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나무를 그릴 때는 대충 초록색으로 덮어버리고 말지만,
사실 잎의 색은 전부 제각각이다.
...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아주 미세한 부분부터 버라이어티한 곳이다.
사람들의 말소리를 소음으로 들을지, 역동적인 재즈로 들을지,
북적이는 버스를 답답함으로 해석할지, 생동감으로 해석할지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
오늘 버스를 타고 치과에 가는 길이었다.
정류장에 들어서는 버스의 감속으로 느껴지는 육중한 무게에 놀라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 정류장은 시장 앞에 위치해 있어서 항상 노인이 많이 오르내리는 곳이었다.
낯선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음 오늘도 역시' 정도로 생각을 멈추고 휴대폰에 집중하려던 찰나,
내 눈 앞에서 딸랑거리는 한 물체에 집중을 빼앗겼다.
그것은 착석의 반동으로 잠시 덜렁거린, 한 할머니의 비니 모자 정수리에 달린 털공이었다.
이제보니 버스 안에 있는 할머니 대부분이 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귀를 덮는 비니, 정수리에 달린 복슬복슬한 털공. 각각 색깔과, 길이에 따른 슬림함의 정도나, 턱끈이 있냐 없냐 정도의 차이만을 보였다.
이렇게 보니 달랑달랑 비니를 쓴 할머니들과 모든 남여노소의 승객들, 이 버스라는 공간 자체가 귀여워 보였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멍 때리는 척 그 순간을 음미하며 '버스 투어'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창밖이 보였다.
저기 지나가는 사람은 왠지 급해보이네, 아기가 정말 귀엽네, 하면서 '시티 투어'를 즐겼다.
그러고 있자니 왠지 햇빛이 더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정류장 도착 직전 나오는 광고 음악은 누가 만든 거지, 광장 안의 관리 안 된 콘크리트 기둥도 조경을 위한 예술작품으로 의뢰되어 만들어진 것이겠지, 오늘 따라 비둘기가 더 포동포동해 보이는군 하며 버스를 즐기는데
눈에 띄는 풍경이 나오자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 환승!! 벌써??'
이후 곧장 내리게 되었는데, 승차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함께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면 하차벨이 안 울려 안심하고 있던 기사님이
급브레이크를 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시간을 예약 시간을 잘 맞췄고, 치료도 잘 받았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로 약간 어둑해진 도시를 배경으로 '버스 및 시티 투어'를 즐겼다.
다른 병원도 가고 하다 보니 하루가 금방 가버렸다.
시간이 참 빨랐다.
오늘은 평소와 좀 달랐다.
마치 아이가 된 듯, 새삼 발견한 귀여움에서 각종 호기심과 아름다움이 보였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서도 세상을 완전히 즐긴 하루였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그것은 내가 오늘 느낀 것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나는 오늘 삶의 내공으로 세상을 보지 않았다.
'지금의 눈'으로 당장 눈앞에 놓인 세상을 보았다.
이것은 어린이의 눈이다.
어린이는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서, 순간 순간에 몰입한다.
사실 어제와, 작년, 10년 전과 동일한 지금은 없다.
어제의 태양은 오늘의 태양과 같은 존재이지만,
자전과 공전에 따른 광량이나 온도 같은 미세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림으로 나무를 그릴 때는 대충 초록색으로 덮어버리고 말지만,
사실 잎의 색은 전부 제각각이다.
이 거리의 사람들과 저 거리의 사람들,
할머니가 앉을 때 털공의 덜렁임과 하차할 때 털공의 덜렁임, ...
알고 보면 이 세상은 아주 미세한 부분부터 버라이어티한 곳이다.
사람들의 말소리를 소음으로 들을지, 역동적인 재즈로 들을지,
북적이는 버스를 답답함으로 해석할지, 생동감으로 해석할지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
이 세상도 아름다울 수 있다.
※깜빡하고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서 Leonardo AI 생성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