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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로맨틱한 쓰레기

LOVE #3 쓰레기도 응원한 사랑

by 귀하다 Oct 30. 2022

남편과 처음 만난  18시간쯤 지났을  우리는 나이트 다이빙을 시작했다. 다음  저녁 수중 사진 대회에 제출할 맘에 드는 사진을 아직 촬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도 찾아서 많이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통 때였으면 혹시나 수중에서 쓰레기를 주워 보관할  있는 수납 주머니를 챙겼을 텐데 밤인 데다가 촬영이 목적이었기에 준비 없이 입수했다.      


남편이 첫 만남에 찍어주었던 사진. 날루수안, 2019남편이 첫 만남에 찍어주었던 사진. 날루수안, 2019


이건 정말 철저한  개인 취향이지만, 나는 여성용 웻슈트 하의에 주머니가 달린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실 주머니가 있으면 실용적이다. 요즘은 

주머니를 달까? 주머니 있는 슈트를 입을까?’ 살짝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아무튼, 남편을 처음 만나던 시절에 나는 주머니 없는 슈트에 대한 마음이 확고했다.

     

사실 오랜만에 따뜻한 바다 다이빙이기도 했고 나이트 다이빙도 오랜만이라서 정말 재밌게 다니고 있었는데 내 눈에 쓰레기가 쑥 들어왔다. 생수병 뚜껑에 감싸져 있는 푸른색 비닐로 보이는 녀석이었다. 뜯고 난 후에도 동그랗게 말려있어서 너의 고향은 뚜껑이로구나 알 수 있는 비닐 형태. 나는 그냥 자석처럼 손을 뻗어 그 쓰레기를 주웠고 딱히 넣을 곳이 없어서 한 손은 쓰레기를 움켜쥔 채 카메라를 잡고 유영 중이었다.

(카메라는 혹시나 손에서 놓쳐도 몸에 달려있게 안전장치로 연결해 두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남편과 내가 더 빨리 친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수중카메라. 2022남편과 내가 더 빨리 친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수중카메라. 2022


그때만 해도 오늘 처음 만난 강사님이었던 지금의 남편이 내 어깨를 톡톡 치면서 손바닥을 펼쳤다.

“주세요.” 주머니가 있는 본인 슈트를 가리키면서.

고개를 숙이며 “고맙습니다.” 표현을 하고 그에게 쓰레기를 넘겨주었다. 그런데 사실 그 다이빙은 우리 둘이 버디가 아니었다. ‘어머 뭐야, 사진 안 찍고 날 보고 있었던 거야?’ 누군가에겐 별거 아닌 행동일 수 있지만, 내겐 정말 섬세하고 센스 있는 배려로 느껴져서 내심 설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남편에게 처음으로  것이 쓰레기였다니.   

다이빙을 마칠 때쯤 해변 쪽 수심이 많이 낮아져서 우린 무릎 정도의 수심에서 일어나 걸어서 출수했다. 온전히 일어서서 마스크를 벗었는데, 남편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참기 어려웠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우와 송현쌤 정말 물속에서 쓰레기 줍는 사람이었네요.”


내가   쓰레기 줍는 장면을 찍어주고 싶었는데 카메라 배터리가 방전되어  찍어줘서 안타깝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아무 말을 마구 늘어놓는데  사람이 정말 신나 보였다. 나는 어쨌든 내가 호감을 느낀  사람이 내가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는데  모습이 좋아 보였다고 하니 기뻤고, ‘,  강사님에게도 바다 쓰레기가  중요한 이슈인가 보다. 그리고  칭찬받았네.’ 하고 기분이 좋았다.  

내가 속한 다이빙 단체 PADI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회원을 보유한 글로벌 단체인데 국내 여배우 중에 PADI 강사가 나뿐이라서 다이빙 프로들 사이에서 나는 꽤 알려진 사람이었다. PADI 에는 다양한 국적의 홍보대사들이 있는데 내가 유일한 한국인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해양 환경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내 모습을 미디어에서 여러 번 봤던 남편은 궁금했었다고 한다. 미디어에 등장한 연예인 최송현 말고 진짜 다이버 최송현은 어떤 사람일까?     

 

PADI 공식 웹사이트의 홍보대사 소개 페이지. since 2019PADI 공식 웹사이트의 홍보대사 소개 페이지. since 2019


그런 궁금증을 가졌던 사람을 우연히 만나 같이 다이빙을 하게 되었고, 어두운 밤 중에 몸통 만한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 말고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직관하고 남편은 심쿵했다고 했다.     

 

나중에 연인이 되고 나서 그 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남편은 주머니 속에 넣은 그 파란 비닐 조각을 잊은 채 한국으로 돌아갔고 슈트를 세탁하고 뒤집어 건조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파란색 비닐 쓰레기가 톡 바닥에 떨어졌을 때,      


 ‘아, 송현쌤이 나한테 처음 주었던 쓰레기.’      


남편은 세상에서 제일 로맨틱한  쓰레기를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여느 쓰레기를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한동안  녀석을 버리지 못했다고 했다.

부부의 연을 맺으려니 바닷속 쓰레기까지 우릴 도왔나 보다. 사람이 사람에게 반하는 이유에 쓰레기가 있을  있다니. 아무래도 우린 운명이 맞는  같다.      

내가 다이빙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바다를 사랑하는 방식이 달랐다면, 바다에서 쓰레기를 수거할 만큼의 실력과 여유가 없었다면, 그가 손에 든 쓰레기를 받아 준 행동에 의미를 설레게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그랬다면 그 일은 우리의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아있는 의미 있는 사건이 되지 못했겠지.

우리가 사랑에 빠진 것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여러 해에 걸쳐 변화하고 성장하고 다듬어진 당신과 나의 정말 오랜 시간의 결과였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이번 에피소드를 곰곰이 떠올리며 나는 지금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 이래서 우리 집은 결국 오빠가 청소하는구나.’     


온갖 의미부여의 끝판왕이며 비움의 능력치가 거의 제로를 향하는 나는 아마 그 파란 비닐 쓰레기가 내 주머니에서 발견되었다면, 상자에 고이 모셔두고 ‘여보가 나에게 처음 준 물건이야’라며 보물로 여겼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세젤로쓰. 세상에서 제일 로맨틱한 쓰레기. 

썩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걸 버릴 수 있지…?

     

레오섭섭. 2021레오섭섭.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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