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망하는 결정적인 이유

보통, 보통 그렇다는 얘깁니다

by 이윤원






거의 백프로, 열정이나 꿈만으로는 돈이 안 되거든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업자 혹은 창작자들은 필연적으로 어딘가에 ‘꽂히게’ 마렵입니다.


그렇게 홀딱 빠져 있는 주제로 기획서를 한 장 두장 써 내려갈 때는 정말 신바람이 납니다. 일을 벌이고 나서도, 발생하는 초기 어려움 정도는 열정적으로 해결해 갑니다. 없던 힘도 솟게 하는 그 열정의 힘은 대단하죠.


하지만 결승선에 이르러 뒤를 돌아봤을 때, 많은 수의 우리들은 엉뚱한 길로 달려왔다는 걸 발견하곤 합니다.






저는 첫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기반 기술인 3D 프린팅의 불완전성을 꼽았었습니다. 난 옳았고, 그래서 열심히 달렸는데, 세상에 당했다고, 이 프린터를 판매한 업체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같은 업계에서 롤 모델로 삼았던 다른 유니콘들도 비슷한 이유로 몰락의 길을 걸었으니, 어떤 부분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었죠.


민주적인 투표 집계를 통해 히트상품을 개발하는 혁신을 이룩하고도 끝내 파산했던 퀄키(Quirky)가 그랬고, 함께 아트토이 프로젝트도 꾸려나가며 교류했던 일본의 3D 프린팅 포털 린카쿠(Rinkaku)도 같은 결말을 맞았습니다. 그외에도 3D 프린팅의 빠른 상업화를 추구했던 제조혁명가들은 현실의 높은 벽에 막혀 더딘 성장과 소멸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도 엔드 유저를 타깃으로 하는 대부분의 3D 프린팅 서비스 업체들은 소상공인, 개인사업자, 위태한 벤처 기업의 레벨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퀄키.jpg 누구든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꿈의 공장' 퀄키는 전 세계적 히트상품을 내고도 파산했습니다.


저희는 개중에서도 조금 더 일찍 망하긴 했지만, 그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저를 처음 사로잡았던 박람회인 인사이드 3D프린팅에서, 3D 프린터 산업의 미래에 대해 부르짖던 백인 연사였을까요? 창조경제의 시대가 왔다며 각종 지원금을 주면서 3D프린터 전문가를 유망 직종으로 분류했던 정부였을까요?


아니죠. 처음부터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홍보 자료와 몇 번의 박람회, 기사, 쓱쓱 휘갈긴 기획서 몇 장만으로 3D 프린팅에 투신하기로 한 건 저희 스스로의 결정이었습니다.


20150717_ade_banner_community_01-01.jpg 지금 보면 누가, 어떻게 자유롭고, 즐거운지도 모르면서 만든 3D프린팅 커뮤니티였습니다.


그렇게 깨달은 건 초기 단계의 혁신기술을 사업화하는 창업자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은 대체로 비슷했다는 사실. 그건 바로 세상이 아직 받아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나, 관심도 없는 아이템을 주도자 혼자 무작정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시작과 의도는 어쨌던 간에 마지막에는 소비자와 시장의 수요와는 상관이 없는 사업을 하게 되어버리죠. 그러다 자본이, 버틸 힘이 떨어지면 손을 놓게 되는 겁니다.


다양한 규모의 '실패러'들이 보이는 공통점은 잘 모르는 분야에서, 세상을 선도하려는 열정들로 이룰 수 없는 판타지를 써 내려갔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시장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손을 바라봤던 사람들. 소비자의 이익보다는, 제조사의 득실을 먼저 바라봤던 신규 사업들은 하나 같이 소멸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저희가 3D프린팅에 좀 더 세심하게 조사했다면, 3D프린터를 구입하기 전에 재료의 소비 상황부터 면밀히 관찰했다면 어땠을까요? 한 두개의 샘플만 받아보지 말고, 우리가 팔고 싶은 모델링을 개발한 뒤 직접 프린트해보고, 제품으로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시작했다면 어땠을까요?


3D 프린팅 오브젝트를 구매할 소비자의 입장을 중점에 두고 3D 프린터를 바라봤다면, 분명 그 때와는 다른 방식의 선택을 했을 겁니다. 그리고 구매할 제품의 기술 수준을 몇 차례만 검토했어도, 영원히 수익을 낼 수 없는 형태의 사업 또한 시작할 수 없었을 겁니다.


자신이 업계의 초심자일수록, 도입하려는 기술이 최신 기술일수록, 한 번 들어간 기어를 다시 중립으로 돌려놓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마치 태풍의 눈처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 번 중심부로 말려 들어가기 시작하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스스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인데요.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영역에 무작정 발부터 집어넣는 행위 - 꿈, 열정, 그리고 도전이란 슬로건들의 미래가 위험해지는 주요 원인입니다.



710x528_7480816_1496035_1459325206_1_0.jpg 모르는 덤불 속으로 불쑥 뛰어들면, 내게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요.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저희 모두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모든 사업자는 소비자를 향한 상품과 콘텐츠를 판매하여 생존한다는 사실 뿐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상업적 창작자는 초기에 가졌던 열정과 흥분감을 냉정하게 식히고, 세상과 고객을 똑바로 바라보는 기획을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를 외치는 건, 시장에서 대체로 최악의 선택일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어떤 일을 시작하기 위한 불쏘시개로서, 창조자의 열정은 그 자체로 아주 중요합니다. 단, 그 화염이 제대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냉정하고 예민한 체크가 있으면 됩니다. 열정이란 불꽃이 프로젝트를 불태우는 화마로 변신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면, 잘 굴러가던 일에서도 언젠가 뜻 밖의 실패(!)를 겪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혹자는 몇 번쯤은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하기도 하십니다만, 실제로 넘어지면 더럽게 아픕니다.

게다가 여기 대한민국에서는, 잘못 넘어지면 다시는 못 일어날 수도 있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우리들은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카카오나 우아한 형제의 창업주들이 아니죠. 우리의 자본과 시간은 유한하고, 대부분은 시장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사실.


그걸 잊고서 오로지 열정을 무기로 시작했던 것이 너와 나, 저희의 첫 번째 사업이 높은 확률로 망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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