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와 山中問答(산중문답)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을 짓고,
아홉 이랑 콩밭과 꿀벌통 하나 가지고
벌 윙윙대는 숲 속 작은 빈터에 나 혼자 살리.
거기서 얼마간의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내려오니까,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까지 방울져 내려오지.
거기 한밤엔 온통 은은히 반짝이는 빛
한낮엔 보랏빛 광채
그리고 저녁엔 홍방울새의 날개 소리 가득하지.
나 일어나 이제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수 물이 기슭에 찰랑이는 나지막한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나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서 나는 그 물결 소리 듣네.
The Lake Isle of Innisfree>
William Butler Yeats
I will arise and go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on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a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태어난 예이츠는 20세기 영미문단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의 한 사람으로 나중에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습니다. ‘시인은 본질상 전적으로 진실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그의 시를 읽다 보면 그의 생활과 시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이츠가 이 시에서 꿈꾸는 이니스프리 호도(湖島)는 아일랜드 서부 슬라이고(Sligo) 지방의 라프 길(Lough Gill)이라는 호수 속의 아주 작은 섬으로 사람이 살만한 크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예이츠는 아일랜드를 떠나 런던에 체류하고 있을 때 고향이 그리워지자 어릴 때부터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니스프리에서 낭만적인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사무쳐 이 시를 썼습니다.
첫째 연에서 시인은 ‘나 일어나 이제 가리’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제(now)는 지금 즉시를 말합니다. 시인의 마음은 몸보다 먼저 그곳에 가 있어, 가서 살 집과 터와 꼭 있어야 할 주변 조건까지 이미 정했고 혼자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둘째 연은 거기 가면 얼마간의 평화(some peace)를 누릴 것이라고 시작합니다. 완전한 평화가 아니고 얼마간의 평화(some peace)라고 한 이유는 마음의 평화는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서서히 다가오기 때문일 것입니다. 뒤따라오는 구절에서 평화는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까지 천천히 내려온다고 묘사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도 가슴속으로 천천히 방울져 내려오는 평화를 느낍니다. 뒤이어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그려내는 평화로운 정경에 우리도 어느덧 이니스프리에 가있는 느낌에 빠져듭니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다시 ‘나 일어나 이제 가리’라고 단호하게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이미 그곳에 가있듯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낮에도 밤에도 한길에서도 포도에서도 이니스프리 호도의 찰랑이는 물소리를 환청인양 듣다가 드디어는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서도 듣는다고 말하며 그립고 가고 싶은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20세기를 살았던 예이츠는 번잡한 도시 생활이 싫어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고향의 한적한 호도(湖島) 이니스프리를 이상향으로 그리며 그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시를 썼습니다. 하지만 이상향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은 결코 어느 특정한 시대나 장소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예이츠보다 천년도 훨씬 더 이전에 예이츠가 살았던 곳과는 비교도 안 될 한적한 곳에 살았을 당(唐) 나라의 시인 이백李白 (701 ~ 762)이 쓴 시 산중문답(山中文答)을 읽으면 예이츠와는 다른 의미의 이상향을 그리던 이백의 마음을 드려다 볼 수 있습니다.
山中問答(산중문답)
李白(이백 701 ~ 762)
問余何事棲碧山(문여하사서벽산)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무슨 일로 푸른 산속에 사는지 내게 묻기에
웃으며 답하지 않았어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흐르는 물 따라 아득히 흘러가니
별다른 천지이지 인간세상 아니네.
천성이 호방하고 낭만적인 이백은 술과 달을 좋아한 당나라 최고의 시인입니다. 시를 얼마나 잘 지었으면 시선(詩仙)이라 불리고 현종(玄宗)의 총애까지 받아 관직도 얻었지만 따분한 생활이 싫어서 사직하고 풍류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말년에는 강남(양자강의 남쪽 지역)의 각지를 유람하며 많은 시를 지었고 61세의 나이에 죽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장강(長江)에 비치는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익사했다고도 하니 그의 삶이 얼마나 세속과 거리가 멀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이백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그만이 그리던 이상향이 있었기에 위의 山中問答(산중문답)과 같은 시를 지었을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이백과 같은 시선(詩仙)이 꿈꾸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왜 푸른 산속에 사느냐고 묻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물음에 답해 보았자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할 터이기에 웃음으로 대신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을 것입니다. 번잡한 세상을 멀리하고 자기만의 세계를 찾고 있는 그의 머릿속에서는 복사꽃 흐르는 물(桃花流水)이 아득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복사꽃은 선계(仙界)를 장식하는 꽃으로 동양에서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상징합니다. 무릉도원은 일찍이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온 곳입니다. 도화원기의 사람들은 무릉도원을 다시 찾을 수 없었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이백은 머릿속에서 찾아놓았기에 이런 시를 썼을 것입니다.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와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오늘 우리는 이상향을 꿈꾸는 동서양의 두 시인의 시를 읽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각자 나름의 이상향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복잡하기만 한 도시, 그나마 땅이 좁아 하늘로 치솟는 아파트의 몇 평 좁다란 내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오늘의 환경을 벗어나 편안히 살 수 있는 이상향을 누구나 꿈꿀 것입니다. 여러분이 꿈꾸는 이상향은 두 시인의 이상향 중 어느 것에 가까운가요?
예이츠가 돌아가고 싶어 했던 이니스프리 호도(湖島)는 실제 존재하지만 너무 작아서 사람이 살 수는 없는 곳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예이츠가 가서 살겠다고 노래한 이니스프리 호도(湖島)는 예이츠가 이상화(理想化)한 이니스프리 호도(湖島)입니다. 그리고 이백이 꿈꾸는 이상향은 이백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곳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세상이 아닌 別有天地非人間이라고 합니다. 결국 두 시인이 꿈꾸는 이상향, 아니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꿈꾸는 이상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가고 싶어도 결코 갈 수 없는 곳이기에, 언제까지나 누구나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곳일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예나 지금이나 메마르고 빡빡하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 오늘 소개한 두 편의 시를 찾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땅만 내려다보지 말고 때론 하늘도 쳐다보면서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와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을 내 삶 속에서 찾아보면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2024.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