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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준 Aug 01. 2024

“해피해야죠~”

내 감정을 제대로 존중하는 법, 행복을 느끼는 법.



아기가 세돌 즈음 됐을 무렵이었다.     


정확히 뭘 생각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그날 나는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무표정한 얼굴로 약간은 심각한 얼굴인채로 얼마간 있었던 것 같다. 옆에 있던 우리 아가가 “엄마 웃어~”하는 거였다. 평소같으면 응~ 하며 이내 환하게 웃었겠지만 그날은 아기에게 괜히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

“준아, 엄마 뭐 좀 생각할 게 있어서 잠깐 무표정하게 있었던 거야~ 사람이 어떻게 매일 웃을 수 있어~? 무표정할 때도 있는거야~”     


그러자 아기가 말했다.     

“해피해야죠~”           


분명 목소리는 아가 목소린데 뭔가 억양이 내 친구나 남편쯤 되는, 우리 나이 쯤의 관록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해피해야~죠오~“ 이런 억양이랄까 ㅎㅎ

듣자마자 빵터져버렸다. 그 말을 하는 우리 아가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 말과 말투가 너무 귀여워 이 말만 떠올리면 여전히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이 얘기를 들려주자 나처럼 빵터지며 너무 웃기다며 좋아하는 내 동생. 그때부터 이 말은 우리끼리 서로 다운될 때 건네는 밈이 되어버렸다. “해피해야죠~”      


힘들고 짜증날 때도 “해피해야죠~”

살짝 울적할 때도, “해피해야죠~”

막 그냥 가라앉고 싶을 때도 “해피해야죠~”    

      





아가의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이 성경구절이 생각난다.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 전서 5:16~18)


   

성경을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성경구절들은 꽤 많다.  말씀도 그 중 하나다.           


처음 이 구절을 알았을 때, 참 좋았다. 기쁘고 감사해서 나쁠 게 딱히 없으니까. 그러다 삶의 어느 한 시기 즈음에 와서는 이 구절에 왠지 모르게 살짝 반감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사람이 항상 기뻐하나. 감사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 어떻게 감사를 말하나. 뭔가 자연스런 감정에 반하는 말 같았다. 그래서 기분 내키는대로 살았다. 기쁘지 않을 때는 기뻐하지 않았다. 감사할 상황이 아닐 땐 억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감정을 억지로 어떻게 하는 건 싫어서, 억지로 끌어올리고 억지로 좋게 하는 게 싫어서, 자연스러운 감정 그대로 봐주고 싶어서 내가 우울하면 우울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그게 감정을 존중하는 방식이라 생각했었다. 감정 있는 그대로, 기분 나쁠 때 그냥 기분 나빠한 채로, 짜증나면 짜증나는 채로.



그런데, 그렇게 올라오는 감정대로 살았던 내 삶, 그래서 나는 ‘해피’했던가.

그렇게 살 때 내가 행복했나 생각해보면, 딱히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멀리 보았을 때, 크게 내게 도움이 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억지로 기뻐해야하고 감사해야하나.

 내 있는 감정을 제대로 봐주며 산다는 건 어떤 뜻일까. 우울할 때 우울에 빠져 있는 것과 내가 우울한 걸 스스로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그냥 느껴주는 것은 다르다. 아마 내가 한 것은 전자였을 것이다. 스스로가 우울함에 무기력에 빠져 있다는 것도 모르게, 그냥 그 안에 잠식되기.



늘 ‘해피’하고 싶었다.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노력하고 인정받으려 애를 쓰며 살았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씀.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딱 부러지게 설명은 하기는 어려운데 기분으로 몸으로는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 항상 기뻐하는 일, 매번 감사하는 일, 그 일들은 진짜, 쉽지 않은 일이기에. 그만큼 값어치 있는 일이겠지. 힘들고 우울할 때 그 감정을 무시한 채로 기계처럼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뜻이 아님을 느낌적으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말하시는 것 같다.

‘은준아, 순간순간 힘들 때 많지, 어렵지, 그 마음 지우려하지 말고, 힘든 그 마음 그대로 있어도 된다. 그 마음 안은 채 한번씩 그저 가볍게 기쁜 마음, 감사하는 마음을 내어볼래. 내가 같이 옆에 있을게. 그렇게 한번 지내봐. 그렇게 한번 살아봐. 어렵지만, 어려운 일인 걸 알지만 그게 널 위한 길이란다.’     

 


 힘들 때, 화날 때, 슬플 때, 한번 전환 딱 하고, 입가에 미소 머금으며 기쁜 마음, 감사의 마음 한번 내어보는 것. 내 감정을 무시하는 일이 아니라 이제는 어쩌면 나 자신을 더 아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언젠가부터 든다.



 해야할 일, 맘 속의 여러 걱정, 앞날에 대한 고민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을 품고 심각한 얼굴로 살고 있지만, 이 땅에 태어나서 내가 해야 할 의무는 사실 하나뿐. ‘해피’할 것. 어쩌면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넝쿨째 들어오지는 않는다. 행복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야말로 행복은 문을 두드린다. 그래서 우리 아가말처럼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해피’해야지, 또 웃어봐야지. 억지로,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른 채가 아닌, 소중하고 애틋한 내 삶의 순간순간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행복의 바람을 만들어 줄 나비의 작은 날개짓같은, 내 안의 숨은 자그마한 힘을 살짝 꺼내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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