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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ug 22. 2024

도서관에 일하며 보람을 느낄 때

없는 열정에 의미있는 작은 불씨가 만나면.



도서관에서 일하며 나는 어떨 때 보람을 느끼나.


 이용자분이 찾으시는 책이 서가 제자리에 없어 여기 저기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책이 있을 만한 곳을 뒤진 후 결국 찾아드렸을 때, 기획한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다, 또 열어주었으면 좋겠다 등의 좋은 반응을 들을 때, 이 도서관 너무 잘 꾸려져 있다 같은 이용자분의 말을 들었을 때 등등 나름의 소소한 보람이 있을 때가 있다.


또 크게 보람을 느낄 때는 내가 전시한 책을 이용자분이 대출해갈 때이다.




많게는 17000~ 18000권 정도의 책을 비치할 수 있는 우리 도서관. 현재는 그 반도 안되는 7000권 조금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다. 첫 출근날 텅텅 비어 있는 서가를 보고 깜짝 놀랬었지. 그저 놀래기만 했지, 그 빈 곳이 내가 채워야할 나의 업무가 되리란 건 생각 못한 채.



처음엔 보기에도 뭣하고 그래서 빈 서가를 그저 메우는 목적으로 책표지가 전면으로 보이게 해서 진열을 했었다. 새로 개관한 1인 체제 도서관에 온 터라 규정도 만들고 체계도 잡아야하고 책등록도 혼자 해야하는 등 할 일이 태산같아 책 전시에까지 쏟을 에너지와 시간은 없었다. 자연스레 그 당시 전시 대상은 손에 잡히는(?)책이 되었다. 나중에 다시 꼽기 편하게 유명 시리즈 도서를 꼽는다던지 서가에도 한 권, 전면 전시 서가에도 한 권 있도록 복본 도서를 위주로 빼내어 진열한다던가 하는 식이었다. 또 대량으로 책을 기증을 해준 출판사가 있었는데 기증기념으로 전면에 쫘악 그 출판사 책이 진열되기도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주제나 컨셉 따위 없이 뒤죽박죽 진열된 채 몇 달이 지났다.



그러다 책등록과 장비작업이 마무리 되고 서가배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그제서야 전시된 책들이 있는 서가에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개관 초기부터 한 자리에 같은 자세로 진열된(진열이라 쓰고 방치라 읽어도 무방할..) 책들이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듯 했다.


또 자주 오시는 이용자 한분이 계셨는데, 처음엔 무심코 아무생각없이 대출반납해드리다 자주 오시다보니 패턴이 보였다. 그 분은 주로 빌려가는 책들이 대부분 서가에 꽂힌 책들이 아닌 내가 진열해놓은 책들이었다. 하루는 어김없이 내가 진열해놓은 책을 대출해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사서님이 추천해주시는 책이니 재밌겠죠~” 그러면서 웃으며 문을 열고 나가셨다.


‘아...저 추천해서 거기 진열한 거 아니에요...! ’ 내면의 탄식이여..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름의 소심한 큐레이션이나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흔한 사서추천도서가 아닌, ‘이용자추천도서’ 코너를 만들어 이용자가 추천한 도서의 추천 이유를 메모하여 책에 붙여 전시를 하고, 매달 그림책 작가를 소개하고, 계절별 추천도서, 숨어있는 전집 소개, 웬만하면 내가 읽은 책 중 좋았던 책 위주로 장르별 추천도서 서가를 마련하기 등 소소하게나마 이용자들이 좋은 책을 접할 수 있게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 일에 열정이라곤 별로 없이 매달 받는 월급에 대한 책임감으로 최소한의 나의 할 일을 하며 보내고 있는데, 나의 큐레이션의 결과물이라 믿고 진열된 책을 대출해가시는 이용자분이 있는 이상 그냥 아무 책이나 놔둘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참 신기하게 내가 신경쓰는만큼 이용자들은 변화를 금새 안다. 서가 사이 사이에 꽁꽁 숨어 있던 책, 잘 보이도록 꺼내놓기만 해도 이용자들은 금방 대출해간다. 한 권의 책을 빌려가는 건 그만큼 시간을 그 책에 낸다는 뜻인데, 내 손길 하나로 한 사람이 적게는 3시간, 길게는 며칠을 어떤 책과 시간을 보낸다 생각하면 책을 소개하고 진열하는 일, 이용자들이 시간 아깝지 않을 책을 소개하는 이 일, 마냥 가벼운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최종 선택은 이용자의 몫이며 맘에 안드는 책, 별로인 책을 읽게 되는 것도 그 사람의 몫이다.


그럼에도 영향력. 이 단어가 떠올랐다.


영향력이라는 것. 이런 사무직 계열에 있는 사람들은 발휘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물론 개개인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의사, 변호사 등등의 전문직, 일의 결과물이 눈에 딱 보이는 기술직 등의 직업에 비하면 내가 영향력이 있다는 느낌, 발휘한다는 느낌을 사실 잘 못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내가 고른 책을 이용자들이 빌려갈 때 그게 좋든 나쁘든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미미하게나마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작게나마 내게 ‘보람’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다.




사서 일, 내게는 싫지 않은 일, 괴롭지 않은 일 정도의 일이다. 읽고 쓰는 게 제일 좋은 내가, 읽고 쓰는 걸로 먹고 살 용기와 자신은 없어 차선책으로 선택한 일. 좀 더 큰 열정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어쩌나, 내 열정은 지금 이 정도인 것을. '아.. 빨리 퇴근하고 싶다!'싶다가도 고개만 돌리면 책이 있고 손만 뻗으면 좋아하는 책을 만질 수 있는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실은 너무 감사한 것을, 잊지 않아야지, 되새긴다.


오늘도 ‘그냥’ 일하고 있다. 열심히도 말고 그저 내가 해야할 일만. 근데 이상하게 책 좋아하는 사람, 책 읽는 사람, 서가 사이 사이를 오랫동안 걸으며 책 고르는 사람들 생각하면 책 전시 업무, 계속 조금이나마 신경 써서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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