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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의 슈퍼스타

SAVE #1 수중 채널 크리에이터. 바다 덕질 중입니다

by 귀하다 Oct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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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 남편과 처음 만났던 투어 영상 소스를 찾아볼 일이 있었다. 다른 영상물을 편집하기 위해서였지만 어느새 나는 그와의 추억 여행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때 남편과 둘이 찍은 사진이  장도 없는 것이  속상했는데, 지나가는 샷이라도 있다면 캡처할 생각으로 혹시   장면이 있을까 하나씩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촬영하고 있는 앵글에 남편이  곁을 떠나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며 서성이는 모습, 수중에서는 내가 전원이 꺼져 있는 카메라를 남편 쪽을 향해 찍고 있는 척하는 어이없는 장면도 발견했다. 부부가 보면서 서로 내가 그렇게 좋았냐며 웃었다.      

그때는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워낙 코로나 돼지가 되고 보니 2019년의 내가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역시, 기록은 더 자주, 많이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사진뿐만 아니라  생각을 남긴 글도 그랬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마주한 나의 기록물들은 때론 부끄러움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놀라움이나  남겨두지 못한 아쉬움이었던  같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아팠는지, 그날의  마음이 향한 곳이 정확히 어디였는지 기억이 분명하진 않아도  감정을 쏟아내고 남겨둔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것은  여운이 남는 일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세월이 지난 후의  자신만이 온전히   있는 것이 아닐까. 동시대의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틀렸다고 비난하는 말들에 너무 흔들리고 상처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들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생각이 변할지도, 후회할지도, 나보다  잘못할지도 모르는데.     


마음이 지쳐서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하고 보내버린 시간이 조금 아쉽다. 어쩌면 영영 지워버릴 수 있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반대로 어디에도 그 마음을 풀어내지 못해 내 안에서 돌덩어리로 변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더 자주 더 다양한 방법으로 나와 우리, 세상에 대해 기록하려고 한다.   

   

다이빙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기록 욕구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황홀하고 행복했던 바닷속에서의 4~50분이 배 위에 올라오면 선명하게 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아무리 손짓 발짓 다 해가며 설명해도 ‘그런 물고기는 뭔지 모르겠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올 때면 비슷한 녀석을 어류도감에서 찾아낼 때까지 밥이 안 먹히기도 했다.

‘사진 한 장 찍어왔으면 됐을 텐데.’

처음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단 생각보다는 정말  원망스러운 기억력의 보조수단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수중에서 카메라를 드는 다이버는 정말 많다. 나도 이젠 사진에서 영상 촬영으로 분야를 바꾼  4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진  장이 담아내는  감성이 욕심날 때가 있다. 소셜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이미지와 영상을 공유하는 문화는 전보다  대중적으로 자리 잡았지만, 내가 처음 수중에서 카메라를 잡았던 2013년만 해도 수중촬영에 대한 의견은 나뉘는 편이었다.


“왜 그 귀한 광경을 눈으로 안 보고 화면으로 보는 거야? 나는 내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을래.”


이렇게 말하는 다이버도 적지 않았다. 난 그냥 개인의 가치관 차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직접 보고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구속 없이 그저 온전히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좋을 수 있고, 나 같은 사람은 이 순간에 저 아름다움을 잘 담아내서 저장하고, 나와 또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에 더 가치를 느낄 수도 있다고.   

   

제주. 2019


내가 직업 특성상, 카메라에 많이 찍혀보고  많이 찍어봐서 알게  진실이지만, 촬영자가 피사체를 사랑하고  알면  아름답게 담을    부정할  없는 진실이다. 이것은 기록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점반드시 기교와 기술이 우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감성쟁이의 믿음이다. 각도가 틀어지고 초점이 불분명하더라도  안에 담긴 작가와 피사체가 교감하고 있는 그들만의 감성은 무언가를 사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진심을 두드릴  있는 따뜻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      


Sealion. 포트링컨, 호주. 2016


이 생각이 나를 수중 사진에서 영상 촬영으로 방향을 바꾸게 했다. 2018년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수중 전문채널’ 이 지향점이었다. 다이빙 강사가 되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다 환경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 꿈 때문이었는데, 그 꿈에 다가서려면 다이빙과 바다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어떤 자격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몰랐던 지식에 대해 배우는 것은 정말 좋아하는데 행동을 강요받는 것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그게 옳은 행동이라 생각하더라도 한 번 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강압적으로 지시하듯이 부담 주는 행위, 머리로는 알겠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데 부르짖는 메시지는 왠지 화자의 진정성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복잡한 마음이 자리하게 되어 불편하다. 그래서 타인에게도 그런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바다 환경은 중요한 문제이고 내겐 눈앞에 펼쳐지는 비극이며 나의 일이지만, 바다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삶의 여유 있는 사람들이 부리는 허세처럼 느껴질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서 진심을 전하는 방법으론 어떤 것이 좋을까 아주 많이 고민했고 지금도  생각한다.    

  

강사가 되고 나니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이빙 강사가  여배우를 특이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이빙이  연예계 생활에 뭔가 도움이  거라 생각해서 부차적으로 접근한 성과가 아니었던 진지한 강사에게 예능프로그램이 원하는 포맷은  맞지 않았다.


PADI 기본 교육 스타일은 칭찬을 바탕으로  즐거운 분위기인데 나한테 일부러 딱딱하고 무서운 군대 교관처럼 행동하라는  만들어낸 이미지를 소비하고 싶어 했다. 제작진이 원하는 연출에  협조하지 않으니 송출되는 분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할 때도 조심스럽게 꺼낸 진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편집되었다.  번의 불편한 촬영과 결과물을  후로 오히려 다이빙과 관련된 촬영 섭외가 들어오면 나는  까다롭고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  눈에는 다소 걱정되는 바다 관련 콘텐츠들이 방송에 여럿 등장했다.      


나는 모든 것의 시작이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관심이 없다면 생기지 않는 감정이다. 관심이 생겨서 자꾸 보다 보니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니 지켜주고 싶고, 지켜주기 위해 행동하게 되는 . 생각해보니  과정의 흐름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 크게 보면 사람이 어떤 대상을 좋아하는 덕질 똑같았다.


나도 어린 시절, 실은 나이 들어서까지  오랜 덕질을 해봤다.   팬덤 사이에서  유명한 팬이었다. 눈물도 많이 흘려보고 노래가 시작되는 피아노  코드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리기도 했다. 방송국 공개방송, 콘서트장도 쫓아가고, 나쁜  하는 사람한테 거품 물고 화도  보고,  그래도 부자인 오빠  부자 되시라며 쓸데없이 앨범, 굿즈 4~5개씩 사고 팬도 아닌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고 그랬더랬다.


좋아하게 되면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하지 말라고 말려도 행동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바다와 해양생물들을 나만의 슈퍼스타가 아닌 대중적 인기스타로 만들고 싶었다.


처음부터 선생님처럼 조언하고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저 바다와 수중세계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을 잠재적 팬덤에게 보여드리자. 바다를 모르는 방송국 제작진에게 맡기지 말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사랑을 담아 편집해서.

   

나 좀 힘들어. 2021


그런데  영상과 관련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유튜브 내에 영상편집 채널을 운영하는 여러 크리에이터를 랜선 선생님으로 모시며 독학으로 편집을 익혔다. 그런데 10 넘는 시간 동안 방송 촬영   했다 하면 10 이상 카메라가 따라붙는 환경에서 일해  나는 유튜브의 콘텐츠 제작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기획, 촬영, 출연, 편집, 업로드, 커뮤니케이션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내는 채널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내가 나오는 컷은 누군가 찍어줘야 하는데 투어를  동료 역시 돈을 내고 참여한 여행이니까 나를 계속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찍어온 영상이 맘에  들고, 소스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이렇게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촬영해놓고는 외장 하드에 강제 하강시키고 수면 위로 끌어내지 않은 영상도 많았다.      


유명 예능 PD 님들처럼  영상  출연자인 상어, 만타, 물개 친구들을 완전 매력적으로 보여줘서 대중들이 자꾸 생각나게 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역부족이었다. 내가 PADI 홍보대사를 맡고 있어서  한마디, 표현 하나  때도 너무 가볍거나 논란이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기 어렵다는 점도 구독자 수를 빠르게 증가시키는 데는 걸림돌이 되었다.


처음엔 편집 속도도 느리고, 욕심도 많아서 영상 1개를 만드는데 3주가 걸렸다. 그런데 점점 익숙해지고 편집 효과에 욕심을 덜어내면서 작업 시간을 줄여나갔고,

‘딱 영상 100개까지만 업로드해보자. 그때까지만 포기하지 말자.’ 다짐했다.      


2016년 호주에서 직접 촬영한 돌고래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 2021


지금은  많아졌지만 내가 처음 채널을 개설했을 때만 해도 수중 관련 콘텐츠를 다루는 채널이 거의 없어서 조금씩 다이버들이 채널에 모이기 시작했다. 의외로 다이버들은 해외에서 단기간에 입문하고 계속 다이빙을 하고 싶지만, 국내에서 어떻게 활동을 이어가야 하는지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사실은 다이빙 입문자들이 필수로 배워야 하는데 여러 가지 옳지 못한 상황들로 미처 배우지 못했던 

초보자들이 인식해야  다이빙 매너, 기본적인 사고방식, 훈련방법등에 대한 잔소리도 좋아했다. 내가 들이는 경비와 시간, 노력에 비하면  엄청나게 마이너스인 채널이었지만,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내는  공간과 나를 믿어주는 구독자들에게 나는 많은 애정을 쏟았다.      


많이 아끼고 사랑한 만큼 날 선 마음으로 침범한 적군의 기습공격에는 늘 상처가 남았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팩트가 확실한데, ‘그건 틀리지 않나요?’라고 말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내 전문성이 떨어져 보이게 만드는 댓글을 남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나는 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처구니없는 다음 반박이 나오지 않도록 깔끔하게 내용이 정리된 댓글을 다는 데 소중한 시간을 들여야 했고, 그러고 나면 ‘아, 그렇구나. 난 몰랐네.’ 하거나 계속해서 외계어를 내뱉는 불통들도 있었다.      


나는 안전에 대해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스타일이라서 수중에서 흔히들 장난이라고 쉽게 하는 행동 중에 정말 위험하고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행동들에 대해 강한 쓴소리를 했고,  이야기를 굉장히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이빙 위험하지 않아요?"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위험해요. 지켜야    지키면 아주 위험해요.”

나는 그렇게 대답한다. 장비 없이는    없고, 언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없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너무 두려움이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겁이 없는 것도 역시 문제다. 나는 다이빙 관련 사고 기사를 제발  보고 싶다. 생명이 달린 문제라서 나도 어떤 때는 아주 강하게 비판한다.


수중에서 탱크를 잠가서 숨을  쉬게 만드는 장난을 치는 사람들과 다이빙하지 말라고 했다. 당신의  뒤에서 일어난 일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흡기에서 기체가 나오지 않아 숨이 막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친구들이 깔깔대고 웃고, 그런 후에 탱크를 다시 열어주겠지. 비유하자면 ‘술에 만취해서 당신을 차에 태워 운전하려는 친구랑은 앞으로 만나지 마세요. 그런 사람 당신 친구 아닙니다.’ 같은 상황에 대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가 그런 단순한 장난에 그렇게까지 강하게 말하는 것이 너무 듣기 불쾌하다고 하더라. 본인이, 혹은 가까운 누군가가 그런 장난을 자주 해왔던가 보다.


만약 탱크가 잠긴  사람이 순간 패닉에 빠진다면?

패닉 다이버는 모든 장비가 제대로 작동해도 호흡에 문제가 생길  있다. 주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있다. 하나도 재밌지가 않다. 그것은 절대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나도 물론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그런 장난치는 친구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세요.’ 하고 좋게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해마다 휴가철에 장난으로 빠뜨렸는데 그 친구가 설마 수영을 못할 줄 몰랐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하는 성인 익사 사고 뉴스를 보는 것처럼, 나는 ‘설마’가 만들어 낼 예측 가능한 위험 상황을 만드는 것이 정말 싫다.      


나는 사주에 온통 나무인데 휘어지지 못해 부러져버리는 나무라고 했다. 다행히도 나보다 훨씬 유연한 사고에 새겨들을 필요 없는 비난은 그냥 없는  넘길  있는 남편을 만나서 부러지지 않고 하루하루  토닥거림 받으며 살고 있다.


남편이 채널의 동반자가 되어준 후로 나는 훨씬 에너지를 얻었고 그래서 다른 인기 넘치는 수익 나는 채널에 비하면 너무 적지만, 우리끼리 좋은 활동, 재밌는 일들을 시작해보기엔 충분한 구독자들이 모였다고 생각해서 하나씩 진행해보고 싶은 일이 많아졌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 나와 워낙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  남편은 서로 좋은 방향으로 보완이 되었다.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들과 단체로 만나 무엇을 진행하기 전에 일단 낯선 씨러버를 소수로 만나 교육을 진행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고 생각했다. , 씨러버는  채널 구독자 애칭이다.      


교육 문의하는 사람 중에 진심이 느껴지는 고운 마음의 씨러버들과 우리 부부는 연을 맺게 되었고 채널을 통해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함께 하고 싶은 일을 논의할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것이 행복했다.    

  

2020년 초, 코로나가 심각해지기 직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이빙 강사가 되어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던 부부, 그리고 제일 첫 번째 씨러버 교육생이고 첫 만남부터 ‘내 사람이다’ 싶었던 동생과 함께 갔던 그 오붓한 세부 투어 이후로 교육생들과 2년 훌쩍 넘게 해외에 못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 그때가 귀국 후 격리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했던 거의 마지막 시기였던 것 같다. 처음 맞는 재난 상황이라 이렇게 오래 지속될 줄 그때는 우리 중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시기에 우리는 MBC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부러우면 지는 거다] 촬영을 시작했고.  당시엔 남자 친구였던 짝꿍의 얼굴이 방송에 공개된   유튜브 채널에도 함께 출연하기 시작했다. 강사 이름으로 Jan Lee(쟌리) 사용하는데,  혼자 출연할 때보다 쟌리의 등장을 확실히 구독자들이  좋아했다.

    

가평에 있는 잠수풀 K26 수심 5m 구간이 1 로비에서 유리창 전면으로 보이는 구조다. 우리가 사용하는 얼굴을  덮는 풀페이스 마스크를 아직 다이버들이 많이 사용하지 않는 편이라서 풀페이스 마스크를  남녀 커플이 우리 부부라는  알아보기 쉬운 편이다. 수중에 있는 우리를 보고 로비에서 손뼉 치고 점프까지 하며 좋아해 주시는 씨러버들도 종종 있다.


창문으로 다이빙풀 밖 로비가 보이는 K26. 2020


안녕하세요.  씨러버예요.”라는 인사를 수영장이나 제주도에서 많이 들었고, 우리의 커뮤니티가 조금씩 견고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정도 바쁜 일정을 보냈고, 2021년이 되면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질 거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기대했던 것과 달리 코로나는 여전했다. 남편도 나도 깊은 코로나 블루에 빠져들었다.


실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었던  같은데 2021 3, 1 가까이 코로나로 미뤄졌던 남편의 코스디렉터(PADI 강사의 최상위 단계) 연수가 드디어 진행되었고, 2주일 내내 방역 마스크와 함께였지만, 그래도 따뜻한 바다가 있는 도미니카공화국을 다녀오자 나는 일상으로의 복귀를 받아들이지 못한  완전한 무기력 상태로 빠져든  같다.

가끔 겨우 기력을 내서 채널에 영상을 올릴 때면 씨러버들은 기다렸다고 반겨주셨지만, ‘이젠 자주 올게요.’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는 남편만 의지하며 지냈다.


처음에 계획했던 영상 100개 업로드도 훌쩍 넘었고, 이제 발전적인 여러 일을 해보려고 했는데, 이런 대재앙 앞에서 무너져버린 나의 꿈, 우리의 꿈.

나는 결국 나의 슈퍼스타들을 대중적 인기스타로 만들지 못하고 잠시 연출을 쉬게 되었다.

     

그 후로 2021년은 내게 참 많이 잔혹했다.

발목을 다쳐서   동안  걷지 못하면서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기도 했고, 겪지 않아도  실망스러운 일들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렸다.


어디가 바닥일까…? 기체가 고갈되어 가는데 한없이 하강 조류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계속 가라앉던 나는 한 섭외 전화를 받고 다시 상승을 시작했다.      


그래. 다이빙을 시작하게  이유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었던 것처럼, 유튜브를 시작했던 이유도 이제 하나씩 알아간다.


내가 목표한 성과가 당장 빨리 눈에 보이지 않아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처럼 느껴진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대단한 시간이었다.

 채널을 통해 평생을 함께할 버디를 만났고, 마음을 나눌  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180 개의 영상은 이제 내가 바다에 진심임을 대변해주는 증거의 성격을 갖는 기록물이 되었다. 그리고  영상을 봐온 작가님의  섭외 전화는 지금  글을 쓰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영상을 힘겹게 배우고, 돌고 돌아  오래전부터 좋아하고 자주 해왔던 글쓰기를 작정하고 하게 되었다.   해의 시간 동안 소수만   있고 대중에겐 숨겨야 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했던  글쓰기에 담긴 양가감정도 세월과 함께 조금씩 무뎌지며 덜어냈다.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랑 이야기를 하며 그토록 원했던 작가의 이름을 갖게   글을 쓰게 되었다.


어쩌면 좋지. 이번에도 슈퍼스타는 결국 나를 좋은 방향으로 좋은 사람들에게로 이끌어주었네.

이제 내게도 정말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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