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odern ordinary
May 05. 2024
글을 쓰기가 무서워지는 요즘이다.
갑자기 든 생각은 아니다. 수 개월 전부터 글을 썼다 지웠다 하면서 어딘가에 업로드하기는 커녕 혼자 공책에 쓰는 글조차 섣불리 써지지 않는다.
브런치 계정에는 발행만을 기다리는 글들이 수북하고, 휴대폰의 메모앱에는 휘갈겨 쓴 초록이 가득하고, 공책에는 순간 순간에 써둔 메모들 사이에 글을 써보려 잠시 끄적인 글들이 사이 사이 끼여있다.
글을 쓰려 할 때마다 어떤 것이 나를 가로막는다.
주장이 무서워지는 요즘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는 게, 그것이 사실(fact)의 문제와 깊게 연관 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나의 것을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
자신이 없어졌다.
그것은 내가 진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갑자기?)
평생 뭐 하나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시작했음 끝을 봐야지”라는 마인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장인 정신은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전에는 이것이 다양한 것을 그럭저럭 해내는 데 도움이 돼서 마음에 들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 안에서는 ‘이것 저것’은 있는데 그것의 핵심은 찾기 어려워졌다.
자고로 말에 힘이 있어야지, 사람이 바다처럼 깊어야지 멋있는 법. 나는 여러 갈래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다.
취미로 하는 스포츠에 ‘심취’ 수준으로 매진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그를 두고 걱정 섞인 비난을 했다. 포인트는 본업에 집중하기도 벅찬데 왜 그것까지 그렇게 하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지금, 일주일에 몇 번이고 필드에 나가 연습을 하던 그는 팀의 에이스가 되고, 주장이 되고, 리더가 되고, 남자가 되었다. 거기서 그는 ‘핵심’들이 농축되고 응축된 철학을 찾는다.
나는 철학을 ‘이것 저것’ 생각해 보고 체험해보면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사실 그것은 무언가의 깊은 곳에 있었다.
무엇 하나의 핵심의 액기스는 모든 것의 핵심의 액기스와 맞닿아 있던 것이다. 생각만으로는 그곳에 미치는 데 한계가 있다. 그것을 정말로 ‘안다’고 할 수 있으려면 몸으로 느껴야 한다. 수학 공식을 외운다고 수학을 잘 아는 게 아닌 것처럼.
나는 공식에 집착했다.
내 몸에는 액기스가 없다. 그러니 주장이 어렵다.
열매가 없고 껍질만 있으니 내 입과 손에서 나오는 것들이 반대편 껍질의 무언가와 충돌한다. 조금만 옆으로 가도 영 다른 것들이 나오고, 그러니 복잡하다.
나는 핵심을 찾아야겠다.
그리고 그 핵심은 저기가 아니라, 여기 아래 깊은 곳에 있음을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