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사람이 이기는 세계

다정함의 형태에 대하여

by 무화원

지난 주말 서촌 이솝에 들려 책을 교환했다. 다 읽은 책을 가져오면 새로운 책으로 바꿔주는 ‘북 익스체인지’ 라는 흥미로운 캠페인이다. 지점마다 지정된 책이 달랐는데 텍스트힙 트렌드와 이솝의 정체성을 잘 조합한 좋은 기획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이솝을 방문해서 책에 뿌리기 좋은 향도 추천받았으니 말이다.


꽤 인기가 많았는지 새 책은 이미 다 나갔고 다른 사람이 가져온 헌 책으로 교환이 가능했다. 각자가 써 놓은 큐레이션 카드를 찬찬히 읽어보며, 저마다의 삶에서는 모두가 작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중에는 궁금했던 화제의 소설책 <혼모노>도 있었고, 나중에 보려고 저장해 둔 유명 자기 계발서 <왜 일하는가?>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고른 건 <다정함의 형태>. 내 인생의 화두는 다정함이라는 것을 이제 어쩔 수 없이 인정하기로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절판된 책이라 가격이 두배로 올랐고 이청아 배우가 소개한 적도 있는 책이었다. 절판된 책을 구하다니 이게 바로 책 교환의 묘미인가 보다. 골동품점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순간 마음이 들떴다. 보물을 손에 넣은 기념으로 오랜만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어야지. 책을 보다가 모두의 약속처럼 창 너머 한강이 보일 때는 고개를 들어 한강을 보았다. 하루 중 가장 다정하고 낭만적인 순간이었다.


“내게 할당된 다정함의 총량은 그리 많질 않아서,
누군가에게 따뜻하기 위해선 꼭 그만큼의 따뜻함을 빌려 와야 합니다.
때론 사물로부터, 때론 현상으로부터, 단어로부터, 타인으로부터 빌려온 따뜻함은
내 몸을 그대로 통과해 누군가에게 쏟아집니다. 그럼 나도 잠시간 다정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 여태현, <다정함의 형태> 본문 중에서


오랜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서 포항으로 가는 Ktx에서 다시 이 책을 꺼내 읽었다. 나에게도 할당된 다정함의 총량을 체크해 보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 시간과 체력을 들여 모르는 사람에게 쓸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ktx 좌석 앞에 꽂힌 매거진을 보고 독자 편지를 쓰는 것과 같은. 소정의 상품은 바라지 않는다. 다만 내가 준비한 마음이 닿아 글을 쓰고 편집하는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기를, 그렇게 만든 좋은 콘텐츠가 누군가에게 가 닿아 무심결에 펼쳤던 책자에서 우연히 인생 여행지를 만나기를, 창밖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글을 읽고 잠깐이라도 여행의 기분을 느끼기를 바랄 뿐이다.


옛날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으면 ‘능력 있는 사람’ 혹은 ‘센스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다정하다는 말은 사전적으로 ‘정이 많다. 또는 정분이 두텁다.’이지만 단순히 ‘정이 많다’로만 풀이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 정 안에는 다양한 것이 함축되어 있다.

-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 나를 챙기고 남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체력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하고자 하는 의지

나는 이런 것들을 다정함이라고 부른다. 다정한 사람이 많아져 여기저기서 다정한 마음이 튀어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것은 결국 다정한 사람이 이기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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