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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Mar 18. 2020

사람과의 거리, 그리고 관계의 속도에 관하여

(feat. '친절'에 관한 고찰)


사람들과의 거리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용자와의 거리에 대해. 더불어 친절함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현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도서관의 사서로 일하고 있다. 지금껏 일했던 다른 도서관들에 비해 공간이 매우 작아 관리하기 편한 면도 있는데 좁아진 만큼 이용자와의 거리도 가까워졌다. 


이 곳에서 나는 너무 과한 친절은 하지 말자, 정도의 톤으로 일하고 있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예의와 매너를 잊지 말기, 과한 눈웃음과 내 목소리가 아닌 높은 톤 따위는 없지만 도움이 필요하실 때, 책신청을 하실 때 귀찮아 않는 맘으로 성실히 도와드리기. 


그냥, 담백한 게 점점 좋아진다. 가끔 아주 친절한 이들을 본다. 최근에 들렀던 식당 사장님, 콜드부르라떼를 배달해주던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그랬다. 넘치는 친절이 고맙고 좋기도 했지만 이제는 보였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적정선 너머로 많이 웃어주고, 무리하다보면 무리한 딱 그만큼의 감정만큼 내가 힘들어지더라는 걸. 속으로 말해주고 싶었다. ‘너무 많이 웃지 않으셔도, 너무 톤을 높이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나도 많이 그랬으니까. 그러다 선을 넘는 진상 이용자들에 데인 후에 우울했던 시간을 보낸 적, 분명 있었으니까. 

사실은 내게 하고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과한 친절을 경계하는 것은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서로에게도 좋다. 실은 그리 가깝지 않은 사이인데 실제 이상으로 친한 듯 하다보면 그게 오히려 '진짜 가까워지는 걸' 방해하기도 했다. 실제 서로의 거리보다 말이나 행동이 너무 앞서 나가다보면 오히려 어색하고 어정쩡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그러면 불편해지고 그럴 때 사람은 서로를 안 보고싶어하게 된다. 이용자와의 관계 말고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내가 과한 친절을 경계하는 이유는 서로를 오래 편하게 보고 싶어서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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