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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수 있는 용기

LIVE #1 멈추었던 당신, 잘했어요.

by 귀하다 Oct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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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지 15년 차. 이제는 조금 덜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퇴사한 걸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었다. ‘후회했다’라는 답을 정해둔 것처럼, 꼭 한 번은 그 답을 받아내고 싶은 것처럼, 후회한 적 없다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표정으로 듣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올림픽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퇴사한 건 조금 아쉬웠다. 그건 솔직한 마음이다. 만들어내지 않은 감동의 드라마가 매일 펼쳐지는 세계인의 축제를 직접 전하는 일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다.   

  

얼마 전 그런 내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국가대표 선수들과 예능프로그램을 녹화하는 행운이 왔다. 한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는 위대한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수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런 귀하고 대단한 분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아주 오랜만에 방송 일 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몸을 쓰는 프로그램이 아니어서 나는 내 역할을 즐겁게 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화이댕, 2021



어려운 환경 속에서 끝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스포츠 스타들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극한의 정신적, 체력적 한계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자극적인 연출을 하는 콘텐츠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이런 콘텐츠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겨내고 살아남는 최후의 승자를 영웅으로 만드는 사회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는  같다. 스포츠 정신이나 정해진 규칙 안에서의 융통성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며, 두려움을 이겨내는 도전정신과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타의 모범이 되는 인간상이라는 프레임은 사회 전반에 걸쳐있다.

그래서인지 ‘포기라는 단어는 부정적이고 약한 느낌, 마무리되지 않은 미완성의 찝찝함을 남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멈춰야  때를 알지 못하고 그저 내달리는 것만이 멋지고 좋은 것이라는 판단의 오류를 범하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빙 강사가 되기 위해서 받는 강사 교육 과정에는 기술적인 실습보다 훨씬 많은 시간의 이론 교육 시간이 있다. 강사 직전 단계인 다이브마스터 과정에서 기술적인 실력은 대부분 갖추게 되기 때문에 여기에 반복 훈련과 교습법이 더해진다.

이론 교육에는 필기시험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론과 계산법,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지식과 정보를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 물론 포함되지만, 이외에도 아마추어 때와는 다른 과정이 추가된다. 강사 교육 과정에 들어오기 전에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토론하면서 수많은 ‘만약이라는 상황에 대한 최선의 대응방안을 생각해보고 의견을 나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가장  차이점은 바로 프로에게는 결정권이 주어지고,  결정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프로에게 요구되는 아주 중요한 자질  하나는 바로 포기할  있는 용기 .      


PADI 강사시험 합격증. "축하합니다. 최송현 강사님" 이란 말을 들었을 때의 전율이 생생하다. 제주, 2015


다이빙 투어를 인솔하는 강사는 아마추어 다이버들을 데리고 바다로 여행을 떠난다. 휴가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 직장인을 예로 들었을 때 그들의 휴가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고 또 그런 만큼 휴가에 대한 기대와 요구도 높다. 일정이 늘 계획대로 잘 진행되면 좋겠지만, 비행기의 연착, 현지의 궂은 날씨, 팀원의 컨디션 난조 등 투어는 늘 원치 않은 상황들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스펙터클한 실습현장이며, 그런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역할이며 숙명이다.  

    

리더의 숙명. 2021


다이빙 투어를 선택한 사람들은 입문을 위해 교육 다이빙을 하러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이빙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보통의 해외 다이빙 투어는 다이빙 말고는 딱히  일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여행지 자체가 다른 유흥이나 관광 거리가 많지 않아서 굳이  거리를 찾아 번화한 곳으로 가려면 이동수단과 추가 비용  따로 고려해야  문제들이 있거나, 온종일 다이빙을 하고 나면 무언가를    있는 체력이나 시간적 여유도 많지 않다.

물속에 잠기고 싶어  사람들이니 종일 바다 근처에 있다가 저녁에 숙소에서 맥주 한잔하며 담소를 나누다 잠들면 그것이 행복이다.      


그런데 물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경우, 아주 정확하게 얘기하면 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는 경우 투어를 인솔한 리더에겐 너무도 무거운 선택의 시간이다. 아예 날씨가 나빠서 절대 배가 뜰 수 없다고 다이빙 리조트에서 확실하게 막는 정도의 날씨라면 선택권 자체가 없어서 다이빙할 수 없게 된 팀원들과 물 밖에서 어떻게 좋은 시간을 보낼지 다 같이 생각하면 된다. 손님들은 짜증도 나고 속상하겠지만 날씨는 강사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아마 그 원망이 강사에게 향하진 않겠지.


그렇지만 문제는 굳이 배를 띄우려면 띄울 수 있지만 그다지 바다 환경이 좋지 않은 애매한 경우다.

정답은 없다. 함께 투어에 참석한 팀원  누군가는 아직 다이빙 스킬이 부족할 수도 있고, 스킬이 좋다 하더라도 수면 너울이 심하고 조류가 세고, 시야가 좋지 않은 바다에선  다이버도 달라질  있다. 리조트도 강사도 팀원들이 다이빙하면 경제적 소득을  얻을  있다. 아마 규정에 따라선 배가   있는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게스트의 선택으로 예약한 다이빙을 하지 않는 경우엔 환불이 전혀 불가능한 곳도 있을  있다.      


리조트에는 우리 팀만 있지 않다. 다양한 인솔자가 다양한 멤버들과 함께 있다. 어떤 팀은 안전제일을 외치며 오늘은 수영장에서 놀겠다고 선언한다. 어떤 팀은 이보다도 훨씬  강한 바다를 많이 겪어봤다며 무조건 다이빙을 간다고 한다.  팀원   사람은 표정이 어둡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같다.


우리 팀은 어떻게 해요?”


나와 함께 온 팀원이 물어본다면, 이때 과연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일까?    

 

만약 욕심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다이빙하지 않을 것을 결정했는데 다이빙을 나갔던 다른 팀원들이 리조트로 돌아와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대물을 만나 정말 최고의 다이빙이었다고 사진과 영상을 보여준다면? 우리 팀원들은 나를 원망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지 않은 손님이라면 여행 후에 나쁜 후기로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라는 마음으로 팀원들을 데리고 다른 팀과 함께 바다에 나갔는데, 우리 중 누군가, 혹은 우리 팀이 아니더라도 배에 탑승했던 누군가가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그 트라우마를, 그 상처와 죄책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선택은  그렇다. 옳은 선택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것일까.


결과를 보고 나서 ‘그건 옳은 선택이었어.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어.’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있지만, 부질없다. 선택의 순간엔 너무도 명확해 보였지만 예상과는 다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선택에 순간에 모두가 반대했지만,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모두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 과정이었지만 결과가 좋았다고 해서  선택이 과연 옳았다고   있을까? 혹시나 일어날  있는 불의의 사고를 막기 위해 남들보다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서 늦어졌다고 해서  리더는 무능력하고 용기가 없는 사람인 걸까?

선택권을 가진 사람은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인 것 같지만 반면 그 막중한 책임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늘바다. 돌고래. 2021


만약 다이빙 투어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프로의 자격을 가졌다면 사실, 문제는 조금은  쉬울  있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조언은 하되, 각자의 선택에 맡기고 결과의 책임을 각자가 지면 된다. 물론 그조차도 후회는 남을  있다.


그렇지만 팀원 중에 아마추어가 있는 경우에 모든 선택은 팀을 인솔한 프로의 책임이 된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따를게요.”라는 말은   없다. 그래서 선택의 순간 강행할 것인가 멈출 것인가는 모두를 만족하게  수는 없는, 누군가에게는 불만족스러운 결정이다.


이때 강사는 각자  자신의 능력과 팀원들의 능력,  밖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무조건 ‘해보는 거야라는 마음은 용기가 아니라 오기일  있다. 만약  상황이 위험하다고 느껴진다면, 비록 원망을 듣더라도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면 리더는 포기를 선언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포기할  있는 진정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다이빙은 배를 타고 이동해서 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여러 명이 그룹으로 팀을 이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청소년 또래나 폐쇄적인 집단에서 종종 나타나는 ‘동료 압박’ (Peer Pressure)'이라는 감정적 불편함이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동료 압박은 같은 집단의 구성원이 가지는 유사한 행동, 말투, 사고방식 등의 집단 동조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인데 다이빙에서는 주로 자신이 불편한 상황임에도 자신 때문에 팀원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본인의 상태를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예를 들면  같이 입수를 해서  같이 출수하는데 같은 양의 기체를 가지고 입수해도 누군가는 기체를 빨리 사용하고 누군가는  오랜 시간 사용한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초보자의 경우는 숙련자보다 호흡이  안정되고 수심의 변화도 많아서 기체 관리가 조금  어려운 면이 있다. 보통 현지 가이드는 다이버  누구라도 남은 기체량이 70 (bar) 되면 수신호로 얘기해 달라고 한다. 그럼 그때부터 팀은 상승을 시작하고 출수를 준비하게 된다.


이때 초보자 중에는 다른 숙련자들에겐 아직 기체가 한참 남은  같은데, 내가 너무 빨리 기체를 소비해서  때문에 다이빙 타임이 짧아지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70 바가 되었는데도 소심해져서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국 사람들은 서양인들보다 조금  동료 압박을 많이 받는  같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70 바가 되었다고 말해주길 기다리면서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본다.


그것은 지난 어느 , 아주 못난 다이버에게 ‘ 때문에 다이빙이 일찍 끝났다라고 핀잔을 받은  좋은 경험을 했거나, 유난히 주변의 눈치를 많이 보거나, 배려가 많은 성격 탓에 일어날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매우 위험하고  절대 해서는  되는 행동이다.      


다이버 중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쉬고 싶은데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정말 몸이  좋은 날도 있고, 여성의 경우엔 비행기를 타는  갑자기 변화가 오면 예정일이 아닌데 월경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다이빙할  없는 상황은 아니지만, 개인차에 따라 통증이 있거나 컨디션이 저조해지는 사람들도 있어서 하루 쉬고 싶을  있다. 아니면 괜히 기분이 너무 좋지 않거나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냥  나가야겠다고 느낄  있다. 그럴  “ 오늘은 쉬고 싶어요.”라고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라는 질문에 제대로 이유를 답할  있는 동성의 강사님이 없거나, ‘기분이  좋아서, 꿈자리가  좋아서등의 이유를 말하면 ‘고작 그런 이유로?’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같아서 불안한 기분으로 그냥 배에 올라타는 경우다.


‘내가 빠지면 홀수가 되어서 버디 시스템이 안 맞을 것 같다. 단체 생활인데 이기적으로 보일 것 같다. 아프냐고 시선이 쏠리는 게 부담스럽다’ 등등 사람들은 꽤 많은 이유로 하고 싶지 않은 다이빙을 하기 싫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바다에 들어갔을 때, 의외로 기분 좋게 다이빙을 마치고 하길 잘했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안 좋은 상황을 경험할 수도 있다.  

    

포기를 말하는 것은 절대 나약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한다고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돌아서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강행한다면 위험해질지도 모르고, 내가 강행해서 나와 함께하는 동료를 위험에 빠뜨릴지도 모르고, 내가 위험해져서  가족들이 마음 아파질지도 모르는데 멈추지 않는 것만이 멋지고 강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이라고 누가 단정할  있을까.      


나는 강사 교육 과정 중에 판단과 선택은 강사 본인이 하는 것이지만,  보수적으로 선택해야 하며, 안전을 위해 과감히 포기할  있어야 한다  가르침이  좋았다.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팀원  누구라도 다이빙을 하고 싶지 않다거나 다이빙을 끝내고 싶을  동료 압박 없이 자유롭게 말할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결국, 도전과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 그리고 우리 존재의 가치니까.      


너는 나를 숨쉬게 해. 2022


나의  직장은 아주  회사였다. 출근할  바라보면 너무도 건물이 거대해서 ‘, 우리 회사 정말 크구나.’ 했었다.


최종면접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던 사장님의 질문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지나온 삶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생에 소소한 행복은 많았지만, ‘최고의 순간이라고 꼽을 1등의 순간은 아직 없었던  같다. 아마 합격하게 된다면 그날이 바로  인생 최고의 순간이   같다.  시간을 선물 받을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최고의 순간이 될 줄 알았던 그 순간은 마냥 기쁘기만 하지는 않았다.


대학교 3학년 때 3개월 동안 아카데미를 다닌 후에 나와 맞지 않는 길인 것 같아 방황하다가, 4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다시 조용히 혼자 시험 준비를 했던 나는 아나운서 준비생들 사이에서 정말 갑자기 튀어나온 듣도 보도 못한 아이였다. 합격 발표가 있던 날 미니홈피에 방문자 수가 폭발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아카데미에서 나와 아무런 상의 없이 내 기준에는 예쁘지 않은 내 사진을 자사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밖에서 친구와 저녁을 먹고 있는 내게 계속 그 사진을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성화를 부리는 지인들의 전화가 왔다. 그날부터 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아는 삶을 살게 되었다.      


얼굴이 알려진 직장인 신입사원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신입사원이라 일도 서툴렀고, 선배들은 무서웠고, 어디 가서 행여나 안 좋은 일에 휘말리면 큰일 날까 봐 많이 놀러 다니지도 못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몸이 여기저기 아팠고, 한 번은 녹화하다가 실신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밤마다 연예인들과 술을 마시고 다니니 아픈 거라고 했다. 나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지만, 당사자가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난 너무 어렸고 무지했고 생각도 짧았다. 요즘 들어 관련 서적들을 읽다 보니 당시의 나는 혼자서 감당해 내기보다는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내가 이미 계약금을 받고 소속사를 정해서 퇴사한다고도 했고, 집에 여유가 많아 유학을 간다는 말도 했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간다는 이야기도 했다. 정작 나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고, 하루하루 지워져 가는 내가 아예 0(zero)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회사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나는 그때 아나운서 최송현을 포기했다. 그때 내가 싸우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른 채 포기를 이뤄내기 위해 투쟁 중이어서 나의 포기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던 외로운 멈춤이었는데,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뿐이었다.


사표가 수리되고 인사팀과 마지막 미팅을 마친  회사를 나오는데 그제야 경계 태세가 풀어지며 억눌려있던 다른 감정들이 일어섰다.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져 버릴까   자신을 지키려고 꽁꽁 쳐놓았던 경계의 빗장들이 힘없이 무너지면서 슬픔, 원망, 고마움, 추억, 따뜻함  내가  공간에서 느꼈던 다양한 다른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의 자랑이었던, 더는 나의 회사가 아닌, 정말 커다란 그 건물을 마지막으로 올려다보며 비로소 나는 울 수 있었다. 나의 첫 번째 포기는 그랬다.      


혹시  글을 읽고 있는 귀한 당신,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중단했던 당신을 미워하거나 자책하고 있었다면. 당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벼운 평가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홀로 오롯이 맞서며, 가던 길에서 멈춰   있었던 당신의 용기를 이제는 칭찬해주면 좋겠다.

그거 절대 쉬운 결정 아니었잖아.      


앞으로도 나는 많이 도전하고 또 많이 멈출 생각이다. 파도가 높은 바다 앞에서 스릴 넘치는 다이빙을 진행하는 것보다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내 결정이,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옳은 선택이며 용기였음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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