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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Mar 18. 2020

따뜻한 커피 한잔에 위로받던 시간들

좋아하는 라떼. 언젠가부터 모카를 끊고 라떼를 찾기 시작했는데 한 4년 전 원래 하던 도서관 일 말고 새로운 일을 도전했을 때 쯤 특히 더 자주 찾았던 것 같다. 


책이 좋아 사서가 되었지만 책을 구입하고 서가에 비치되도록 전산에 정보를 입력하고 이용자에게 책을 건네는 일보다 점점 책 안의 세계, 텍스트를 다루는 일을 고파하는 나를 보게 됐다. 결국 무기계약 권유도 뿌리친 채 어느덧 나는 독서지도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집집마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 책으로 이야기하고 글을 쓰던 새로운 날들. 또..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도 힘들 수 있음을 몸으로 알게 되었던 시간들. 뭐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고 경험으로 직접 느껴보면서 인생의 미련들을 하나씩 지워가려 했던 나.

점점 수업 전에 한번 씩 긴장해소용으로 사먹곤 하던 라떼는 습관이 되어갔고, 10시, 11시가 넘도록 길어지는 학부모들과의 상담 후 집에 가는 길, 그 늦은 밤에도 이따금 라떼를 사먹곤 했다. 

매주 쏟아지는 수업할 책에 힘든 건지, 사람이 힘든 건지, 한 가지 일에 끈덕지게 붙어 있지 못하고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가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내가 힘든 건지. 

힘들다 말하면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힘이 되어줄 사랑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결국은 다 나의 몫임을 알기에 통화버튼을 누르려다가도 그냥 커피숍으로 발을 옮기곤 했다. 그렇게 안으로 안으로 쌓여가던 힘든 감정들, 남에게도 말하기 힘든 마음들을 커피 한잔으로 삭히곤 했다. 추운 밤 고단한 몸 이끌고 퇴근하던 길에 먹던 따뜻한 라떼 한잔에 지친 마음이 잠시나마 녹아내리던 기억.

돌고 돌아 다시 도서관에 오니 조금 더 도서관이 좋아졌다. 책으로 이용자들을 만나고 퇴근 후 글을 쓰고 책 읽는 삶을 좋아하게 됐다. 

남을 가르치는 것보다 실은 내가 읽고 쓰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어렴풋이 내 마음은 나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는데도 정작 나는 용기를 내기까지 몇 년을 돌아왔다. 책 근처에, 책과 관련된 일 주변에 서성이면서. 

그걸 깨닫는 외롭지만 값진 시간을 지나는 동안, 미안해서 내 맘 다 쏟아내지 못했던 이들 대신에 내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던 커피 한잔에 나는 늘 많이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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