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있는 사람

미적 지능을 높이는 방법

by 무화원

어릴 때부터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 늘 부럽고 궁금했다. 그들은 어렸을 때 어떤 경험을 했을까? 그 감각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걸까? 후천적으로 길러진 것일까? 훈련을 통해 기를 수 있는 것이라면 감각은 도대체 어떻게 길러지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동안 '감각'에 대한 많은 강연과 책을 찾아보았다. 겸손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감각은 타고나기보다 꾸준한 경험을 통해 훈련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소위 업계에서 감각이 뛰어나다고 소문난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었는데 인상적인 부분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레퍼런스를 일부러 많이 찾아보지 않는다. 시장조사도 오래 안 한다. 영감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것들이 축적되어 쌓인 취향에서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2. 매일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비슷한 맥락으로 예쁘지 않은 것을 보면 눈에 거슬린다. 어떤 사물이나 디자인을 볼 때 못생긴 부분이 있는걸 참기 어렵다.


3. 감각이 타고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렸을 때부터 새로운 곳들을 많이 접했고, 좋아하는 걸 끈질기게 수집했다.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포착하는 예리함과 그것을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실행력이 있었다. 유행에 빠르게 편승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언어를 구축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실 감각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타고난 것과 자라난 환경의 영향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적인 재능을 타고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하루 아침에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스타일을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LVMH의 북미 회장을 역임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미학 비즈니스 강의를 했던 '사고 싶게 만드는 것들(Aesthetic Intelligence)'의 저자이자 폴린 브라운은 '미적 지능'을 특정 사물이나 경험이 일으키는 느낌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녀는 이러한 미적 지능 역시 감각 훈련을 통해 학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당시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미적 지능을 높이기 위해 여러 과제를 내주었다고 한다. 책에서 소개된 과제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1. 어느 식당이든 선택하여 그곳에서의 식사 경험을 묘사하라
- 그곳에서 절대 먹을 일이 없는 사람도 식사를 간접 경험 할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로 작성할 것
- 가장 뚜렷하고 알아채기 쉬운 요소들에 집중하여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할 것
2.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식당 평가서를 작성한다.
- 이때 '감각 검사'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는 자신이 식당 안에 있다고 몇 분 동안 상상하면서 감각을 자극하는 단서들을 가능한 한 많이 적어 내려가는 연습이다.
3. 감각 단서 목록을 완성한 다음에는 이것들이 식사 경험에 얼마나 큰(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감각적 효과들의 순위를 매긴다.
4. 어떤 효과가 특별히 기억에 남았는지, 뚜렷했는지 등을 언어로 표현하여 경험 안에 숨어 있는 강력한 요인을 발견하고 이를 정리하여 1장의 보고서를 작성한다.
5. 초안을 작성한 후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평가서에서 손을 뗀 후 시간이 지나 다시 평가서를 본다. 그동안 감상의 변화가 있었는지, 추가할 요소가 있는지를 찾아본다.


이러한 훈련은 평소에 인지하지 못한 감각을 섬세하게 느낄 수 있고 나아가 조명, 환기 상태, 음향시설의 수준 등 맛과 관련 없는 감각적 자극들이 공간에 대한 경험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물론 평소에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작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어떤 카페나 식당에 갔을 때 벽지에 붙은 포스터나, 조도, 흐르는 음악 등에 유심히 귀 기울여보는 것만으로도 감각 훈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어제 유명한 압구정 브런치 카페에 다녀왔다. 덴마크식 브런치를 선보이는 이곳은 오브제도 인테리어도 모두 유럽의 느낌을 훌륭히 재현하고 있었지만 층고가 높아 울리는 소리가 커 대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음식은 인스타그래머블하고 맛있었지만 유럽에서 브런치를 먹을 때 기대하는 '여유로운 바이브'는 느끼기 어려웠다. 인스타그램 사진에는 공간감이 모두 담기지 않는 까닭에 알 수 없었던, 직접 와 봐야만 아는 요소였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음식의 맛 외에 어떤 요소들이 이 공간을 또 오고 싶게 만드는지 혹은 재방문을 꺼리게 만드는지 등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생긴다. 이러한 기준이 쌓이면 다른 곳에 갔을 때도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의 '안목'이 되고, 이러한 안목은 좋은 공간과 경험을 가려낼 수 있게 한다.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고, 추하거나 평범한 것에서도 미학을 찾는 훈련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눈에도 어떤 것들이 거슬리기 시작하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IMG_5517.heic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반려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