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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운 김동찬 Dec 09. 2023

젊은 날의 일기

1972년 1월 4일

그때 나는 23살이었고 대학 졸업식을 한 달 남짓 남겨두고 있었다. 


지난 5년 동안 다녔던 그 학교를  너무도 사랑했고 그곳에서 보냈던 5년의 시간을 참으로 사랑했기에 나는 학교를 떠나기가 너무 싫었다. 5년 전 대학에 들어왔을 때  비로소 삶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했고 대학에서 흘러가는 하루하루가 너무도 귀하고 아쉬워 2학년이 되면서 나는 과감히 휴학을 하고 1년 동안 연구실 속으로 칩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어 맬 수는 없었고 결국은 졸업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와있었다.


학교를 떠나기가 그렇게도 싫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회로 나가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에 나가면 생활과 정면으로 부딪혀야 하고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고 그 생활과 타협해야 된다는 생각이 몸서리치도록 싫었다. 할 수만 있었다면 학교에 끝까지 남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졸업을 해야 했고 군대에도 가야 했고 싫든 좋든 사회로 나가야만 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삶의 절차였지만 왜 그렇게도 그런 것들이 싫었는지 모르겠다. 


1972년 1월 4일 그날의 일기에는 그때 대학 졸업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있던 23살 청년의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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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年1月4日


音樂이 흐르는 房의 한 구석에서

-등줄기에는 싸늘한 차가움이 무슨 벌레처럼 기어 다니고 있었다- 


親舊가 다녀간 뒤

-그의 엄숙한 表情이 아직도 뇌리를 맴돌고 있었다-


이웃집 老婆의 웃음 속에서

-나는 일그러진 삶의 姿勢를 되찾을 수 있었다-


詩라도 쓰고 싶다. 이렇게  마주쳐오는 生活의 작은 한 모퉁이라도 잡지 못하고 처져 버려야만 할 때 끝도 없이 밀려오는 허전함은 무엇으로 때울 수 있을까? 落書처럼 헤설픈 끄적거림으로 시간을 메우고 있는 이 순간에 나는 무엇을 위해 정지하고 있는 것일까?


어디에 가버린 것일까? 나의 詩心은? 그 값싸고 奢侈한 詩心마저도 지금 오히려 情겨웁게 느껴지는 이유는? 글을 쓰면 하나같이 유치해버리고 마는 지금 나는 惡을 쓰고 筆을 놀리고 있다. 써야 한다는 의식보다는 筆이 멈추어지는 그 순간이 두려웁게 느껴져 계속 손을 움직이고 있다.


生活이 눈을 부릅뜨고 내 目前에 버티고 서있는 것을 나는 잘 안다. 어찌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正面으로 그를 對할 수 없다. 自信이 없다. 우선은 피하고 싶다. 비록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歲月이 흐르기를, 빨리 지나가기를, 나는 고대한다. 그동안 나는 연습을 해둬야겠다. 얼굴과 배와 손 가죽을 두텁게 하는 연습을. 그것에 어느 程度 자신이 생겼을 때 나는 先手를 쳐서 生活을 노려보겠다.


生活이여! 그대 나를 슬프게 하라. 나는 忿怒하지 않겠다. 오히려 그 슬픔을 昇華시키는 法을 배우겠다. 죽어도 나는 아니 지치리라. 아마도 그대 먼저 지치리라. 그때 나는 또 다른 生活과 승부를 벌리리라. 하니 生活이여 염려 말고 부딪쳐오라. 어서, 어서 빨리!


겨울 生命

겨울에, 이 불만의 季節에

生命은 이미 그 호흡을 始作했다.

나는 듣는다, 그것을

눈(雪) 쌓인 땅속 저 깊이

꿈틀거리는 작은 숨소리들을 그대는 못 듣는가?

生命이여, 단 하나 價値여!


灰色 하늘에 눈발이 흩날려도

추위가 빛(光)마저도 얼려 정지시켜도

나는 보고 있다, 그것을

불투명한 하늘빛 저 멀리

하늘거리는 가변 봄 모습들을 그대여 보이는가?

生命이여, 내 유일한 所望이여!


겨울에, 이 우울한 季節에

빛바랜 하늘과 딱딱한 땅 사이에

나는 춤춘다, 영혼과 더불어

벌거벗은 숲 속의 저 옛터

비틀거리는 내 몸 춤의 율동을 그대여 생각하라!

生命이여, 아 나만의 生命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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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월은 춥다. 그 추운 겨울 방구석에 처박혀서 다가오는 생활을 정시하지 못하고 허허로운 생각의 구렁 속에 빠져들어가다 결국은 몇 줄의 의미 없는 詩로 끝나버린 그때의 일기가 지금 읽어보아도 너무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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