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어요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르게

by 이윤원




가장 나쁜 건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안다고 생각했다가,
그 여정의 끝에서 자기가 원한 게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입니다
- 알렌 드 보통


2015년, 우여곡절 끝에 출시된 에이드 3D프린팅 스토어는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르게 좌초했습니다.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이 웹사이트가 조물주들에게 큰 실망과 손실을 안겨주는 데는 몇 주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방에서 독려 받은 그 기획서대로 만들었지만, 실제로 운영에 들어가보니 생각치 못한 문제들이 속속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운영하자마자 드러난 표면적인 문제는 빈약한 상품성과 브랜드에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초보자인 저희들에게는 당연한 문제였을지도 모르지만, 믿었던 구석이 있었기에 충격이었습니다. 그 믿었던 구석이라는 게 이상적인 디자인 = 신선한 디자인이라는... 그 심대한 아마추어적 착각으로 오류의 정점에 다다랐습니다.


기획대로 아무나 와서 우후죽순 3D 모델링을 올려대기 시작한, 저희 포털에는 디자이너들에 의한, 디자이너들을 위한 마켓이라는 허울만이 가득했습니다. 엉성한 레이아웃, 불친절한 설명. 그리고 프로 수준에 이르지 못한 3D 디자인들이 합작을 이루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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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1_ade_3dprinting_guide_information_01_image.jpg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던 조잡한 폴리곤과, 도형들을 판매하려 했던 시절.


심지어 오픈 직후 서비스를 둘러보신 저희 모 대학 산업디자인과 교수님께서도 진심어린 소감 한 마디를 던져주셨는데요, ‘이런 걸 할 바에야 빨리 접고 취업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그래도 이제 막 시작한 사람들이니, 디자인이나 브랜드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문제는 노력해서 해결해볼 만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사업에는 디자인이나 브랜드 같은 표면적인 것보다 더욱 심각한 '하드웨어'적 오류가 하나 또 발생합니다. 바로 생산도구인 3D프린터의 기계적 결함입니다. 산업용 3D 프린터의 어마어마한 재료 소모량과 빈약한 내구도, 민감성 등은 완벽한 초보 사업자인 저희 예상 범위 밖에 있었던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두번 고장나던 3D 프린터는, 곧 사흘이 멀다 하고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중환자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고작 10cm 정도 크기의 볼펜 껍데기를 절반 쯤 프린트하다가 노즐이 막혀서 엔지니어를 불러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죠.


20150720_ade_긴급팝업배너_템플릿_01-01.jpg 걸핏하면 올려야 했던 장비점검 공지. 매일 같이 고장나는 트럭으로는 아무 것도 배송할 수 없었습니다.


에이드는 3D 프린티드 상품의 대중화를 내걸고 시작했지만, 정작 3D 프린팅 기술 자체가 아직 상용로서는 부적합했던 것입니다. 불완전한 물성으로 인한 잦은 장비 고장과 재료 가격으로 형성된 높은 제작 단가는 경험과 노력, 시간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비단 저희 서비스 뿐만 아니라 모든 3D 프린팅 장비들은 수입업체의 홍보책자에 적힌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재료와 인건비를 소비했습니다. 심지어 장비 부팅을 위해 녹아서 버려지는 것까지 치자면 그 비싼 재료들이 매뉴얼 대비 2~ 2.5배 이상의 소모량을 기록했습니다. 잦은 고장과 교체 때문에 출력물의 퀄리티도 갈 수록 떨어져 갔습니다.


비싸고, 퀄리티는 낮고, 디자인은 어설픈데 브랜드 파워도 없다면? 최종 소비자를 위한 제품으로서는 사업성이 없다는 것이겠죠.


약 6년 전인 당시 기준으로도, 일반적인 크기의 볼펜 껍데기를 3D프린트하려면 약 10,000원 이상의 순수 재료비가 소비됩니다. 일반 소비자가 완성된 볼펜 하나를 사려면 단돈 1,000원도 들지 않으니 이는 정말 비싼 가격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와서 올려놓은 볼펜의 디자인이 특출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이름 모를 '아마추어가 만들었다는' 놀라운 메리트가 있었을 뿐이죠.


이러니, 3D프린팅 출력물을 다이렉트로 소비자에게 팔겠다는 발상은 지극히 당연한 실패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그걸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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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_ade-banner_개새_v1-02.jpg 그래도 이런 저런 시도들을 했습니다. Solly작가의 초기 작품과 자체 제작한 개새의 첫 3D 프린팅 버전.


물론 아무 것도 모르는(!) 세 젊은이가 일부터 벌려놨으니 가만히 보고만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상황을 타개하고자 오픈 초기에 구현하지 못했던 반응형 웹으로 전체적인 UI를 업데이트하고, 디자인을 사용자 친화적으로 변경했습니다. 해외에서 나름 유명세를 떨친 3D프린팅용 모델링들을 구해서 업로드하여 쇼핑몰로서 구색을 갖추어 갔고, 개새의 초기 버전을 비롯한 여러가지 캐릭터들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부터 아트토이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초기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 목업으로 구현해주는 서비스도 시작합니다.


그리고, 젊은 피를 이용해 만들어진 제품을 들고 여러 전시회에 참가는 등, 우리의 장점을 선보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 경제적으로는 신통한 결과물을 내지 못한 채 1년 6개월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희가 일으킨 매출이라고는 3D프린팅 목업을 대행해주고 받는 몇백 여만원이 전부. 당연히 월급은 커녕 사무실 임대료도 낼 수 없었습니다.



KakaoTalk_20180829_122605441.jpg 비닐도 뜯지 않은 채로 고철이 된 3D 프린터는, 어마어마한 적자를 남긴 채, 모 기업의 자동차 개발 부서로 팔려 갔습니다.



누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나 싶더군요. 기대를 배반한 실패는 예상보다 심한 번아웃을 안겨주거든요. 2년 가까이 계속되는 부진에, 기름진 3D 프린팅 부스러기들로 가득한 사무실에는 절망 섞인 정적이 계속되었습니다. 적자를 거듭한 서비스의 ‘에이드’의 재정이 최악으로 치달았던 2016년 4월경, 저희의 첫 번째 사업체는 해체와 각자도생을 저울질하며 서비스 종료 수순을 밟게 되는데…


여기까지, ‘세상에 없었던 것을 추진하다 혼자서 장렬하게 망하는’, 흔한 스타트 업의 실패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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