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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도 단계가 있다

LIVE #2 빠른 성공, 달콤함만 있진 않아

by 귀하다 Oct 30. 2022

스쿠버다이버에게 레벨이 있듯이 스쿠버다이버가 찾는 바다에도 단계가 있다. 골프 코스에 난이도가 있는 것처럼 바다에도 쉬운 바다, 어려운 바다가 있다는 뜻이다. 아주 단편적으로 예를 들자면 신혼여행지의 체험 다이빙에 적절한 따뜻한 동남아시아의 바다는 쉬운 바다다. 바다가 일 년 내내 따뜻하고 앞이 잘 보여서, 간단한 장비 사용법을 익히고 가이드의 통제에 따르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확률이 낮다.      


반면 우리 동해는 어려운 바다다. 수온이 낮고 시야가 좋지 않다. 일반적인 대중목욕탕의 냉탕 온도가 18도 정도인데 동해의 겨울 바다는 2~4도까지 수온이 낮아진다. 물론 일 년 중 가장 수온이 높은 늦여름에서 초가을에는 수면 온도가 26도 정도까지 오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시야가 더 흐려지고, 수심이 깊어지면 동남아에 비해선 역시 매우 찬 물이다.


저체온증은 스쿠버다이빙에서 경계해야 할 아주 위험한 증상이므로 국내 바다에서 일 년 내내 다이빙을 즐기려면 ‘드라이슈트’라는 특수장비가 필요하다. 말 그대로 몸에 물이 닿지 않고 건조함(dry)을 유지할 수 있는 슈트라서, 슈트 안에 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두꺼운 내피를 입을 수 있는 슈트다. 일반적인 우주복을 상상하면 생김새가 비슷하다. 보온 내피를 껴입은 만큼 움직임이 둔하고 물속에 가라앉기 위해서 더 많은 납덩이를 무겁게 착용해야 한다.      


드라이슈트. 문암, 2014드라이슈트. 문암, 2014


바다 깊이 내려가면 수압에 몸이 짓눌리지 않냐는 질문을 꽤 많이 받는다. 우리 몸은 대부분 액체+고체로 이루어져 있어서 괜찮다. 단지 기체로 이루어진 공간이 압력을 받아 통증을 느낄 수 있는 귀는 매 수심 1m마다 압착을 풀어줘야 하는 데 이걸 ‘압력 평형’이라고 부른다. 코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흥 불어내듯이 숨을 뱉으면 압착을 풀 수 있어서 그다지 어렵진 않다.


그런데, 드라이슈트를 입게 되면 슈트 전체가 기체 공간이 된다. 수심이 깊어지면 몸 전체에 압착이 오면서 슈트가 쪼그라든다. 그래서 슈트와 기체 탱크를 호스로 연결해서 수심의 변화에 맞게 기체를 넣어주고 또 상승할 때는 부풀어 오른 만큼 기체를 빼주어야 한다.


만약 제때 기체를 슈트에 공급해주지 않는다면 다이빙 후에 온몸에 채찍 자국처럼 슈트 압착으로 피멍이 든 걸 보게 될 거다. 그래서 드라이슈트는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며 정교한 장비인 만큼 비싸다. 어려운 바다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장비, 경험과 훈련 등 쉬운 바다보다 더 많은 것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가장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TEC DEEP 과정. 2014가장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TEC DEEP 과정.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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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도 조류가 센 바다, 깊은 수심, 머리 위가 막혀 있는 동굴, 난파선, 아이스 다이빙 등 바다의 난이도를 판단하는 수많은 요소가 있다.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도 다이버들이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곳에 쉬운 바다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다이빙은 늘 끊임없는 도전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동굴 다이빙. 세노테, 멕시코. 2016동굴 다이빙. 세노테, 멕시코.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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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 다이빙. 코론, 필리핀. 2018


보통 우리가 ‘대물이라고 부르는 덩치가  해양생물들은 조류가  곳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잔잔한 바다가 아이들 놀이터가 같은 느낌이라면 역동적인 바다가 어른들의 세상을 보는 느낌이랄까. 동굴과 난파선, 아이스 다이빙은 위험 상황에서 바로 출수할  없다는 위험 요인 있지만  훈련하고 준비하면 감동적이고 경이로운 환경을   있다는 매력 때문에 많은 다이버가 꿈꾼다.      


스쿠버다이빙이라는 한 가지 스포츠를 하고 있지만, 그 스포츠를 하는 장소가 살아 움직이는 바다이기에 매 순간이 다르다는 점이 다이버들을 매혹시키는 중요 포인트다. 때로는 고된 훈련과 교육 과정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지루하진 않았던 것 같다.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얻어걸리는 행운 같은 순간도 물론 있겠지만, 결국은 노력과 훈련에 맞게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간다는 점에서 삶과 닮아있는 모습이다.     

 

나는 다이버가 현재 자신의 레벨에 맞는 바다를 경험해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레벨에 맞지 않는 높은 레벨의 바다에 준비되지 않은 채로 도전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리고 너무 초보자일 때 다이버들이 명소로 손꼽는 좋은 바다를 경험해버리면, 그 이후엔 그 시기의 초보 다이버가 느껴야 할 다이빙의 소소한 즐거움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 나는 그 작은 기쁨을 놓치는 것이 참 안타깝다. 마치 천재 어린이가 초중고를 건너뛰고 대학에 다니게 된 느낌이랄까.

주변에서는 그 아이를 천재라고 칭찬하고 아이는 부모님의 자랑이었을 거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나누어야 할 즐거움을 모르고 유년기의 추억 없이 바로 성인의 사회에 접어든 한 아이. 아마 너무도 똑똑하고 성숙해서 그 시절엔 동년배 아이들의 놀이가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정말 어른이 된 어느 날,

‘나는 왜 어린 시절 그런 즐거움을 몰랐을까?’

후회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어떤 특정 시기에만 경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은 시기를 놓치면 영원히 알 수 없는데,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인간이니까.  

    

나는 팔라우 바다를 참 좋아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해양생물 만타 가오리를 볼 수 있는 포인트도 있고, 그레이 리프 샤크(Grey Reef Shark)라는 아주 온순한 상어들이 동네 강아지처럼 많이 보이며, 정말 다양하고 풍부한 어종들은 물론이고, 수면에는 돌고래가 뛰어노는 아름다운 바다다. 그런데 그런 만큼 조류가 아주 세서 ‘블루코너’라는 포인트에서는 조류 걸이라는 장비로 내 몸과 바닷속 암석을 연결해서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고정해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바다다.


나는 100번째 다이빙을 팔라우에서 했는데. 다이버들에게 100 로그는 나름 큰 의미라서 더 기억에 남는 바다이기도 하다.  

    

100번째 다이빙 입수 전. 팔라우, 2014100번째 다이빙 입수 전. 팔라우, 2014
만타 가오리. 팔라우, 2014만타 가오리. 팔라우, 2014


그런데 내가 머물고 있을 때 오픈워터 교육을 막 마친 연세가 제법 있으신 고교 동문 단체 손님과 한배를 타게 됐다. 내 개인적인 견해지만, 팔라우는 오픈워터 단체가 선택하기에 좋은 바다는 아니다. 이 수많은 어종과 이 역동적인 바다를 온전히 눈과 마음에 담아 가시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팔라우는 필리핀과 비교하면 숙박이나 다이빙 요금이 비싼 편이라 효율적이지도 않고, 아마 팔라우를 경험하고 나면, 다른 바다가 재미가 없다고 느끼실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까웠다.


어디다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수많은 어종이 있고, 해양생물들의 크기가 많이 큰 편이라서, 경험상 초보자 남자 어르신들은 팔라우 바다를 본 후에 아기자기한 바다에 가면 시시하다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 투어 자체에 대한 만족도는 높을 수 있지만, 앞으로 펼쳐질 다이빙 라이프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내 견해다.     


고래상어는 어류 중에서 가장 큰 생물이다. ‘고래’라는 말이 붙어 많이 오해하지만 고래가 아니라 고래를 닮은 ‘상어’다. 옆으로 넓은 머리에 둥글넓적한 입을 크게 벌려 주로 작은 새우들을 먹는 온순한 고래상어는 모든 다이버가 만나고 싶어 하는 인기스타다.


필리핀 보홀은 고래상어가 꽤 종종 나타나지만 특정 포인트를 고래상어 포인트라고 정해서 투어를 진행할 정도로 고정적으로 만날 가능성이 크진 않다. 그런데 보홀에 살면서 몇천 회를 다이빙한 강사님이 아직 못 만난 고래상어를, 오픈워터 교육을 받으러 온 학생이 교육 중에 마주하기도 한다. 그 강사님에겐 집착, 오기, 열망 같은 고래상어지만 초보자 학생에게는 ‘우와 되게 큰 뭔가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갔다.’ 정도의 느낌이었다고 했다.


만약 당신에게 인생에 단 한 번만 고래상어를 만날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느 쪽을 택할까?

난 오픈워터 때 멋모르고 만나는 것보단 몇천 회 다이빙 후에 만남을 택하고 싶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의미일 테니까. 몇천 회를 다이빙할 정도라면 분명 고래상어와의 만남은 내게 기쁨일 거란 확신이다.


고래상어. 로신, 태국. 2017고래상어. 로신, 태국. 2017


남들이 정말 열망하는 무언가를 아주 일찍 얻는 기회는 반드시 좋은 것일까. 빠른 길이 꼭 좋은 길, 옳은 길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나도 초보자일 땐 해양생물 눈도장 찍기에 묘한 욕심이 있었다. 누군가 투어에 다녀와서 나는 아직 못 본 생물을 보고 왔다고 하면 너무 부럽고, 나는 언제 가서 만나나 걱정도 되고, 내가 막상 갔는데 못 보면 어떡하지, 빨리 투어 가야 하는데. 집착하기도 하고 더 멀리, 더 큰 생물을 만나러 가는 투어를 계획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더 강렬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한 자극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투어 후에 얻는 만족만큼이나 피로도가 높아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더 올라가는 길을 찾는 것은, 물론 성취감을 높여주고 좋은 경험과 보람을 남겼지만, 마음이 지치기도 하는 일이었다.   

   

Mako Shark(청상아리). 바하캘리포니아, 멕시코. 2018Mako Shark(청상아리). 바하캘리포니아, 멕시코. 2018


다이빙 투어는 수중활동이 중심이 되는 여행이기 때문에 바다 환경이 좋으면 전체적인 투어 만족도가 당연히 높아진다. 그렇지만 설령 날씨가 안 좋거나 주목표로 삼았던 해양생물을 못 보았다고 해도 함께한 사람들, 시설, 환경, 에피소드 등 다양한 요소들로 기억되고 평가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다이빙 투어에는 바닷속에서 내가 목표로 했던 해양생물을 만났는지, 충분히 만족할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적절한 시간 동안 함께 하며 그 생물을 잘 촬영했는지가 유일한 가치인 듯한 느낌이 강해졌다.


마치 일찍 성공을 맛본 사람 중 일부가 성취 지향적 가치에 치중하며 삶의 소소한 재미 찾기에 실패해 무료해지는 것처럼, 내 다이빙 투어도 목적 지향적인 가치가 뚜렷해지며 재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더 남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먼 곳으로 시간과 돈을 더 많이 투자해서 투어를 떠나면서 그날 목표했던 타깃 생물을 만나지 못하게 되면 내가 들인 비용에 대한 본전 찾기에 연연하며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


자연은 처음부터 100% 보장이라는 것을 해주지 않았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웃지 않는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는 내가 배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버거운 과정이 지금의 나와 맞지 않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다.      


다행히 여러 고민과 부담감에 젖어 방황할 때 생각의 전환을 도와준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여전히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생명체에 대한 갈망은 남아있지만, 집착과 오기는 다 사라지고 여건이 될 때 떠나도록 준비하자는 온화한 여유가 자리했다.


남편을 만난 후로 비로소 바다와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 흘러가며 보는 다이빙이 아니라 머물면서 지켜보는 다이빙을 하게 되었다. 생물들은 각자의 삶을 참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보게 되니 바다가 완전히 달라졌다.


내가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그저 출석체크만 하는 선생이었다면, 이제야 출석한 아이들을 하나씩 붙잡고 어제는 어떻게 보냈니? 묻기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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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찍기 시작한 생물들의 눈.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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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남들의 ‘이렇다더라.’라는 평가를 듣고 거긴 안 가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건너뛴 초보자 코스들이 있다. 만약 초보자로 돌아간다면 남들이 많이 가본 곳들인데 나는 가지 않았던 바다를 경험해보고 싶다. 물론 지금이라도 갈 수 있지만 지금 간다면 초보자의 시선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오롯이 전달받긴 어려울 테니까.

     

그렇지만 얼마나 다행인가. 삶은 아직도 배울 수 있는 새로운 분야로 넘쳐흐르고, 나는 언제나 입문자가 될 수 있다. 몇 단계씩 뛰어넘어 일찍 위로 올라가는 것이 멋지기도 하지만, 나는 천천히 둘러보며 올라가는 길에 만난 예쁜 꽃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분명 나를 채워주는 소중한 에너지가 될 거라 생각하며 살게 되었으니.


더는 쫓기지 않아도 되고 마음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바다와 남편에게서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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