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이 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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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는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삭이는 편이다. 집에서 아이를 세심하게 살피라는 당부와 함께 상담이 끝났다. 세상과 내가, 나와 아이가 분리된 느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운동장 끝에서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담임과의 상담은 아이를 아는 시간이 아니라,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를 아는 자리였다.
아이는 유명한 기상관처럼 내 표정 변화를 감지해 기분을 맞췄다. 그런데 난 밥 제때 먹이는 것만으로도 허덕이느라, 아이의 감정은 헤아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스스로 모성을 맹신하는 사이 아이는 열세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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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맥없이 울었다. 자책과 회한과 연민이었겠지. 아이의 슬픔을 알아보지 못한 게 미안하고, 품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거 같아 섭섭하고 밤이고 낮이고 일하느라 뒷등만 보여준 게 면목없고, 무엇보다 아이의 품에 고통을 견디는 회로가 깔린 게 안쓰러웠다. 흘깃 쳐다본 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고통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눈물은 공유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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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님의 <다가오는 말들>을 읽다가 갑자기 마음 안에 있는 무언갈 쓰고 싶어졌다. 내내 수시로 느끼면서도 봐주기가 싫고 겁나 늘 외면하듯 대하던 마음을.
내가 일을 하고부터, 그러니까 맞벌이를 하게 된 작년 말부터, 평소 4시반에 하원하던 아이가 6시에 하원하게 됐다. 원래는 주부였던 내가 아이 등하원을 도맡아 하였는데, 퇴근이 나보다 빠른 남편이 하원을, 출근이 남편보다 늦은 내가 등원을 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다.
지난 8개월은 '고작 한시간 반 차이니까'와 '1시간 반씩이나 더'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었다. 무겁고 복잡한 나의 마음에 비해 아이는 1시간 반이 늘어난 6시 하원을 크게 눈에 띄게 힘들어하거나 달라졌거나 하는 건 느끼지 못했다. 미안한 무거운 마음을 내내 안은채 어찌저찌 하루하루 시간을 지나왔다. 그러다 남편 회사 일정으로 7월 8월 여름 두 달간만, 6시보다 1시간 더 늦게, 7시에 아이를 데리러 가게 됐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가 제일 늦게 하원을 했다. 마음이 너무 쓰이지만 어쩔 방법이 없기에 그 마음을 삭히며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불쑥 불쑥 일하며 미안하다가도 씩씩하게 잘 생활하는 아가를 보며'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을 건네면서 말이다.
그러다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아가를 하원할 때 우리 아기 표정이 너무 안 좋다고 말했다. 원래는 데리러 가면 아빠 보며 환하게 웃으며 달려 나오는데 그날은 어딘가 시무룩해보이고 다운 돼 보이고 어딘가 마음이 지쳐보이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선생님에게 물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소랑 똑같이 지낸다고 했다.
남편은 그날 이후로 다음날 출근해서도 회사에서 내내 전날 아가의 하원 때 표정이 생각나 계속 아기 걱정이 됐다고 할 정도로 평소와는 아가의 표정, 컨디션, 기운이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이후 며칠동안도 내내 하원하러 데리러 갔을 때도 그 전날 모습처럼 다운된 모습이었다 했다. 평소엔 내가 주로 그런 아이에 관한 걱정하는 역할(?)을 하지, 남편은 아이에 대해서는 나보다는 대범한 사람인데, 우리 아가 관련해서 뭔가 마음이 뭔가 아주, 안 좋아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유치원의 다양한 활동 수업을 하느라 아이도 많이 피곤해서 그럴거야, 라는 생각을 하려다가도 부모의 감이란 게 있다는 생각. 집에 와서는 평소처럼 밝게 잘 지내는 아이라 남편이 내게 말하지 않았으면 나는 못 느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남편 말을 들어서인지 왠지 아이 표정이 그전과 달라보였다.
아이에게 '준아,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하며 묻자, 아무일 없다는 아이. '혹시 유치원에 오래 있는 거 힘들어?' 하자, 갑자기 괴물, 유령, 자동차~ 얘기를 꺼내며 괜히 딴소리만 한다. 근데 엄마인 나는 왠지 알 것 같았다. 우리 아이 마음을. 유치원에 오래 있기 싫다고, 제일 늦게 가기 싫다고, 차라리 떼를 썼더라면, 마음이 덜 아팠을텐데.
아이의 딴청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은유 작가님이 말했던 딸이 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고도 엄마에게 토로하지 않을 때 ‘무엇보다 아이의 품에 고통을 견디는 회로가 깔린 게 안쓰러웠다.’고 말하는 그 심정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주 내내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 구석에 돌덩이가 앉은 기분이 들었다. 이 모든 원인을 나는 결국 ‘일’에서 찾게 된다. 내가 일을 해서, 저녁 늦게 마치는 직장을 다녀서, 자책하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결국, 일하기 전부터 걱정되던 부분들..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구나, 하는 느낌이 밀려왔다. 실은 일 때문이 아니라 ‘일 때문이라 생각하는 내 마음’ 때문인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를 낳고 난 이후로 줄곧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산다. 미안해하는 거 말고 눈 맞추고 사랑하기만해도 짧은 삶이란 걸 안다. 아는데도, 자주 안쓰럽고, 미안하다. 추측컨대 그 미안한 마음의 원인은 '스스로가 부족한 엄마'라는 생각인 것 같다. 모유도 고작 4개월남짓, 그것조차 분유랑 혼합으로 먹여서, 이유식도 주로 시판으로 사먹여서, 체력과 에너지가 딸려 엄마표놀이를 많이 못해줘서, 내가 해주지 못할거면 돈을 들여서라도 이 뇌의 황금기라 불리는 유아기때 다양한 자극을 주는 교구학원같은 데라도 보내줘야할 것 같은데 부족한 살림에 그렇게 해주지도 못해서.. 그래서 그냥 다 미안했다.
'미안해하는 엄마는 매력없어.' 내가 생각해도 아이한테 미안해하는 엄마는 싫었다. 그래서 미안하지 않으려, 내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테니 미안하지 않는 쿨한 엄마인 척 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매력이고 뭐고, 그냥 마음 깊은 곳에, 솔직한 내 심경은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순간에도 부지불식간에 훅하고 드는 감정은 ‘미안하다’는 감정이었다. 그냥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든다.
우리 아이는 7시까지 유치원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선생님께 맡겨두고, 다른 유아들 대상으로 한 동화책 읽기, 역사위인전 읽기 같은 도서프로그램을 기획한다. 강좌를 들으러 온 아이들과 엄마아빠들을 맞이한다. 내가 섭외한 강사님, 내가 기획한 강좌를 듣는 분들을 보는 뿌듯함, 보람. 그리고 그 한켠에 저릿하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우리 아가 얼굴. '나도 우리 아가랑 하원하고 손잡고 이런 수업 같이 듣게 해주고 싶다.', '4시 정규 유치원 수업 끝나고 3시간 동안 만졌던 장난감 또 만지고 또 만지고 반복하며 다른 친구들 엄마아빠가 친구들 이름 부를 때마다 우리 엄만가? 우리 아빠왔나?하며 고개 돌리게 할 일 없이, 일찍 데려오고 싶다.' 내가 선택한 일, 내가 필요해서 하게 된 워킹맘의 길, 맞벌이의 길임을 알면서도 그런 마음이 든다.
전업일 때는 일하는 엄마들이 대단해보이고 부러웠다가, 일을 하니 오후 3, 4시에 아이랑 손잡고 걷는 엄마들 보면 또 눈물나게 부럽고. 인간의 마음은 왜 이리 간사하나.
얼마전 아이 기관지염이 잘 낫지 않아 인기가 많아 늘 대기를 1~2시간은 기본으로 해야하는 소아과에 오랜만에 갔다. 그렇게 환자가 많은데도 쉬는 날도 거의 없이 진료를 보는데, 신기하게 그 원장님은 늘 밝고 씩씩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진료도 참 잘 보신다. 그날은 내가 연차를 낸 평일이었다. 다행히 뒤 환자분이 많이 없었는지 간단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거의 2~30분을 대화하다 나오게 되었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저 분은 어쩜 저리 기운이 좋을까, 늘 궁금했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셨는지 이것저것 먼저, 좋은 사는 얘기들을 나눠주시는 거였다. 운동하기, 작은 것에 감사하기 등등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얼굴을 아는 분이 해주시는 이야기는 확실히 크게 와닿았다. 원장님이 해주신 이야기 중, 이것 또한 누구나 흔하게 들을 법한 이야기지만 마음에 이상하게 이 말이 남았다.
“비혼을 하든 결혼을 하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비혼을 선택했으면 그 선택한 길 안에서 재밌게 즐겁게 살면 돼요. 결혼을 했으면 아이를 낳았으면 또 그 주어진 여건 안에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거 감사하게, 그렇게 살면 돼요~”
무엇을 선택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선택 후에 '어떻게'사는가, 그게 더 중요하다는 말 같았다. 모든 선택과 결정에 있어 선택과 결정 그 자체가 일에 참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선택을 해도, 똑같은 결정을 해도 모든 사람이 같은 결과를, 같은 마음을 갖지는 않는다.
사람은 생각한다.
‘내가 ~~ 이랬더라면. 그걸 했더라면~ 지금 이렇지 않을텐데. ’ 같은 것들을.
실은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일을 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주지 못해서 아이가 마음이 쓰이는 부분, 그건 어느 정도 분명히 있긴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걸. 내가 가지지 못한 걸 부러워하고, 가진 건 잘 못 보는 나의 오랜 습관. 그게 더 크다는 걸.
정말 문제가 있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할 것이고, 그게 아니면 ‘지금 주어진 상황 안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와 더 많이 웃을 수 있을지, 더 많이 웃게 할 수 있을지 그걸 생각해보면 된다. 미안한 엄마 말고 함께 웃는 엄마가 되고 싶으니 말이다.
24.09.02