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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이목 Apr 17. 2024

가시

유독 길게 느껴졌던 장마가 끝나고

방치된 음식물에 구더기가 생겨났다

실컷 배를 불려대던 내 쾌락의 산물

이 작은 것은 왜 천대받아야 하는가


하얗고 꼬물거리는 것이 마치 나와 같아

나는 구더기를 그늘진 상자에 옮겨 담는다

네게 받지 못한 관심을 그것들에 쏟고

살점까지 떼어 내어 주며 무럭무럭 키운다


어느새 날개를 매단 까만 구더기 떼가

두 눈꺼풀에, 입술에 찰싹 달라붙는다

내가 먹인 것은 이처럼 까맣지 않은데

내가 먹인 것은 이처럼 가볍지 않은데


아, 너는 결국 이렇게 되리라 예견했구나


몰아치는 급속한 기류와 거친 파도에

성정이 느려 당해낼 재간이 없던 나는

여전히 깨달음이 늦다 또 내가 졌다


연신 팔을 휘두르며 목청껏 항복을 외쳐본다

더러운 사랑은 다리가 뻗치고 내장이 터지며

하얀 벽지 곳곳에 하나둘 새카만 점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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