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말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들에게

by 무화원

연말에는 편지를 쓸 일이 많아진다. 원래 편지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작은 종이 한 장에 흩어져있는 마음을 모아 담는 일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미뤄뒀던 마음들을 갈무리하는 의미로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친구, 지인, 동료들에게 간단한 카드와 선물을 건네본다.


매년 쓰는 편지이지만 막상 편지지를 꺼내면 무슨 말을 쓰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너무 뻔한 인사 말고 그렇다고 너무 부담스럽지도 않은 말을 고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듣고 싶은 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듣고 싶은 말들, 그리고 내가 받았던 말들 중에 기억에 남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올 한 해도 네 덕분에 조금이나마 웃을 수 있었어.”

“우리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기억나? 너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있어서 좋아.”

“너는 참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네가 그렇게 했을 때 엄청 감동을 받았어.”

“너는 이것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 계속해 봐. 늘 응원하고 있어! “


좋아하는 일을 새로 시작했지만 아직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는 사람에게 “재능 있다”는 말만큼 기운 나는 말은 없을 것이다. 정말로 재능이 없다면 어설픈 희망고문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특별함이 반짝이는 순간을 목도한다면 작은 관심을 가져주자. 내가 남긴 한 줄의 감상평이 누군가에게는 무언가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잘 쓰지 않으려고 하는 말은 “올 한 해도 고생 많았어”, “수고했어”이다. 아주 무난한 인사말이지만 어쩐지 조금 딱딱해 보인다. 고작 ‘고생’, ‘수고’라는 두 글자로 축약되기에는 한 해 동안 크고 작은 기쁨들도 많았을 것이다.


올해 유독 힘든 일이 많았던 친구에게는 “액땜한 셈 치자. 내년에는 더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는 희망의 말을 건넨다. 아주 진부한 말이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에 더 이상 마음을 두지 않기를 바랄 때는 이것 만한 처방이 없다. 단, 진부한 문장을 쓸 때에는 한 글자 한 글자 진심을 꾹꾹 담아서 쓴다. 정말로 액땜을 한 것처럼 그를 둘러싼 불운을 훨훨 날아가게 해 주었으면, 내년에는 걱정 없이 두 발 뻗고 자는 날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올해가 얼마 안 남은 이 시점, 좋아하는 이들에게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떨까? 어린 시절 반짝이풀로 카드를 꾸미며 설렜던 그때처럼, 작은 설렘과 고마움으로 연말을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리추얼이 될 것이다.


또 어쩌면, 나의 작은 다정함이 누군가에는 평생의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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