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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를 준비하며 보낸 나바시

SAVE #2 강연자는 청자보다 더 자란다

by 귀하다 Oct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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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만나는 동료, 친한 친구, 가족들에게는 말하기 어려운데 처음 만난 낯선 이에게 내 마음을 짓누르는 돌덩어리에 대해 나도 모르게 다 털어놓을 때가 있다. 상대에게 어떤 위로나 조언을 바란 건 아니었을 거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그 자체를 아무 곳에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를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편하게 숨이 쉬어지는 기분일 거다.

낯선 이는 나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기에

‘그건 당신이 이래서일 거야. 그럼 이렇게 해보세요.’라는 섣부른 판단이나 조언을 직설적으로 꺼내 들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왜 내가 그 사람에게 그렇게 깊은 얘기까지 했지?’

집에 돌아와 생각하면 조금은 낯부끄럽고 후회도 되지만 우리는 때때로 스쳐 지나가던 누군가와 온기를 주고받으며 살아왔다. 가끔은 그 온기가 새로운 소중한 인연의 시작이 되기도 했을 거다.   

   

친구. 2021


나는 누군가 나를 일부러 면박을 주려 하거나 본인의 힘을 과시하며 구석으로 몰 때에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억지로 굴복시키려 애썼던 누군가는 나를 독종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마 남편은 내가 세상 제일 울보라고 생각할 거다. 매체를 통해 만나는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타인의 슬픔과 아픔, 그것에 공감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꼭 슬픈 감정이 아니라도 그냥 알 것 같아서, 고마워서, 아팠던 과거의 나를 마주한 것 같아서 등 여러 이유로 어느새 눈물이 또르르다.


허구의 이야기에도 과몰입하는데 실제 이야기라면 더 여운이 깊다.

언제부턴가 방송인이 아닌 사람들의, 조금은 서툴지만 그래서 더 찐으로 느껴지는 강연을 보며 잠 못 이루는 밤이 종종 생겼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세바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160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은 원래 한 TV 방송사의 프로그램이었지만 지금은 독립회사가 되었다.

    

세바시에는 아주 다양한 주제에 다양한 연사들이 등장한다. 보통 한 가지 주제에 5-6명의 연사가 등장하고 각 강연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15분이다. 세바시 영상들은 한 강연자의 짧은 영상으로 업로드되기도 하지만 주제별로 묶어 1시간이 훌쩍 넘는 긴 영상으로 재편집되어 업로드되는 경우도 있는데, 백만 조회수를 넘긴 영상이 정말 많다. 유튜브의 주 시청자는 짧고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의 콘텐츠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왔던 보통의 인식을 깨뜨리는 반증의 채널이다.      


세바시에 등장하는 강연자들은 나처럼 방송이 직업이거나, 다른 분야의 전문가이더라도 다수의 방송 출연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분들도 있지만,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낯선, 방송과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는 분들도 많다.


얼굴도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의 15분이란 짧은 이야기 속에서 청자들은 화자가 그 무대에 선 용기와 꾸며내지 않은 진심에 빠져들어 간다. 그 15분에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화자의 아픔이나 절대 평탄하지 않았던 삶이 담겨있다. 청자들은 그와 닮아있는 나 자신의 삶을 위로하고 그래도 버텨낸 화자와 또 자신의 삶에 고마워하고 박수를 보내며 서로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밤이 너무 깊어서 ‘이것까지만 보고 자야지.’ 했었는데 결국 멈추지 못한 채 베개를 적시며 마지막 강연자의 끝인사까지 보게 되는 영상이 적지 않았다.    

  

보고싶어. 2020


외롭고 또 외로웠던 시절, 그렇게 낯선 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나누며 내게 온기를 더해주었고, 코로나 이전에는 수백 명의 관중을 앞에 두고 진행된 강의였기에 강연자들이 얼마나 용기를 냈을지 대단하다 칭찬해주고 싶었다. 강연자가 덤덤한 듯 말했지만, 이야기 속에 담긴 지나간, 혹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상처와 고통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박수를 보내는 청중들을 보면서 조금은 덜어졌기를 소망했다.

세바시는 내겐 그렇게 따뜻하고, 아프고, 응원을 보내면서도 응원을 받는 신비한 채널이다.    

 

세상이 많이 미웠던 날이었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못난 나의 습관은 또 화살을 나에게 돌리고 있었다. 아직도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그때 진작 잘라내야 했는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던 그때 세바시에서 내 연락처를 수배 중이라는 지인들의 연락을 받았다.


세바시! 강연. 무슨 주제? 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좋다.’라는 기분이 먼저였다. 연락처가 전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바시 메인 작가님이 전화를 주셨다. 내가 정말 궁금했던 강연의 주제는 놀랍게도 '환경'이었다. 총 6명의 연사가 이번 주제에 출연하게 되는데

“바다 전문가는 송현씨가 유일해요.” 작가님의 말씀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가 다이빙하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계셨고 내 채널도 종종 보셨다고 했다. 회의 단계에서 내 얘길 했더니 다른 제작진들이

“정말? 한다면 좋지만…. 할까?”라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작가님, 저는 정말 좋아요.”      


그렇게 기다려왔던 유효 시청자가 많은 채널에서 내가 사랑하는 바다에 대해 말할 기회. 그것은 내 오랜 꿈이었고 움츠러들었던 내게 큰 에너지가 되었다. 반면에 고민이 시작되었다.


여태까지 내가 세바시를 보고 좋았던, 그리고 조회수가 높았던 주제들은 ‘환경’과 같은 한 인간의 내면에서 벗어난 주제가 아니었다.

주로 자아, 가족, 우울증, 행복, 실패를 딛고 일어선 성장 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이 중심을 이루는 주제들이었다. 어떻게든 내가 말하는 15분이 청자들에게 고리타분한 얘기가 되지 않도록, 진심이 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초고를 완성하기 전 제작진과 만나 대화하고 싶었다. 사무실을 찾아 세바시의 대표님과 메인 작가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에 대해선 고민 중이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생각은 있었어요. 내 강연 내용 중에

“이렇게 하세요. 이건 하지 마세요.” 와 같은 지시형 문장이나 행동 방향에 관한 내용을 절대 넣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실, 여태까지 내게 환경 관련 캠페인을 의뢰했던 여러 기관과 단체들은 다 환경 보호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방법에 대해 말하길 원했기 때문에 이런 내 생각을 제작진에게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의외로 제작진은 너무도 쿨하게 대답해주셨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오랜 시간 생각해 온 건 송현씨이기 때문에 송현씨 생각이 맞을 거라고. 어떻게 말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래라저래라 가르치는 방식은 옛날 방식이라 MZ세대에게 효과적인 접근도 아니라고.  

    

늘 기획의도가 너무도 명확한 방송국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일까. 세바시 제작진의 말씀을 듣는 순간 ‘아,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분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셔서 내가 여태 세바시를 보며 마음으로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구나.’ 안심과 자신감이 생기면서 지난 11년간 바다를 사랑하며 경험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작가님은 다이버인데, 경험이 많은 다이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프로들도 잘하지 않는 깊이 있는 생각을 말씀하셔서 우리 부부를 오히려 놀라게 했다.

대표님은 다이빙 경험이 없으셨는데도, 나와 남편의 목소리로만 펼쳐지는 다이빙과 수중세계에 크게 흥미를 보이셨다. 여러 질문도 하시고 꼭 해보고 싶다고 말씀해주시는데, 그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쭈욱 차오르며 찰랑거리던 기쁘고 설레는 에너지를 참 오랜만에 다시 느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잘 꺼내보지 않아서 기억 어딘가에 있다는 걸 잊었던 여러 재밌는 에피소드들도 떠올리게 되었다. 미팅 중에 대략적인 이야기의 큰 흐름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고,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과 더욱 불타오르는 사명감으로 집에 돌아왔다.      

댕이와 댕이. 2021


커다란 고민이 사라지고 나니 생각보다 글은 수월하게 써졌다. 세바시 강연 내용은 귀한 당신이 지금 읽고 계신 이 책 전체를 15분으로 줄인 축약본 같았다.

바다에 대한 내 사랑 이야기, 철학이 담긴 다이빙이란 수중활동에 대한 소개, 그리고 나와 그 철학이 닮은 남편을 만나 사랑에 빠진 이야기까진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청자들에게 왜 저 사람이 바다 환경에 저렇게 애절하고 타인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지 마음에 와닿게 할 그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아직 숙제로 남아있었다.


나는 문과 전공이라서 그런지, 일 년에 버려지는 쓰레기 양이 얼만큼이고,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몇 년이고 이런 숫자 열거가 여전히 머리로는 알겠는데 살갗으로 느껴지지 않는 느낌이 너무 답답했다.    

  

브레인스토밍. 그냥 생각나는 단어들을 다 적어보기 시작했다.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열어두고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쓰고 그리기 시작했다.


다이버에 대한 오해, 무분별하게 해양생물을 잡고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적절한 비유를 생각하다 보니, 이 부분에서 갑자기 하나의 아이디어가 스쳤다.


2002년 월드컵 때 경기가 끝나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경기장을 청소하던 사람들. 내가 열심히 덕질하던 시기에 오빠님이 개최하신 록 페스티벌에서 우리가 얼마나 깨끗하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녔는지 그 자발적인 시민의식이 발현되던 경험. 때때로 재난 상황에 팬클럽은 아티스트와 팬덤의 이름으로 기부와 선행을 하기도 하고, 아티스트가 위험에 처했다고 느껴지면 지지의견을 표명하거나, 아티스트의 복지나 보호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며 집단의 힘을 사용하기도 한다.      


세바시 강연을 준비하다가 그 ‘덕질’의 개념을 선명하게 나의 바다 사랑과 연결 짓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가 하는 일, 사랑하는 존재의 터전을 존중하고 귀하게 생각한다. 그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형성된 ‘우리’라는 집단의 잘못된 행동으로 행여나 그에게 폐를 끼치진 않을까 걱정하고, 더 좋은 모습과 행동으로 그 대상을 더 빛나 보이게 하고 싶어 한다. 행여나 그 대상이 아프거나 다칠까 걱정이 되어서 힘을 모아 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해주고 싶은 것이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레오와 아네모네피쉬. 2022


다이버는 바다에서 해양생물을 만났을 때 누구보다 기뻐하고 살아 움직이는 그들을 사랑한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를 귀하게 여기고 그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함부로 잡거나 끌어안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일이라 기억을 꺼내면 너무 옛날 사람 인증 같지만, 가요 프로그램 생방송 중에 무대 위에 뛰어올라 아티스트를 끌어안았던 사람이 있었다.

‘이러시면 안 돼요.’를 외치던 그 가녀린 오빠님의 음성을 들으며 초등학생 송현은 분노했었다.     

 

“놓아줘~만지지 마!!”     


사랑하는 가족, 연인, 반려동물 등 상대를 아끼고 좋아하면 스킨십을 원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할 수 있지만, 만약 그 욕망이 일방적인 것이라면 상대에게 그만큼 무서운 폭력이 있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정리되자 다이버와 바다, 해양생물의 관계를 다이빙하지 않는 사람들도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뭔가 해답을 찾은 것 같았다.      


초고를 완성하고 제작진에게 메일로 전송드렸고 작가님이 전화를 주셨다. 세바시에는 방송 출연 경험이 없는 연사들이 많이 출연하는데, 오히려 방송 유경험자분들이 흔히 말하는 ‘방송용 멘트’를 작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제작진이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쓴 다소 만들어진 것 같은 이야기들을 받으면 어떻게 수정을 요청해야 할지 어렵다고. 그런데 내 글이 그렇지 않아서 좋다고 해주셔서 그래서 다행이었다.

원고에 대한 여러 작은 아이디어들에 대한 대화가 끝난 후에 두 여인은 2시간이 넘게 수다를 떨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날의 통화는 인터뷰가 아니라 그냥 사담이었다.

     

작가님은 세바시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의 이야기, 세바시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셨고, 나는 최근 나에게 일어난 일들과 얼마나 진심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문자와 메일로 몇 번 소통하긴 했지만, 얼굴 한 번 뵈었던 작가님인데, 왜 그렇게 그분이 편하고 좋은 사람으로 느껴졌을까. 아마 그동안 세바시 강연을 통해 진솔한 이야기를 했던 강연자들이 그렇게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작가님의 따뜻한 배려와 조언이 큰 역할을 했을 거란 믿음이 나도 모르게 생겼던 것 같다.      


나는 늘 많은 사람의 시선 앞에 서는 일을 해왔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연기할 때도 수십 명의 스텝이 나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때가 많다. 수백 명이 관객인 행사에서 진행할 때는 그보다 더 많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엔 진짜로 잘하고 싶었는지, 집에서 내가 직접 쓴 원고를 읽어 내려가면서 연습하는 데 계속 떨렸다. 특히 어느 한 문단을 읽을 때마다 매번 같은 부분에서 울컥해서 아, 이 마음이 정말 조금이라도 전해질 수 있도록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의 슈퍼스타는 콘서트 날짜를 정해주지 않습니다. 대략 이때쯤 가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같은 인데도 2시에 들어간 사람한테는 모습을 보여주고 3시에  사람한테는  보여 주기도 합니다.

맘 같아서는 몇 날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기다리고 싶은데 그 세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체 탱크만큼의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저의 슈퍼스타는 너무도 연약하고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병들고 죽고 멸종되어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쪽 세계가 아닌 내가 속한 세계의 사람들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의 슈퍼스타는 소속사가 없습니다. 대신해서 말을 해줄 사람도 건강관리를 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너무도 많은 산업과 이권들이 얽혀있어서 진정 그들을 위한 하나의 목소리를 만드는 것도 참 어렵고도 두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저희 팬덤은 종종 오해를 받습니다. 바다에 직접 들어가는 너희 다이버들이 오히려 슈퍼스타를 괴롭히는 것 아니냐고. 그렇지만 실제로 바닷속 세계를 경험하고 저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들 중에 바다의 문제를 내일의 일이라 미루지 않고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블루샤크의 눈물.  2021



실제 녹화를 하던 날도 나는  대목에서 눈물이 차올랐다. 사실 바다와 관련된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하면 정말 여러 가지 산업과 기업에 대해 방법을 바꾸거나 지금 하는 일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지금  산업과  기업에서 소득을 얻고 있는 종사자들에게는 얼마나 무책임한 발언일까.


해양생물 보호와 산업의 발달 중 단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관한 판단을 우리는 섣불리 할 수 없다. 공존하면서 양쪽 다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고, 그런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것부터가 해결의 시작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동을 말하지 않고 관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강연의 엔딩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강아지, 고양이처럼 해양생물들도 친숙하게 자리하는 시간이 너무 늦기 전에 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었다.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는 그때 정당하게 협의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고 비현실 주의자가 아닌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서 목소리를 내게 될 수 있을 테니까.     

 

요즘 환경 관련 강연 요청과 문의가 적지 않게 온다.

그래서 관련된 정보와 기사, 지식을 검색하고 책을 읽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이미 행동으로 해내고 있는 단체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쉽게 함께 하겠다고 다가가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런 단체들이 있다고 먼저 소개하기도 쉽지 않다.

단체의 시작과 내부의 이야기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운영진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하는 순간 어떤 일이 생길지 고민해야 한다. 나와 같은 지향점을 가졌다고 해도 그 목표로 가는 방향과 길까지 같을지 알지 못한 채 내 이름을 얹어 동참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단체는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기업과는 성격이 달라서 훨씬 더 조심스럽다.

     

고민은 계속될 것 같다. 아마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도, 방법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최대한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 후에 만들어지는 결과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다.


‘세상은 원래 그렇잖아.’라는 냉소적인 마음으로 단절을 향해갈 때마다 그럴 수 없게 만드는 낯선 온기가 다시 어디선가 나타나곤 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은 어찌 보면 정말 거창하고 너무 커다란 힘이 실린 제목 같았지만, 강연을 준비하는 동안 고민하고 생각하고 털어내고 추스르며 정리했던 시간은 분명 ‘꾸는 간’으로는 참 좋았다.

세상이 바뀌길 원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을 사람들이 종종 한다. 각자의 나바시가 모여서 세바시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누군가 써준 원고가 아닌 내가 직접 작성해서 내 생각을 말하는 강연을 하다 보니 더 많은 책임을 느끼며 연단 위의 시간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아졌다. 너무 오랜 시간 머리와 마음에게 충분한 치료와 진정한 휴식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지식이나 생각의 기회도 차단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굶주리고 허약해진 나의 머리와 마음에게 건강한 음식과 튼튼한 근육을 길러주며 천천히 나바시를 계속 실천해가고 싶다.


그리고 그 출발선이었던 이 책의 첫 장을 써 내려가며 상상 속에 그려본 귀한 당신은

내게 정말 큰 응원이었다.      


이제 상상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나의 독자님.

저를 조금 더 자라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좋은 다이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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