 했다면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두렵지만 다시 현실의 바다에 들어가며 견디고 익숙해지는 단단함을 배웠을까?

그랬다면 응급환자로 실려나가는 모습이 아니라 멋지게 런웨이를 걸어 나가는 모습으로 떠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가 그다지 없는 편인데, 다이빙을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한 것은 이상하게도 반복적인 '만약에' 망상의 시작점이 된다.


이달 초에 1년 반 만에 해외 다이빙을 다녀왔다. 사실 작년 출국은 그마저도 업무 중심의 여정이었기에 온전하게 쉼을 위한 해외 다이빙은 2년 반만이었다.


오랜만에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기분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고 나니 끊임없이 가라앉고 있던 지난 시간들이 조금 맑아지는 기분이다. 나에게 코로나 블루의 극복은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세상이 아니라 다이빙을 떠나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숨 쉬기 위해, 숨이 쉬어진 후 좋은 생각을 할 에너지를 얻기 위해 숨실 수 없는 곳으로 간다.

이번 달 숨 쉬고 온 보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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