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E #4 극한의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반짝이는 너
나이트 다이빙(Night Diving)은 해가 진 후의 바다 다이빙을 말한다. 일몰 후의 바닷속은 수중 라이트가 없다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암흑이라 두렵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한 번 경험해본다면 그 낭만적인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물론 안전을 위해 모두 개인 수중 라이트를 소지하고, 주로 해변과 가까운 얕은 수심에서 진행하며 사전에 주의 사항을 안내받기 때문에 크게 겁내지 않아도 된다.
굳이 어두운 밤바다에 들어가는 이유는 바다의 밤이 낮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트 다이빙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차라리 낮에 자고 나이트 다이빙을 세 번씩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해가 진 어두운 바닷속에서는 교대근무를 하듯이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생물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밝을 때는 한창 활발하게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눈을 뜬 채 잠을 자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블루라이트를 비추면 형광물질로 빛나는 산호들이 곳곳에 많은데 그 위를 지날 때면 우주 세계에 떠 있는 신비로운 기분이다.
내가 초보 다이버일 때 처음으로 나이트 다이빙을 했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여기서 미아가 되면 어떡하지 잔뜩 긴장하면서도 낮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갑각류 친구들을 찾아내는 재미에 흠뻑 빠져 보물찾기 하듯 다니다가 넓은 모래밭을 만났다. 입수하기 전에 우리는 모래밭이 나오고 인솔자가 수신호를 하면 다 같이 동그랗게 둘러 무릎을 꿇고 앉기로 약속했었다.
너무너무 심장이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다. 무릎을 꿇은 다음 순서는 전원 수중 라이트를 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솔자가 제일 먼저 라이트를 끄자 팀원들 모두 모든 빛을 차단했다. 숨 막히는 암흑도 잠시, 플랑크톤들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만화에서 요정이 휘두르는 요술봉 뒤에 따라오는 빛 꼬리처럼 반짝반짝 정말 아름다웠다. 누군가 손을 휘저으니 더 많은 반짝임이 보였다. 나도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눈앞에 손을 휘저어 봤다. 작은 별들이 춤을 추며 날아간다. 밤하늘에 수많은 반딧불을 봤던 어느 밤보다 더 신비롭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반짝이는 플랑크톤의 존재를 인간은 어떻게 처음 발견했을까? 어쩌면 누군가에겐 굉장히 절망적이고 두려운 순간에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트 다이빙 중 일행과 떨어지게 되었는데 내 수중 라이트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암흑이 되었다. 상상만으로도 장르가 특급 공포물이다.
그런데 당황해서 손을 막 휘저으니 갑자기 반짝반짝 요정의 마법 가루가 눈앞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처음 마주한 그 아름다움에 빠져서 놀란 마음이 다 사라지고 한동안 플랑크톤의 신비로움에 감격해있다가 보니 버디가 날 찾으러 오는 불빛이 저 멀리서 다가왔다고 상상하며 이 공포물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해볼까.
지난 삶을 돌아보니 내 인생에 나이트 다이빙 중 수중 라이트가 꺼진 것과 같이 심장이 덜컹하고 두려움이 밀려왔던 경험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라이트가 꺼진 이유는 다양했다. 내가 충전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빌린 라이트였는데 제대로 충전이 안 된 것이어서, 물속에서 갑자기 라이트가 고장 나서, 물속에서 라이트를 잃어버려서, 누군가 내 라이트를 빼앗아 가서.
바꿔 말하면 인생의 어려움은 다양한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어떤 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경우, 함께 하는 파트너가 맡은 역할을 다 해내지 못한 경우, 몸이 너무 아프거나 주변의 질타와 시선에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아 방황한 경우, 내가 이뤄낸 결과 혹은 내가 얻어낸 기회를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가버리는 경우 등 삶의 아픈 순간은 대비할 수 없게 늘 다른 형태로 찾아왔다. 그렇지만 제일 두렵고 정신을 온전히 차리기가 가장 어려웠던 경우는 애초에 라이트가 없음을 알면서도 밤바다에 뛰어들어야 했던 경우였다.
버디 이야기를 해드렸듯이, 다이빙은 절대 혼자 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의 라이트가 잘못될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을 테니 내 것이 고장 나거나 설사 잃어버린다 해도 버디와 함께 안전하게 출수할 가능성이 크다. 다소 마음이 불안하고 내가 보고 싶은 곳을 명확하게 바로 볼 수 없다는 불편함은 있겠지만 둘 중 한 사람만 라이트를 가지고 있으면 시야도 확보되고 이 시간이 잘 끝나리라는 희망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버디와 조금 거리가 생긴다 해도 밤바다에서 빛의 전달은 꽤 멀리까지 가능해서 밝게 빛이 보이는 쪽을 향해 조금만 빨리 움직이면 금방 다시 만날 수 있다.
아마 내 삶도 ‘너무 힘들다. 앞이 너무 깜깜해.’라고 느꼈던 순간마다 나를 안심시키며 수중 라이트를 들고 이끌어주었던 고마운 인생의 버디들이 있었기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지.
비록 내게 당장 필요한 것을 손에 쥐여주진 못하더라도, 내가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 라이트를 켜고 달려와 함께 울고 함께 분노해주고 내가 어둠 속에 혼자 있게 모른 척하지 않았던 곁을 지켜준 고마운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살아 있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모험을 즐기게 될 줄 알았는데 역시 '모험'과 '편안함'이란 단어는 잘 어울리지 않나 보다. 갈수록 장비 점검도 안 끝났는데 바다로 던져지거나 라이트를 뺏기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그렇지만 이젠 라이트 없이 던져진 나이트 다이빙 같은 삶의 암흑 속에서도 플랑크톤의 존재를 느낀다. 너무도 작지만 절대 약하지 않게 반짝이며, 포기하려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는 사랑이라는 존재의 이름들.
이 순간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플랑크톤의 아름다움에 기대 볼까. 그러다 보면 어둠을 잠시 잊을 수 있고 곧 빛을 만날 수 있을 거야.
암흑 속에서 그냥 그렇게 슬프게 침잠하지 말아요.
잠시 마음의 안정을 위해 쉬는 것은 좋아. 호흡을 가다듬고 적막한 암흑이 너무 큰 공포가 되기 전에 손을 흔들어 반짝이는 플랑크톤을 불러내세요.
‘외로워요. 힘들어요. 막막해요.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마음과 절박함을 꼭 불러내 보기를. 그리고 반드시 그 극한의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한 장면을 마음에 담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