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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Dec 07. 2023

봄의 한구석에서

내 젊은 날의 파편

1972년 봄, 그때 난 대학을 막 졸업했고 입대 날짜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군대에 가기 전 약 한 달 동안을 난 학교 앞 다방에서 살았다. 학교 앞에는 다방이 두 군데 있었는데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 모두가 제갈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 그때 내 발길이 절로 향했던 곳은 고전음악을 잘 틀어주기로 유명한 학림(學林)다방이었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올라가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음악이 큰소리로 나를 반겨주던 그 다방은 대학시절 내내 나의 은신처이기도 했었다. 


그때, 대학생활을 너무도 좋아했기에 중간에 일 년 휴학을 하면서까지 연구실과 교정을 껴안고 있다가 밀려나듯 졸업을 했던 그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군 복무를 위한 입대 날짜를 불과 한 달 앞으로 통보받고 있었던 그때, 나는 아직도 사회에 나갈 마음의 준비를 못 갖추고 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나의 모습이었다. 남들은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하며 취직 걱정도 하고 유학을 꿈꾸기도 하고 아니면 군대 가기 전에 실컷 연애를 해야 한다고 여자 친구와 쏘다니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책과 노트를 옆구리에 끼고 출근하듯 다방 문을 열고 들어와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커피 한잔 시키고 담배 피워 물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그때가 내 삶에서 진공상태에 비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오직 입대할 시간이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그때 미래의 일은 군대 가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군대에 가있는 동안 형편이 허락된다면 제대 후 공부를 더 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여의치 못한 경우는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몇 년 후의 일을 미리 생각하기보다는 ‘카르페 디엠’, 현재의 주어진 시간을 그냥 꼭 붙잡고 싶었다.


아직도 이십 대 초반에 머물러있던 그때, 나는 왜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기를 그렇게 즐겼는지 모르겠다. 삶이 무엇인가의 문제를 풀기 전에는 무엇이 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평생 갖고 있었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고개를 뒤로 돌리고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찾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때로는 모르면서.


그때, 입대를 기다리던 한 달 남짓 1972년 봄, 학교 앞 다방 한구석에 칩거하며 나는 참 많은 음악을 들었다.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며 그러면서 시시때때로 대학노트에다 글도 많이 썼다. 그때 대학노트들을 나는 아직도 지니고 있다. 그 노트들을 가끔 열어보면서 나는 내 젊은 시절을 회상하곤 한다. 아, 안타깝도록 아름답던 시절들!


봄의 한구석에서, 이 시(詩)도 그때 썼던 글 중의 하나이다. 내 젊은 날의 파편이다. 


봄의 한구석에서(1972년 봄, 석운 씀)


가슴이 써늘하도록 따끈한

다갈색 커피 한잔을 

담배연기와 섞어

피부 속으로 곱게 접어 넣고

다실 한구석


파란 유리창 밖엔

나뭇가지 사이를 밀고 들어오는

봄 봄 봄


                                -그리고 그

                                 봄과 더불어 나타나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속삭임-   


나무 너머로

옛 거리, 그 위로

날아오르는 작은 먼지와

따사한 햇볕의

반짝이는 속삭임, 그

빛남 속에 어우러지는 어린 나날들, 그

부드러운 세월의 틈바귀 사이로

비죽비죽 머리 내미는

과거 속으로 상실되었던

아름다운 것들


                                -엄마와 같이 불었던

                                 비눗방울, 

                                 어린 동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언젠가

                                 잃어버렸던 하얀 도화지 한 장


다시 한잔의 커피, 그

따스한 감촉에

내 손이 떨리고

피어오르는 내음 속에

추억이 흩날리는

봄, 그

다실의 한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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