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나무를 바라보며
벌써 몇 달이 지나갔나 보다. 지난봄 어느 날 아내와 같이 산책을 하다 갑자기 왼쪽 눈 옆에 자꾸 무언가가 따라다니는 것 같이 느꼈다. 손을 들어 쫓아내도 없어지지 않고 계속 같은 자리에서 둥둥 떠서 나를 따라왔다. 처음엔 쓰고 있던 모자에 무엇인가가 붙었나 싶어 모자를 벗어 탁탁 털고 속과 겉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모자를 벗고 걸어도 그 무언가는 여전히 왼쪽 눈 옆에서 둥둥 떠다녔다. 마치 작은 하루살이 두어 마리가 짝을 지어 날고 있는 것 같았다. 여보 나 좀 봐요 하고 나는 할 수 없이 아내를 불렀다. 내가 아내에게 무언가 이상한 것이 한쪽 눈에 보인다고 하자 아내는 웃으면서 당신 아마 피곤해서 그러실 거예요. 어제저녁 잠도 잘못 주무시고. 빨리 돌아가서 좀 쉬시면 없어질 거예요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도 그런 가보다 하고 빨리 귀가를 서둘렀다.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하고 편안히 앉아 쉬려고 했지만 여전히 그 이상한 하루살이 같은 것들이 왼쪽 눈가에 어른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여보, 아무래도 둘째에게 전화를 해봐야겠어 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왜 아직도 그냥 있어요? 그럼 그러세요. 그 애가 잘 가르쳐드릴 거예요라고 아내가 이제는 약간은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호주에 있는 둘째 딸이 옵토메트리스트(optometrist)였다. 딸에게 전화를 하고 증상을 말하자 아빠 그건 비문증(飛蚊症)이란 건데 나이 오십 넘은 분들에게 많이 생기는 증상에요. 특별한 치료법은 없고 그냥 그런 가보다 하고 지내시는 방법밖에 없어요. 아빤 건강하시니까 다른 합병증은 없을 거예요. 운이 좋으면 그러다가 없어지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냐. 별거 아니라니 다행이다. 여하튼 네 아빠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구나 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 시간도 안 돼서 서울에 있는 큰 딸한테 전화가 왔다. 아빠, 괜찮아요? 비문증이라면서요. 아이구 울 아빠 불편하면 안 되는데 하고 울먹거리는 목소리였다. 둘째가 벌써 제 언니한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아이구 이놈아 괜찮다. 늬 아빠 오래 살 테니 걱정 말아라. 그리구 그냥 없어질 수도 있다는데 뭐 괜찮을 거다 하고 오히려 달래서 전화를 끊었다.
다른 건 몰라도 눈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나이기에 눈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내심 큰 타격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다독이면서도 혹시라도 책을 못 보게 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하는 지레 걱정하는 마음도 조금씩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서글픈 일이어도 그만큼 여러 가지 일에서 놓여나게 되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살아왔는데 만일 책을 못 보게 된다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만 맥이 탁 풀렸다.
육체적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고 중요한 것은 노령에 대비하는 정신자세라고 스스로에게도 또 주변 사람들에게도 말해왔었는데 역시 나이는 속일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저녁 하늘에 먹구름이 다가오듯이 슬몃슬몃 잠재의식의 후미진 어딘가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문증에 대한 생각을 잊고 지내다 보니 생활하는데 그렇게 큰 문제가 없었고 책을 읽는데도 뚜렷한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그 뒤로 주위의 나이 드신 분들과 비문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미 이 증상을 겪고 계셨다. 그분들 대부분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더 나빠지지 않기나 바라면서 사신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는 일말의 안도감도 느꼈지만 다들 이렇게들 늙어가는구나 하는 허탈감과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주변의 친지들 중에서 어떤 분들은 알고 지낸 지 몇십 년씩 되는 분들이 꽤 있다. 그분들의 젊었을 때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기만 한데 허옇게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요즘 세상은 백세까지 사는 인생이라고 힘껏 외치며 노익장을 과시해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아마 그분들이 나를 보는 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고 맞는 가을이라서 그런지 이번 가을은 유난히 모든 것이 스산하게 느껴졌다.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도 전보다 차게 느껴졌고 하늘에 떠가는 하얀 뭉게구름마저 유난히 외로워 보였다. 이번 가을엔 특히 비가 많이 내렸는데 비가 내리는 오후엔 사춘기 소년 마냥 감상에 젖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마냥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어린애 같아진다는데 아마 나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았다.
오후에 비가 유독 많이 내렸던 다음날 날씨가 아주 좋기에 아내와 같이 산책을 나갔다. 와이테마타(뉴질랜드 동북부 해안 마을) 골프장 옆 주택가 길은 크고 작은 나무들이 많이 서있기에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었다. 작은 개울도 있고 골프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잘 정돈된 집들의 모습도 평화로웠다. 한참을 걷다가 아내가 어머 저 나무좀 보세요. 단풍이 너무도 잘 들었네요! 하고 탄성을 질렀다. 커다란 나무 전체가 빨갛게 물든 듯 때마침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 잎사귀를 흔들거리고 있는 모습은 아내가 감탄할 만큼 아름다웠다. 그러네. 정말 예쁘네. 벌써 가을이 이렇게 깊어졌나 하고 나는 아내의 말에 답을 하였지만 그때 문득 가슴속을 밀고 들어오는 허허로움이 통증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나는 느꼈다. 왜 아름다운 가을 나무를 보고 평안히 감탄할 수 없었는지 그 순간의 나를 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날 산책에서 돌아와서 시를 한 편 적었다.
가을 나무에게
나무야 가을 나무야
온갖 현란한 색깔로 비어 가는 네 모습을 감추고
바람이 불 때마다
춤이라도 추는 양 잎사귀를 흔들어 대도
나무야 가을 나무야
내 눈에 들어오는 너의 모습은 죽어가는 순한 짐승의 몸짓 마냥
가슴이 시리다
한창때의 네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나무야 가을 나무야
그때
여름 태양 아래 찬란히 빛나던 네 모습
마음껏 팔을 벌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탐하던 네 모습
아 그리고 저녁이 되면
너를 찾아 들어온 그 많은 새들의 합창
너는 너를 찬양하는 줄 알았겠지
너는 그 여름이 마냥 계속될 줄 알았겠지
지금 가을바람 불고
태양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계절
나무야 가을 나무야
떨어져 내린 잎사귀 네 발치에 슬피 울고 있고
저녁이 돼도 새들은
더 이상 네게 날아들지 않는다
너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 현란한 색깔로 너를 감싸고 있는 남은 잎사귀의 슬픔을
나무야 가을 나무야
한창때의 네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기에
너를 보는 내 가슴은 이 가을 더욱 시려만 온다.
2017. 5. 24 석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