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r Wes

Wes Montgomery

by GuitHarmony

웨스의 음악적 자양분에는 그의 형제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웨스에게 기타를 (정확히는 4줄짜리의 테너기타) 사준 형은 베이시스트인 Monk Montgomery이다. (그는 펜더에서 일렉베이스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그것을 연주하며 당시의 새로운 악기였던 일렉 베이스를 알리는데 일조했다) 세 형제 중 막내인 Buddy Montgomery는 편곡이나 작곡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앨범을 소개하면서 웨스의 형제들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앨범이 형제들과 함께한 세션 녹음들을 모아서 만든 앨범이기 때문이다. 웨스의 커리어에 대해서는 다른 지면을 위해 남겨두기로 하고, Far Wes 앨범에만 집중해 보자.

먼저 이 앨범이 녹음된 당시에는 Far Wes라는 이름의 앨범은 발매되지 않았다. 녹음시기가 비슷한 세션들의 트랙들을 모아서 1997년에 다시 발매한 앨범이다. 그럼 Far Wes에 수록된 트랙 등의 녹음 당시 Montgomery Brother 들의 상황은 어땠는지 알아보자.

1957년 고향인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함께 연주하던 그들은 웨스만을 고향에 남겨놓고 몽크와 버디는 자신들의 꿈을 더 펼쳐보기 위해 West Coast로 떠났다. 그곳에서 Pacific 레이블과 Mastersounds라는 이름으로 계약을 하였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웨스와 함께 앨범을 녹음하였다. 웨스가 고향에 남아있었던 이유는 1948년부터 1950년까지 Lionel Hampton Orchestra의 일원으로 투어를 하였을 때의 경험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굉장히 가정적인 그는 집을 떠나 있기를 싫어하였으며 두 번째는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비행기 타기를 싫어하여 장거리 운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고향에서도 계속하여 음악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1959년 웨스에게 기다리던 그 순간이 왔다.

Cannonball Adderley 가 국내투어 시즌 중에 인디애나폴리스를 경유하면서 웨스 몽고메리의 연주를 들었고, 그가 뉴욕에 돌아가자마자 Orrin Keepnews (Riverside 레이블 사장) 에게 인디애나폴리스에 당장 이 Riverside 레이블에 필요한 기타리스트가 있으니 계약하라며 전화번호를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Riverside에서의 그의 커리어가 시작된다. 그리고 Pacific 레이블은 웨스가 Riverside와의 계약으로 활동을 시작하자 이미 몇 년 전에 녹음해 두었던 웨스의 트랙을 발매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럼 리더로서의 앨범을 녹음하기 전의 웨스의 연주는 어떠했는지 들어보도록 하자.


전체적인 웨스의 플레이는 완성도에 이르렀다고 얘기할 수 있겠다. 완성도라고 하기에는 웃기지만, 그의 짧은 생에서 Riverside와 Verve에서의 앨범들이 그의 황금기라고 한다면, Far Wes의 세션은 Riverside와 계약하기 직전이기 때문에 웨스의 톤과 싱글라인, 옥타브, 코드 솔로로 이어지는 플레이 스타일이 명확하게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Falling In Love With Love의 마지막에 코러스에서 코드멜로디를 연주하며 코드 솔로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또한 필자가 다른 재즈 기타리스트와 웨스의 다른 점을 얘기하라고 하면 빠지지 않는 점 중에 하나는, 매번 새로운 코러스가 시작되는 곳에서 연주하는 그의 캐치한 리드믹 프레이즈이다. 특히 Renie와 Montgomeryland Funk의 블루스에서 그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다. 웨스가 자신의 스타일을 갖춰가는 시점의 앨범을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Fall In Love With Love. Far Wes에 수록된 트랙 중에서 웨스 연주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트랙이다. 버클리 시절의 은사인 Richie Hart는 어렸을 적 이 트랙을 처음 듣고는 웨스의 솔로가 시작되는 부분이 곡의 멜로디인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그만큼 웨스의 노래하는 듯한 멜로딕 연주가 빛을 발하는 트랙이다. 그리하여 Richi Hart는 나중에 Falling In Love With Love를 베우고 나서도 연주할 때마다 멜로디 도입부를 웨스의 솔로를 차용하여 멜로디 연주를 한다고도 덧붙여주었다.

트랙을 들어보면, Buddy의 솔로 피아노로 멜로디를 마치자, Monk의 베이스와 Louis Hayes의 브러시 드럼에 맞춰 웨스가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후의 웨스의 솔로에서 그의 스토리텔링에 빠져보시기 바란다. 언제 빠르게 연주해야 할지, 언제 더블타임을 연주해야 할지, 언제 잠시 쉬어가야 할지 모든 것은 마치 가수가 노래하며 숨을 쉬듯이 자연스럽다. 그가 색소폰에게 솔로를 전달하고 다시 받을 때는 마지막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다. 코드 멜로디인 듯 코드 솔로인 듯 강렬한 혼자서 자유롭게 멜로디와 하모니를 넘나들며 곡을 마친다.


첫 번째 연재글에서 언급한 내용에 보완이 필요해 보이는 새로운 웨스의 리코딩이 발매되어 내용을 추가하고자 한다.

첫 번째 연재글에서 Four On Six를 소개하기 위해서 언급했던 Summertime의 편곡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해당 트랙은 1958년에 녹음이 되었고, Four On Six의 첫 번째 녹음은 1960년에 Incredible Jazz Guitar에 수록되었으니, Far Wes 앨범을 위한 리코딩 세션에서 형제들과 함께 Four On Six를 빌드업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라고 써놓고 다시 한번의 크로스 체크를 위해서 Wes Montgomery - His Life And His Music by Oliver Dunskus의 책을 읽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Resonance Record라는 레이블에서 웨스 몽고메리의 숨겨진 녹음들을 찾아내서 웨스의 1955년부터 1959년 사이의 녹음본 Four On Six가 발매되었다. 앨범 제목은 Back on Indiana Avenue: The Carrol DeCamp Record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새로운 스타일의 Summertime도 함께 같은 앨범에 수록되어 있으니 들어보시길 바란다.

Stop looking at what you make. Start looking at what you can’t stop making.
- Dwayne Walker


Lionel Hampton Orchestra와의 투어를 통해서 투어를 그만두고 고향에 다시 자리르 잡은 웨스. 그의 형제들 마저 자신들의 커리어를 위해서 위스트 코스트로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집착했다.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공장에서 아침 7부터 오후 3시까지 일을 하고, 저녁 9부터 새벽 2시까지 한 번의 연주를 한 후에, 새벽 2:30부터 5시까지 연주를 위해서 도시를 가로질러 달렸다. 웨스는 음악을 기타를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사이에 젊은 시절을 보내고, 그래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아이 셋을 낳고 가정을 꾸렸다는 것.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full-time 직장을 다니면서도 안 할 수 없는 것, 할 수밖에 없는 것을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